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목구 보좌 주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에밀리오. 한국 이름은 유세준(兪世竣) .1877년 1월 7일 프랑스의 루쿠르(Roucout)에서 태어나 1898년 9월 15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한 후 이듬해9월 23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15일 한국선교사로 부임하기 위해 파리를 출발하여 1900년 1월 25일에 입국하였는데,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원주(原州)본당 3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6년 동안 줄곧 강원도 지방의 전교에 전념하였다. 특히 당시 관할 지역인 원주 · 양 평 · 제천 · 영월 · 단양 · 여주 등지의 교세 신장에 많은기여를 하였으며, 점차 늘어나는 교세에 대처하여 성당신축의 터전을 충분히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같은 원주 교구 소속인 풍수원(豊水院) 본당의 정규하(鄭圭夏, 아우구스티노) 신부와 본당 분할 문제를 협의하여, 1904년에는 용소막(龍召幕) 본당을 새로 설립하였다. 1906 년에는 경향신문사(京鄕新聞社) 사장으로 전임된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신부의 후임으로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맡아 신학생 교육에 힘을 쏟았다. 그때 드브레 신부는 신학생들이 밤에 잠든 것을 보고야 자기 방에 돌아와 쉴 정도였다고 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복무를 위해 프랑스로 귀국하였는데, 그 당시 제2의 조국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을 잊지 않고 때때로 장문의 편지를 써 보내 그의동료와 제자들을 걱정하기도 했다. 종전 후 다시 한국에돌아온 드브레 신부는 뮈텔(G. Mutel, 閔德孝) 주교에 의해 헤세본(Hesebon) 명의의 계승권을 가진
보좌 주교로 임명되어1921년 5월 1일, 원산 대목구장 사우어(B.Sauer) 주교와 함께 주교로 성성되었다. 뮈텔 주교는 자신의 보좌 주교를 모든 성직자들의 투표에 의해결정하고자 하였는데,투표 결과 드브레 신부가 선출된 것이다.드브레 주교는 그 후5년 동안 《서울교구 지도서》 원칙 작성 및 출판을 담당하였으며, 병인박해 때의 순교자 시복을 위한 자료 수집도 함께 담당하는 등 한국 교회의 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하였다. 1926년 1월 17일, 점심 식사 후 자신의 방에들어갔다가 갑자기 쓰러져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채 결국 그 다음날인 1월 18일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부록, 가톨릭출판사, 1984. 〔李裕林〕
드브레, 에밀 알렉산드르 조제프 Devred, Emile Alexandre Joseph(1187~1926)
글자 크기
3권

1 / 4
드브레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