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 27권 중 13편의 편지가 사도 바오로의 작품으로 전해 오는데, 그중 12번째 편지가 디도에게 보낸편지(약칭 '디도서' )이다. 전체 3장밖에 안되는 짧은 편지로서, 이른바 '사목 서간' 의 일부이다.
〔명칭과 구조〕 디도서와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 둘째 편지는 문체나 어휘, 내용이나 서술 양식 등이 비슷하며 일관성 있게 짜여져 있다. 특히 세 편지 모두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사목자들에게 교회의 사도적 정통성과 직무, 그리스도인의 실제 생활에 대한 지침을 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 1750년 이래로 이 세 가지 편지를 묶어'사목 서간' 이라고 부르고 있다.
디도서는 바오로가 로마 감옥에서 일차 풀려 나온 뒤,다시 소아시아와 유럽 일대에서 전교하다가 그레데 섬에있는 디도에게 보낸 내용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 구조는다음과 같다.
1, 1-4 : 사도 바오로의 긴 인사말과 사도직 설명.
1, 5-3, 11 : 디도에게 보내는 사도 바오로의 명령과 권고.
장로에게 교회 직무를 맡기는 일과 이단을 물리치라는 가르침(1, 5-16).
하느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의무와 생활 자세에 관한 지침(2, 1-3, 11).
3, 12-15 : 사도 바오로의 개인적인 부탁과 마침 기도.
디도서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첫째 장에는 갖가지거짓 교사들을 물리쳐야 하는 감독자와 장로들에게 요청되는 사항들이, 둘째 장에는 교회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여러 신분의 사람들, 이를테면 노인(2, 1-2) · 노파(2, 3-5) · 젊은이(2, 6-8) · 노예(2, 9-10) 등에게 적절하게 일러주어야 할 사항들이, 셋째 장에는 하느님의 은총의 교육을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바른 자세가 제시되어 있다.
〔수신인 또는 청중〕 이 편지의 명목상 발신인은 사도바오로이고 수신인은 그가 아끼는 동료인 디도(2고린 8,23)이다. 그리스인으로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디도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의 본보기로서 바오로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갈라 2, 1). 그가 그리스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할례를 강요당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떠날 수 있었던 사실은, 이방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다는 바오로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예로 소개된다(갈라2, 3)
디도는 고린토 전서에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뒤에 고린토 교회에 등장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바오로의 오른팔 같은 일꾼으로 열심히 선교하며 고린토 교회를 굳건히 하는 데 힘썼다(2고린 12, 18). 고린토 교회에유대계 그리스도인 출신의 방랑 전도사들이 와서 바오로의 사도직을 비방하여 분열이 생기자, 바오로가 고린토교회를 직접 찾아갔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바오로는 에페소로 돌아와 이른바 '눈물의 편지' (2고린 10-13장)를 써 보내면서, 이방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좀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디도를 파견하였다. 디도는 고린토교회를 설득하여 그 공동체를 세운 사도 바오로에게 순종하도록 하였다(2고린 7, 15).
그 뒤 마케도니아에서 디도를 만난 바오로는 그가 가져온 기쁜 소식, 곧 고린토 교회가 자신과 화해하였다는소식을 듣고 큰 기쁨을 느끼며(2고린 7, 5-13) 이른바 '화해의 편지' (2고린 1-9장)를 써 보낸다. 그 즉시 바오로는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 활동을 위해 다른 형제들과함께 디도를 다시 고린토 교회로 보낸다(2고린 8, 6). 디도는 바오로의 명령에 의해서 뿐 아니라 그 자신이 모금에 열성적이었다(2고린 8, 17). 바오로는 디도를 "나의동료요 여러분을 위한 협력자"(2고린 8, 23)라고 부르며,사심 없는 행동과 자신과의 일치를 칭찬하였다(2고린 12,18). 그러나 놀랍게도 사도행전에는 디도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단지 사목 서간에서 바오로의 "공통된 신앙을 따라 참된 아들이 된 디도"(디도 1, 4)라고 소개된다. 디도는 그레데 섬에서 남은 일을 정리하고 장로들을임명하라는 바오로의 지시를 수행한 뒤(디도 1, 5) 아르데마나 디키고에게 임무를 넘겨 주고 니코폴리스로 와서바오로와 함께 겨울을 보내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는다(디도 3, 12-13). 디모테오 후서에는 그가 달마디아로 갔다고 언급되어 있다(2디모 4, 10).
