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강동구 둔촌2동 518-7소재. 1981년 1월 6일 천호동 본당 소속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성심. 관할 구역은 성내동, 둔촌동을 일원으로 하는 주공 아파트 일부 지역. [교 세] 1985년 4,894명, 1990년 8,790명, 1994년 9,698명. 〔역대 신부] 초대 임상무(林尙茂) 베네딕도(1981. 1~1986. 8), 2대 김영일(金永一) 발타사르(1986. 8~1992. 10), 3대 김수길(金秀吉) 루도비코(1992. 10~현재).
[설립 과정] 1980년을 전후하여 당시 둔촌동 지역은대규모 신축 아파트 및 신흥 상가의 개발과 많은 사람들의 이주로 나날이 변모하고 있었다. 1980년 7월 27일 첫 미사를 드린 신자수 600여 명의 둔촌동 공소(회장 최재훈)는, 그 해 8월 사제관 건립과 본당 발족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토의하게 되었다. 1980년 7월부터 1981년 1월까지 사제 부재 기간 동안 둔촌동 공소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오경희(루도비나) 수녀가 공소의 신자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 와 주었다. 마침내 1981년 1월 21일 임상무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맞이한 둔촌동 본당은, 교세 확장에도 힘써같은 해 7월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분원을 설립하고, 1985년 6월 1일에는 대지 557평에 성당(840평)을 신축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발전과 활동] 1980년 사목 협의회 설립에 이어 레지오 마리애, 청년회, 어머니 성가대 등이 발족됨으로써 서서히 본당의 기틀이 잡혀 나가기 시작하였다. 불우 이웃돕기의 일환으로 성동 구치소를 방문하여 성서를 전달하고, 신자 찾기 운동과 냉담자 회두 및 외교인들의 입교에 특히 힘을 쏟는 등 활발한 본당 활동이 전개되었으며,
1985년 4월 15일 성모 자애 재활원 후원회를 결성하여연중 행사로 의류 및 폐품을 수집하였다. 1985년 5월 1일에는 노인 대학을 설립하여 신자뿐 아니라 지역의 노 인은 누구나 입학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으나, 5회의 졸업식을 끝으로 해체하고 말았다. 또한 임상무 신부의 배려로 시작하였던 행려 환자들을 위한 '작은 프란치스코 의 집' (현 경기도 광주 소재)에 1989년부터 매월 생활 자립 지원금을 보내고 있으며, 독일 가톨릭 단체의 지원을받아 세운 '엠마누엘 어린이 복지관' (부천시 소재)에도 시설 구입 자금과 생활비를 보내고 있다.
1990년 5월 20일에는 한마음 체육 대회를 개최하여교우 상호간의 친교 및 구역 공동체의 활성화를 도모하였으며, 한마음 한 몸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본당 주관으로 헌혈 운동과 헌미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 본당 설립10주년을 맞이하여 1991년 5월 26일에는 기념 경축 행사와 더불어 《본당 설립 10주년》 자료집을 펴내기도 하였다. 둔촌동 본당은 순교자 신심에도 열의를 보여,1988년 5월 29일에 '성체 안에 하나 되어' 라는 주제로미리내 성지 순례를, 1992년에는 구역별 성지 순례를,1995년 6월 18일에는 성체 성혈 대축일을 기하여 천진암을 순례하였다. 1995년부터는 가정 공동체의 복음화를 사목 목표로 삼고,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피정과 특별강좌, 반 모임 및 구역 모임의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고,경로 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모범 가정과 효자 효부 등에게 시상식을 거행하며 중고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한 신자들의 이사와 냉담으로 신자수 및 미사 참례자수가 현저히 감소하고 있어 새로운 예비자 발굴과 냉담자 회두를 위해 모든 신자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 판사, 1984/ 천주교 둔촌동 교회, 《본당 설립 10주년》, 1991. [편찬실]
둔촌동 본당
遁村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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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