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군산시 둔율동 156 소재. 1929년 5월 나바위 본당에서 분리, 군산 본당으로 설립되었다가 1961년 11월 둔율동 본당으로 개명하였다. 주 보는 원죄 없으신 잉태. 관할 구역은 둔율동, 창성동, 선양동, 미원동, 장미동, 영동, 죽성동, 신영동, 평화동, 중앙로 2 · 3가동, 대명동, 금암동 전 지역과 삼학동, 서흥남동, 중동 일부. [교 세] 1930년 725명, 1940년 1,073명, 1950년 2,140명, 1960년 2,812명, 1970년 2,152명, 1980년 1,898명, 1985년 2,290명, 1990 2,746명, 1994년 2,545명. [역대 신부] 초대 김영구(金榮九) 베드로(1929. 5~1937. 5), 2대 임인교(任仁敎)
바오로(1937. 5~1940. 4), 3대 조상익(趙相益) 베드로(1940. 4~1944. 5), 4대 김후생(金後生) 바오로(1944. 5~1947. 5), 5대 박성운(朴聖雲) 베네딕도(1947. 5~1952. 6) 6대 강윤식(姜允植) 베네딕도(1952. 6~1954. 5), 7대 서정수(徐廷壽) 알렉시오(1954. 5~1956. 6), 8대 이상호(李祥浩) 아우구스티노(1956. 6~1960. 3), 9대 김재덕(金在德)아우구스티노(1960. 3~1961. 4), 10대 박영규(朴永圭) 바르나바(1961. 4~1964. 6), 11대 김영일(金永鎰) 아우구스티노(1964. 6~1969. 4) , 12대 범석규(范錫圭) 마티아( 1969. 4~1972. 9), 13대 서석기(徐錫基) 베드로(1972.9~1974. 1), 14대 권영균(權寧均) 안토니오(1974. 1~1977.7), 15대 김진소(金眞召) 안드레아(1977. 7~1978. 1), 16대 안복진(安福瑱) 요셉(1978. 1~1982. 10), 17대 김환철(金丸喆) 스테파노(1982. 10~1985. 2), 18대 유장훈(劉章勳) 요셉(1985. 2~1989. 1), 19대 한봉섭(韓奉燮) 시몬(1989. 1~1993. 2), 20대 황인규(黃寅奎) 마태오(1993. 2~현재) .
[공소 시대] 1899년 개항 당시 군산은 호남 평야의 세납(稅納) 미곡을 받아들이는 창고 소재지로서 어업, 선박업 등에 종사하는 20~30호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한 적한 곳이었다. 군산이 차츰 항구로 발전되어 감에 따라전주, 나바위, 되재, 수류 등지에서 전교하던 신부들이서울 내왕시 군산에서 8km 떨어진 옥구군 성산면 산곡리 공소에서 잠시 쉬어 가면서 교회 설립의 뜻을 두었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1925년경 인구도 증가하고 신자도 몇 세대 생겨남에 따라 영동(榮洞) 22번지에 소재한 김용진(金瑢鎮, 후에 군산 본당 회장)의 누이인 김 마리아의 사택에 공소를 개설하고, 나바위 본당 신부를 초빙하여 판공 성사를 보게 되었다. 1929년에는 교우들의 노 력으로 신영동(新榮洞)에 보다 큰 집을 매입하여 공소로사용하다 그 해 5월 본당 설정이 이루어졌다.
〔설립과 발전] 군산 본당은 1930년에 둔율동 156번지에 있는 옥구 군청 관사 대성원(大成院)을 매입하여임시 성당으로 사용하고 그 부속 건물을 사제관으로 개
수하였는데, 본당 설정과 함께 초대 주임으로 발령을 받은 김영구 신부는 모(母) 본당인 나바위 본당에 머물면서 본당에 필요한 시설과 준비를 추진해 오다가 1931년
1월 이곳으로 부임하였다. 1942년에 만주로 파견되어50년 동안 한인 동포 신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사목을 한 임인교 신부가 2대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여 부임 이 듬해인 1938년 본당 주보 설정과 함께 45평의 목조 성당을 신축하였다. 1944년 현 성당 부지를 확보하였고, 1951년 6월 1일자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었다. 6 · 25 동란으로 어려웠던 시절 전교 및 전쟁 고아,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주력한 군산 본당은1952년에 성심 유치원을 개원하고, 1953년에는 보육원을 설립 운영하기도 하였으며, 1955년 8월 17일에는126평 규모의 현 성당을 신축 완공하였다. 1961년 11월 8일 군산 시내에 월명동 본당이 신설됨에 따라 본당명을 본당 소재지의 행정 구역명에 따라 둔율동 본당으로 개명하였다.
[성장과 변모] 군산 일대의 첫 본당인 둔율동 본당은설립 초기, 전교 사업에 힘쓰는 한편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등 구제 사업에도 주력하였다. 이후 서서히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1971년 12월 교육관, 수녀원, 사무실, 창고 등을 신축한 둔율동 본당은 성당 계단과 주변축대 공사를 하였고, 1975년 6월에는 창립 총회를 거쳐 둔율 신용 협동 조합을 창설하였다. 이 조합은 이후1986년 6월 중앙로에 사옥을 신축 · 이전하면서 명칭을대건 신용 협동 조합이라 개명하였다. 1984년 9월에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념하여 김대건 신부상과 103위 성인 부조상을 제작하여 순교 신심을 드높이기도 하였다. 또한 지속적으로 성당 구내 구축물의 정비 및 환경 개선에 주력하여 성당 바닥 공사, 사제관 개수,교육관 구조 변경 및 앰프 시설, 성당 마당 블록 공사,도색 및 방수 공사 등을 실시하였다. 특히 1986년 6월에는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성당 내외부 보수 공사와 고해소 증축 공사를 실시하였으며1992년에는 325평 규모의 수녀원과 유치원을 신축 · 축성하였다. 둔율동 본당에서 분리된 본당으로는 1956년4월 옥구군에 있는 대야 본당, 1961년 11월 월명동 본당, 1969년 4월 팔마 본당, 1979년 2월 오룡동 본당 등이 있다.
현재 군산시 외곽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많은 세대들이 편리한 생활 공간을 찾아 이주함으로써 교세가감소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6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본당답게 사목회를 중심으로 한 23개 단체들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말씀의 삶, 전례의 삶, 나눔의 삶을 통한 개인과 공동체의 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특히 1995년 6월부터는 성체 조배실을 축성, 지속적인성체 조배를 실시하고 있다. (⇦ 군산 본당 ; → 전주교구 ; 임인교)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전주교구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천 주교 전주교구 연감》, 1978/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한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1991. [편찬실]
둔율동 본당
屯栗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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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경의 군산 성당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