교회 전승에 의하면 디도는 그레데 섬에서 주교로 일하다 93세에 사망하였으며, 그 유해는 고르티나에서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성당으로 옮겨졌다고 전한다. 서방 교회에서의 그의 축일은 2월 6일이다. 한편, 편지 끝에"은총이 여러분과 함께"(디도 3, 15)라고 기록된 점으로보아, 이 편지는 디도 개인에게 보낸 편지라기보다 그로대변되는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와 신자들에게 보낸 것임을 드러낸다.
〔발신인 또는 저자〕 교회 전승에서는 디도서를 바오로의 친서로 간주해 왔다. 이레네오도 사목 서간의 몇몇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를 바오로의 말이라 하였고, 180~ 200년경에 작성된 신약성서 목록인 무라토리 단편에서도 바오로의 편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9세기부터학자들이 이 편지에 쓰인 어휘나 문체, 주요 사상 등을 정밀하게 검토한 끝에 바오로의 친서와 너무나 다르다는의견을 제시하였다. 현재도 일부 학자들은 바오로가 직접 쓰지는 않았어도 서기를 시켜 썼거나 지금은 사라진 바오로의 편지 일부를 바탕으로 하여 쓰여졌기 때문에친서로 여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다수 학자들은 바오로의 영향을 크게 받은 후대 인물이 바오로의 이 름을 빌려 쓴 가명(假名) 작품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가명 작품이라 해서 이 편지가 거짓으로 꾸며진 글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고대에는 오늘날처럼 저작권 개념이 분명하지 않았다. 특히 1세기 그리스-로마 문 화권에서는 가명 작품들이 많았으며,가명 작품도 문학적창작품으로 널리 용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위인의 이름을 빌려 쓴 편지 형식은 그 당시 유대에서도 흔하게 사용된 문학 유형이었는데, 예를 들어 "열두 족장의 유언" 등이 그 예이다. 따라서 당시 그리스도교도 사도들의 가르침을 다시 강조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부정직한 행위로 간주하지 않고, 단지 사도들을 통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교회 공동체에 상기시켜 교회에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려는 하나의 방법으로 여겼다.
나아가 신약성서 낱권들의 성서적 권위도 누가 썼느냐는 인간적 저작권 외에, 성령의 인도 아래 있는 교회가그 편지에 담긴 가르침을 진정한 사도적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었다. 다른 가명 편지(예 : 베드로후서)와 마찬가지로 디도서가 성서의 정경으로 결정된것은 교회가 그 가치를 인정하였음을 보여 준다.
〔집필 시기와 장소〕 저자 문제와 함께 저술 시기와 장소도 의견이 엇갈린다. 바오로의 친서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오로가 로마에서 풀려난 뒤 다시 그레데 섬에서 에페소를 거쳐 니코폴리스로 가던 중, 즉 64~66년경에 이 편지를 썼다고 본다. 그러나 대다수 학자들은 이편지가 바오로의 시대보다 늦게 쓰여졌다고 본다. 이 편지에는 바오로의 시대보다 더 발전된 교회 직제가 묘사되고(감독자와 장로 임명 등), 좀더 후대의 그리스-로마 철학에서 주로 쓰던 언어가 사용되었다는 점, 90년경에 수집 정리된 바오로의 편지를 인용하였다는 사실, 110년경에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가 로마로 압송되어 가던 도중에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감독과 장로가 뚜렷이 구분되는 등 좀더 진전된 교회 직제가 나타나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디도서는 대략 100년경에 쓰여졌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저술 장소도 에페소 교회설과 로마 교회설 등이 제시되고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대개는 이 편지가 에게해지역의 그리스도교에 초첨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소아시아에서 쓰여지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이다.
