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양천구 목3동 626-15소재. 1973년 6월 24일 목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십자가. 관할 구역은 강서구 등촌2동, 양천구 목2~4동 지역이다. 〔교 세〕 1973년 787명 ,1978년 1,589명, 1983년 4,704명, 1988년 5,967명 ,1993년 5,962명, 1995년 6,557명. 〔역대 신부〕 초대 마니언(F. Mannion, 명) 프란치스코(1973. 6~1974. 4), 2대날론(M. Nallon, 나) 미카엘(1974. 4~1977. 2), 3대 엘리스(G. Ellis, 엄) 제라르도(1977. 2~1979. 1), 4대 케네디(B.Kennedy, 계) 브렌다노(1979. 1~1980. 11), 5대 스미스(J.Smith, 천) 요한(1980.1~1984.5), 6대 박노헌(朴魯憲) 요한 그리소스토모(1984. 5~1987. 2), 7대 최주호(崔周浩)대건 안드레아(1987. 2~1992. 2), 8대 이상준(李相俊) 타대오(1992. 2~9), 9대 백은기(白殷基) 라파엘(1992. 9~현재).
〔공소 시대〕 영등포(현 도림동) 본당 관할 구역으로 있던 당시의 등촌동, 목동, 염창동 일대는 한적한 농촌 지역으로 거주 인구와 신자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은 1957년 6월 당산동 본당, 1969년 3월 화곡동 본당, 1972년 7월 목동 본당 관할이 되었다. 1960년대 후반 등촌동 일대에 신시가지가 형성되고 이주하는주민과 교우들이 늘어가자 1971년 골롬반 외방선교회에서는 현지를 답사하고 현 본당 소재지의 부지 289평을매입, 이듬해 9월 51평의 강당을 짓고, 10월에 목동 본당 소속 등촌동 공소를 발족하였다. 그 후 적극적인 선교와 도시 계획에 따른 인구 증가로 교우수가 급증하자1973년 6월 본당으로 승격 · 분리되었다.
〔설립과 발전〕 본당 설립과 함께 사제관(24평)과 사무실(5평)을 건립한 등촌동 본당은, 1976년 7월 성당 증축을 시작하여 이듬해 11월 27일 연건평 200평 규모의 2층 성당을 완공 축성하였다. 이후 1981년 11월에는 성당과 사제관을 증개축하였고, 1983년 12월에는 62평의대지에 연건평 105평 규모의 수녀원을 신축하였.1985년 10월에는 이를 교육관으로 용도 변경하고 대신가옥 2채를 매입하여 수녀원과 보좌 신부 사제관으로 사용하였다. 1987년 2월에는 인접한 가옥을 추가로 매입 하여, 교리실과 도서관으로 개조하였다.
1983년 6월에는 거룩한 말씀의 회 분원이 설치되었으며, 1984년 5월에는 10년 동안 위탁 사목을 담당하였던골롬반 외방선교회에서 서울대교구로 관할이 이전되었다. 박노헌 신부가 부임하면서부터 확장되는 교세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사목 활동을 전개하게 된 등촌동 본당은, 1984년 12월 제1회 구역 대항 성가 경연 대회를 비롯, 옥외 행사 및 동 대항 행사를 실시하여 본당 분할에대비한 지역 공동체의 역량 강화를 위한 기반을 구축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85년 10월 등촌1동 본당 분가를위한 대지 매입과, 1986년 1월 목5동 본당 건립을 전제로 한 목1동 공소의 설립이 이루어졌고, 드디어 1986년8월에는 등촌1동 본당이 분리되었으며, 1987년 2월에는 목1동 공소가 목5동 본당으로 승격 분리되었다.
이외에도 1985년부터 정기적으로 교우 주소록을 발행하고 있으며, 1986년 9월에는 본당 주보 성 십자가상(賞)을 제정, 신앙 생활에 모범인 개인 및 단체를 선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같은 해 12월에는 신용 협동조합을 창설하였고, 1988년 4월에는 본당 부설 노인 대학을 개설하였다. 또한 1989년 3월 본당 차원의 한마음한 몸 운동 본부가 발족되었고, 7월에는 제44차 세계 성체 대회 헌혈 잔치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1993년 본당설립 20주년을 맞이한 등촌동 본당은, 1995년 2월 가두선교단을 발족시켰고, 레지오 마리애, 빈천시오회, 연령회 등의 활발한 활동을 바탕으로 "2000년대를 향한 복음화"에 앞장서고 있다. (→ 서울대교구) 〔편찬실〕
등촌동 본당
登村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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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