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이탈리아의 대표적 화가 중 한 사람. 1255년이탈리아의 시에나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가 속한 시에나(Siena) 화파(畵派)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에나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중세 말기부터 르네상스에 걸쳐서 번영하였던 화파이다. 피렌체(Firenze) 화파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합리적이고 극적 감동을 주는 조형성과 대 비하여, 시에나 화파는 소극적인 묘법이면서도 온화하고정서적인 도해성과 장식성을 매우 중시하였다. 따라서 이 화파에 속한 작가들의 작품들은 중세적인 신비 속에 인간적인 정감이 깃든 세련된 양식으로 표현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5세기 무렵 피렌체가 르네상스 회화의 중심지로 부각되자 상대적으로 시에나의 영향력은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시에나 화파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두초는 청년시절 치마부에(Cimabue, 250~1302)의 화풍에 열중하였는데, 그 영향으로 시에나 성당의 제단화인 <루철라이의성모>(Rucellai Madonna, 1285)를 완성하였다. 두초는 이 작품으로 인습적인 비잔틴 양식에서 탈피한 우아하고 정서적인 표현 기법을 사용하여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시에나 화파의 신비스러운 부드러움을 적절히 조화시켜 이 화파의 전형적인 화풍을 보여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 작품은 오늘날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현재 이 작품은 피렌체의 우피치(Uffizi)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 하나의 대표작 <왕좌의 성모>(Maestà, 1308~1311)는칸막이 바깥쪽에는 '성인들과 천사에 둘러싸인 성모자'가, 안쪽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도' 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 생애의 여러 장면들이 잘 그려져 있다. 이그림은 1795년에 해체되어 앞뒤 양면으로 분리된 뒤 런던 · 워싱턴 · 뉴욕 등의 미술관에 소장되었는데, 일부는 유실되기도 하여 현재 26점만이 보존되어 있다. 이 밖에도 <성모와 세 사람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자> 등의 작품들이 있다.
같은 시대에 활동한 조토(Giotto, 1266~1337)가 소박한화풍으로 현대 화가의 아버지로 인정받고 있다면, 두초는 성숙한 비잔틴 미술의 완성을 이룩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잔틴의 전통에 북방의 고딕 양식을 채택하여 매혹적인 색채와 물결치는 곡선, 정묘한 구도(構圖)로써 시에나 화파의 도해적(圖約)이면서도 감미로운 화풍을 창시한그는, 옛 표현 방식을 본받아 자신만의 새로운 기법으로 적절하게 표현
하였는데, 인물상에 위엄 있는 모습을 그려냈으며, 명암의 수법을 사용한 회화법을 모방하기도 하였다. 특히 그가 시에나 성당의 대리석 포도(鋪圖)의 그림에서 처음으로 사용한명암 표현법은 미술계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 뒤에도 그는 계속해서 피사(Pisa), 루카(Lucca), 피스토이아(Pistoia) 등 여러 성당에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당시에 모두 수준 높은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회화)
※ 참고문헌 M. Eisenberg, 《NCE》 4, p.1087/ I. Galantic, Siena, 《NCE》 13, pp. 199~201/ Gabriella Rèpaci-Courtois, 《EU》 7, pp. 733~7341 Sister Mary ouisella, Duccio and TheSienese School, 《CE》 3, pp. 592~5941 GiorgioVasari, Le vite de' più Eccellenti Architetti, Pittorie Scultori, Giunti, Firenze, 1568(이근배 역, 《이탈리아 르네상스 美術家傳》 I~III, 探求堂,1986). [편찬실]
두초, 부오닌세냐의 (1255~1318)
〔라〕Duccio di Buoninsegna
글자 크기
3권

1 / 2
<왕좌의 성모>()와 그 안쪽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생애 여러 장면(두초 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