〔성서에서의 순서〕 현재 성서에는 사목 서간이 '디모테오 전서 → 디모테오 후서 → 디도서' 순으로 되어 있으나, 이 순서가 본래 모습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디도서의 인사말(디도 1, 1-4)은 65단어로 길게 되어 있어, 3장밖에 안되는 디도서의 인사말이라기보다는 좀더긴 사목 서간의 머리말로 여겨진다. 또 디도서의 내용도포괄적이어서, 사목 서간 중 디도서가 가장 일찍 쓰여졌다고 여겨진다. 디모테오 전서와 후서는 상호 보완적인형태로 짜여져 있으며, 디모테오 전서가 마침 인사도 없이 쉽게 후서로 넘어가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디모테오전서의 마지막 축복의 말은 본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디모테오 후서는 바오로의 임박한 죽음을 예측하고최후의 증언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2디모 4, 6-8), 마지막 편지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사목 서간은 본래'디도서 → 디모테오 전서 → 디모테오 후서' 순으로 쓰여졌던 것 같다. 2세기의 무라토리 단편이나 4세기의 바오로 서간에 대한 라틴어 주석서에도 디도서는 디모테오서 앞에 나온다.
또 바오로가 만인에게 복음을 선포하면서도 그 순서를"먼저 유대인 그 다음에는 헬라인" (로마 1, 16 ; 2, 9-10)이라고 소개한 바에 따라, 유대계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했던 가정 교회를 다룬 디도서를 앞세우고, 이어 바오로를 "이방인들의 교사"(1디모 2, 7)로 명확하게 제시하는디모테오 전서를 놓았을 것이라고 설명하는 견해도 있 다. 한편, 그 순서가 현재와 같이 바뀐 까닭은 바오로의편지가 분량 순으로 모아져 묶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바오로가 직접 쓴 편지들이 먼저 묶일 때, 가장 긴 로마 서가 첫 번째에 오고 가장 짧은 필레몬서가 제일 끝에 자리잡았다. 그 뒤 사목 서간이 이 바오로의 서간집에 덧붙여질 때 데살로니카 후서 뒤에 위치하였고, 그 가운데에서도 디도서가 제일 짧아 맨 뒤로 갔다는 것이다.
〔저술 의도와 시대 배경〕 1세기 말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 내에 빠르게 전파되면서도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네로에 이은 도미시아누스 황제의 박해 등 크고 작은 외부의 박해와 예루살렘의 멸망(70) 등도 어려움을던져 주었지만, 좀더 심각한 문제는 내부에 있었다. 사도베드로와 바오로가 순교한 64~67년 이후 그리스도에대한 목격 증인들인 사도들이 모두 사라지자, 복음의 내용이나 사도들의 가르침을 가르치고 풀이하는 데 여러가지 경향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유대교와 그노시스주 의, 갖가지 철학 사조가 그리스도교에 영향을 미치면서,아직 확고히 뿌리를 내리지 못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흔들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무엇이 참된 그리스도교 의 가르침이며, 결코 바뀌어서는 안되는 믿음의 표준은무엇인가 하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 결과 사도이후 시대의 교회에서는 사도적 정통성의 유지를 최대의 관심사로 여기게 되었고, 이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익명의 그리스도인이 디도서를 포함한 사목 서간을 쓴것으로 보인다. 디도서의 특성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 다.
