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페이, 기음 (14000~1474)

〔프〕Dufay, Gulla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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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페이의 <천상의 여왕께> 악보.

뒤페이의 <천상의 여왕께> 악보.

프랑스 작곡가. 신부. 1400년경 프랑스 북부 강브레(Cambrai)의 페이(Fay)에서 태어났다. 당시 킹브레 교구주교좌 대성당은 전례 음악의 새로운 중심지였고, 소속헨네가우 백작령은 오랜 전통의 음악 궁정이었다. 뒤페이는 킹브레 대성당의 소년 합창단 단원이 된 1410년부터, 특히 1413년에 부임한 교사 로크빌(R. Loqueville,+1418)에게서 음악을 배웠다.
1420년 리미니와 페사로의 말라데스타(Malateta) 궁정에서 출발하여 여러 도시를 돌며, 때로는 교회 음악가로 때로는 궁정 악장으로 많은 활약을 하였다. 1426년고향 킹브레로 돌아와 영국 음악의 포부르동(fauxbour-don) 기법을 접하고 이를 미사곡 <성 야곱>에서 실험하였다. 1428년 볼로냐에서 사제로 서품된 뒤페이는 로마
(1428~1432) , 피렌체와 볼로냐(143-1437)에에서 교황청성가대원으로 활동했다. 이는 최고의 교회 음악가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모테트 <장미꽃 새롭게〉(Nuper rosarum flores)를 작곡한 뒤페이는 1436년 토리노 대학에서 법학사 자격을 취득했다. 1433~1435년과 1437~1444년에 "세계 최고의 악장"이라는 칭호 속에 사보이 의 궁정 악장으로 활동했으며, 1445년부터 죽을 때까지강브레에 머물며 교회 음악가로, 또 참사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460년대에 고정 선율 없이 작곡한 두 미사
곡 〈주님의 종이오니>(Ece Ancilla Domini)와 <천상의 여왕께>(Ave Regina caelorum), 그리고 같은 제목의 모테트<천상의 여왕께>는 그의 마지막 걸작들이다. 오케검(Okeghem, +1497)과 밖스느와(Busnois, +1492)는 1474년11월 27일 세상을 떠난 뒤페이를 애도하는 음악을 작곡하였다.
뒤페이는 신부 음악가인 뱅스와(G. Binchois, +1460) , 던스타블(J. Dunstable, +1453)과 함께 르네상스 시대의 새 음악을 시작하였다. 그는 음악의 인간화를 앞세우며 중세음악의 복잡하고 혼란한 선율과 리듬 대신에 인간의 호흡과 맥박에 맞춘 단순한 선율과 생동하는 리듬을 모색하고 동질적 음향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인본주의적 표현 양식은 전통 안에 머물렀다. 그레고리오성가의 즉흥적 폴리포니(polyphoy) 연주 관습과 영국의디스칸트(discant) 양식에 뿌리를 두고 그레고리오 성가를 다성화한 뒤페이의 초기 작품들은 한 성부의 특정 리듬꼴을 다른 성부들에 반복, 사용하는 동질서(同秩序)리듬 모테트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비트리(P. de Vitry,+1361)와 마쇼(G. de Machaut,+137)로 대변되는 이런 14세기 북프랑스의 전통을 새로운 모방 양식을 통하여 모든 성부가 동등한 가치를 갖는 본격적인 폴리포니로 발전시키며 이를 새 시대의 음악 언어로 정립시켰다.
이 과정에서 뒤페이는 포부르동 기법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 골격을 유지하는 상성부 고정 선율을 다른 성부들이 4도와 6도의 음정으로 따라가는 이 작곡 기법은 더 충만한 소리를 얻기 위한 노력이었다. 사람들은 뒤페이의 이 호모포니(homophon)를 장단조성과 기능 화성의 첫 실험으로 긍정적으로 이해하고있다. 사실 뒤페이의 이런 조성적 · 화성적 사고는 죠스캠 데프레(J. Desprez, 1440~1521), 마르티니(G. Martini,1890~1959), 오브레히트(G. Obrecht, +1505), , 오케겜 등에의하여 더 강도 높게 진행되어 1600년대 이후 오늘까지의 음악 언어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곡가의 핵심 언어는 대위법적 폴리포니였다. 그가 대축일의 음악을 보다 더 폴리포니적으로 작곡하고 대축일의 저녁 기도와 미사에 폴리포니 모테트를한두 곡 삽입하도록 요청한 데서도 나타난다.
뒤페이는 미사곡을 한 음악 장르로 체계화하였다. 14세기의 미사곡은 고유 미사나 통상 미사의 부분들을 따로 작곡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다양한 형태로 묶여
져 마침내 하나의 음악적 동기나 이를 변형시킨 유사한동기들을 사용하여 오늘과 같은 본격적인 연곡적(連曲的) 미사곡을 형성하였다. 다섯 부분의 통상 미사를 음 악적으로 하나로 통일시킨 이런 미사곡은 먼저 던스타블을 포함한 영국 음악인들에 의하여 시도되었고 뒤페이는<제목 없는 미사>(Missa sine nomine) 곡에서 확립하였다.
15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 뒤페이는 적어도 148곡 이상의 폴리포니 성악곡을 남겼다. 1947년 밴(G. de Van)에 의하여 착수되어 1966년에 벳셀러(H. Besseler)가 완성한 전 6권의 《뒤페이 전집》에, 뒤페이의 것이 분명 아니거나 아닐 수 있는 작품들을 제외한, 교회 음악 65곡과 세속 음악 83곡이 담겨 있다. 후자는 거의 교회 음악창작에 머무른 동시대의 던스타블이나 다른 영국인들에비해 뒤페이의 작품 세계가 얼마나 포괄적이었는지를 잘보여 준다. 물론 뒤페이의 중심 장르는 미사곡과 모테트로 대변되는 교회 음악이었다. 미사곡은 고유 미사곡15, 통상 미사곡 9곡, 통상 미사의 한 부분이나 두 부분을 음악화한 부분 미사곡 28곡이 있다. 모두 21곡의 모테트는 동질서 리듬 모테트 13곡과 1445년 이후의 자유테노르 모테트(tenormotet) 그리고 1460년 이후의 고정선율이 없는 모테트들로 이루어진다. 이 밖에 마니피칸3곡과 안티포나 15곡 그리고 찬가 24곡이 있다.
뒤페이의 성악 폴리포니는 프랑코의 플랑드르 지역과부르고뉴로, 16세기에는 이탈리아로 그 중심지를 이동하며 잘 훈련된 소규모 합창단들에 의하여, 그러나 가끔은 초보자들이 친숙한 선율 성부를 부르고 전문 성악인들이 다른 성부들을 노래하면서, 또는 오르간과 저음 악기 연주자들이 성악인들을 뒷받침하면서 널리 연주되었다. 성악 폴리포니는 유럽적 새 시대의 새 음악으로 정착하고 16세기 말 랏소(0. di Lasso, 1532~1594)와 팔레스트리나(G.P. Palestrina, 1525~1594)에 의해 그 정점을 이룬다.
(→ 가톨릭 음악)
※ 참고문헌  조선우 · 홍정수 편저, 《음악은이》 1, 세광음악출판사, 1992, pp. 228~241/ H. Besseler, (MGG) 3, pp. 889~912/ C.E. Hamm,(NGDMM) 5, pp. 674~6871 W. Gurlitt ed., Riemann Musik Lexikon,Personenteil 1, Schott's Söhne, 1959, pp. 427~429 . 〔趙善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