두암동 본당

斗岩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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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광주시 북구 두암동 873-12소재. 1984년 6월 24일에 중흥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관할 구역은 두암동, 우산동. [교 세] 1984년 511명, 1985년 1,430명,1988년 3,037명, 1990년 3,963명, 1994년 4,525명.[역대 신부] 초대 돌란(J. Dolan, 도) 요셉(1984. 6~1987.2), 2대 날론(M. Nallon, 나) 미카엘(1987.2~1990) 3대 케니(P. Kenny, 기) 바오로(1990~1994. 2), 4대 서상채(徐相彩 유스티노(1994. 2~현재).
[본당 승격] 두암동 본당은 1983년 6월 24일 두암동공소의 설립으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두암동, 각화동, 우산동, 문화동에 거주하는 신자들이 중흥동 성당과 거리가 너무 멀어 미사 참례하는 데 많은 애로가 있었고 두암동 일대가 신 주택 단지와 아파트 단지로 내정됨에 따라 날로 신자수가 증가한 때문이었다. 그리하여1983년 6월 10일 두암동 841-12번지의 지하실 30평을전세 내어 공소를 설립하기로 하고 6월 25일 저녁 모(母) 본당인 중흥동 본당의 부케(Martin Bourke) 신부의주례로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런데 이 미사에는 중흥동 성당의 차 헬레나 수녀와 김 요한 비엔나 수녀를 비롯한 120여 명이 참석하였으며 공소 회장으로 정상기(鄭相基, 시몬)가 임명되었다. 그러나 공소로 사용하던 지하실 건물이 신자수의 증가로 비좁게 되고 습기가 차는 등 불편하게 되어 새 공소 자리를 물색하던 중 7월 29일에 당시 호남동 성당에 교적을 둔 이건수(李建水, 요셉)가 운영하던 혜성 유치원으로 공소를 옮기어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두암동 공소가 점점 규모가 커지자 교구에서는 본당으로 승격시키고자 두암동 873-12번지에부지를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공소 설립 1년만에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설립과 발전] 1984년 6월에는 두암동 888-18번지의 명신 빌라 맨션 103호를 임차하여 사제관으로 사용하면서 평일 미사를 이곳에서 집전하였다. 1984년 7월에는 현재의 성당 대지 위에 성당 건축 1차 공사(지하 1층, 지상 1층, 사제관, 소성당, 수녀원 골조)를 시작하였다. 그래서 1984년 11월 1층 소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였으며, 1986년 2월부터 인보 성체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7년 5월에 2차 공사를 시작하였고 그 해 11월 28일에는 본 성당을 완공하였다. 두암동 본당은 관할 구역이 대체로 주거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가 크게 형성되어 있고 관할구역도 넓은 편이다. 택지 조성과 아파트의 건립은 주민수의 증가에 따른 신자수의 증가를 가져왔다. 따라서 자(子) 본당의 분가가 이루어져야만 할 필연성에 직면하던중, 1990년 5월에 문흥동 공소를 설립하였다가, 이듬해인 1991년 2월 7일에 문흥동 본당을 설립 · 분할시켰다. 1994년 4월 10일에는 사무실을 신축 · 축성하였다.
1983년에는 공소 시절 7개 반으로 편성했던 관할 구역 편제가 본당 승격 뒤 늘어나 현재 17개 반으로 확대되었다. 불우한 이웃에 봉사하는 빈천시오회와 연령회를비롯한 여러 평신도 단체들을 중심으로 사목과 선교 활동을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다. 본당 승격 당시부터 교세확장을 위해 노력하여, 예비자들을 모집하고자 선교용 팸플릿 〈하느님과의 만남>을 지역 주민들에게 배포하였다. 빈천시오회를 중심으로 불우 이웃 돕기를 펼쳤고, 연령회는 초상집 돌보기에 적극 나섰다. 1986년과 1987년에는 경로 잔치를 벌였으며, 교도소도 자주 방문하였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의 활동은 괄목할 만하였다. 레지오 단원들은 냉담자의 권면, 환자 방문, 비신자의 입교권면, 교리 지도, 상가(喪家) 돌보기 등 폭 넓은 활동을하였다. 그중 비신자의 입교 권면과 관련하여 레지오 단원들이 각각 1명의 비신자를 입교시켜 대자 또는 대녀로삼기로 다짐하고 실천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또한 레지오의 활동을 강화하기 위하여 본당 사목협의회회원 전원이 레지오 단체에 가입하였다. 그 밖에 반모임의 활성화, 가정 기도의 생활화, 신자 재교육의 강화 등에도 애썼다. 1989년 7월에는 광주 지방에 큰 비가 내려, 모금 운동 및 생필품 모으기 등의 수재민 돕기 운동을 벌였다. 그 해 8월에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9일 기도를 전개하고, 범국민 서명 운동에 적극 참여하기도 하였다. 1990년 이후 단체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예비자 교리 교육을 담당할 교리 교사의 양성이나 단체장의 교육을 위하여 성지 순례 및 피정 등을 실시해 오고있으며, 특히 인근 지역의 본당들과의 친목과 연계를 도모하고자 각종 행사를 통한 만남을 실시해 오고 있다.
(→ 광주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 50 년사》, 빛고을출판사, 1990.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