① 바오로를 신앙인의 본보기로 제시 : 특정한 소수가아닌 모든 이를 위한 복음을 선포하고 그 복음을 위해 순교한 바오로를 사도의 전형이자 믿는 이의 표본으로 제시하였다(1, 1-3). 따라서 이단에 맞서거나 혼란을 극복하는 길로 교회는 바오로가 취한 자세와 그의 가르침을기억하길 권한다. ② 건전한 가르침 강조 : 이 서간은 사도 바오로가 가르친 '사도적 복음' 만을 "건전한 말씀" (1,9)과 "건전한 가르침" (2, 1)으로 계속 강조하며, 그 이외의 가르침을 배척한다. 그러나 이 건전한 가르침의 뜻을밝히고 풀이하기보다 가르침을 지키고 생활할 것을 강조한다. ③ 교회 직제의 구성 : 교회가 사도적 정통성을 지키며 거짓 가르침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직제가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감독자(1, 7-9)와 장로(1, 6)를중심으로 하는 교회 직제와 그들의 임무 및 자격 요건을엄격하게 제시한다. 그러나 이 직제는 아직 고정된 제도라기보다 유동적인 상태이다. ④ 실제적인 지침 : 디도서에서 제시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지침은 사변적이지않고 아주 실제적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은 훌륭한시민으로서 당대 로마 세계에서 칭송받는 윤리 지침에따라 탓할 데 없는 행실을 하여, 그 행실로써 자신들이믿고 따르는 가르침이 참되다는 것을 입증하여야 한다는것이다. ⑤ 주변 문화에 대한 개방성 : 디도서는 그레데출신 시인의 격언을 인용하는 등, 적합한 경우 그리스-로마 문화 전통에서 내려오는 권고 등을 사용함으로써비그리스도교적인 주변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그 가치를긍정적으로 인정한다.
〔신학 사상과 현대적 의의〕 디도서는 그리스도보다 하느님을 더욱 강조하며 특히 하느님이 창조자임과 구원자임을 강조한다(1, 3 ; 2, 10 ; 3, 4). 예수도 구원자라고기술되나(1, 4 : 3, 6) 그의 수난과 부활은 모호하게 언급될 뿐이다(2, 14). 성령에 대해서도 세례성사와 관련되어짧게 언급된다(3, 6). 사도 바오로의 편지에서 아주 강하고도 흔하게 드러나던 성령의 은사와 성령에 대한 의탁이 이 편지에서는 아주 제한적으로-주로 예언의 은사만 -나타난다. 또 세상의 악과 거짓 가르침에 대한 신학적 고찰이 거의 없고, 대부분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충실한 실천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교회의 위기와 변혁기에 나온 이 편지는 무엇보다도초기 그리스도교의 여러 가르침과 전례 및 분위기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특히 이 편지는 그리스도인들이 나날이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두루 빛내도록 조용히 권고한다(2, 10). 아울러 타종교나 주변 문화의 폐쇄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만민 구원이라는 하느님의뜻에 따른 보편적인 선교에 눈을 돌리도록 우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 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 ; 사목 서간)
※ 참고문헌 장 엘마로 역주, 《디모테오 전 · 후서, 디도서》,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 10, 분도출판사, 1981/ 박익수, 《디모데전 · 후서, 디도서》,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 주석45, 대한기독교서회, 1994/ C.K. Barrett, E.E. Ellis · M.Wilcox eds.,Titus, Neotestamentica et Semitica Studies in Honour ofMatinew Black,Edinburgh, 1969, pp. 1~14/ M.J. Harris · D.A. Hagner eds., Titus 2, 13 and the Deity of Christ, Pauline Studies, Grand Rapids, 1980, pp. 262~2771 W.H. Ollrog, Paulus und seine Mitarbeiter, 《WMANT》 50, 1979/ J.D. Quinn,《AB》35, 1987. 〔李鎔結〕
디도에게 보낸 편지
- 便紙
〔라〕Epistola ad Titum · 〔영〕Letter toTitus
글자 크기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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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가 활약했던 그레데 섬 전경(왼쪽)과, 디도서의 저자로 여겨져 온 사도 바오로(파리 클뤼니 박물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