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드로, 드니 (1713~1784)

〔프〕Diderot, De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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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디드로.

드니 디드로.

프랑스 백과 전서파 가운데 한 사람. 1713년 10월 5일 프랑스 랑그르(Langres) 지방에서 태어나 예수회의 중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726년에 수도자가 되기 위하여삭발례까지 받았으나 환속한 후, 파리에 유학하여 얀센파(Janseniste)의 다르쿠르 학교(Collège d'Harcourt) 혹은 예수회의 루이 르 그랑(LouisleGrand) 학교 중 하나에 진학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1732년 학업을 마친 후, 10년간의 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으나 가정 교사, 번역 등을 하면서 일종의 방랑 생활을 하였다. 1742년 스타냥(Temple Stanyan)이 지은 《그리스사》 (Histoire dela Grèce)를 번역했으며, 그 해에 루소와 서로 알게 되었다. 이듬해인 1743년,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앙투아네트 샹피옹(Antoinette Champion)이라는 가난한 여자와결혼하였다. 1744년 루소는 그에게 콩디약(Condillac)을소개하였고, 그 이듬해 샤프츠버리(Shaftesbury)가 쓴 《공덕(功德)과 도덕에 대한 시론》(Essai sur le Mérite et la Vertu)을 번역 출판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유일신을 믿고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1746년에 간행된 《철학적 사색》(Pensees Philosophiques)에서는 이신론(理神論)과 자연종교로 전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회의론자의 산책》(Promenade du Sceptique, 1747)을 저술한 그는 위험 인물로 지목되어 교회와 경찰의 주목을받기 시작하였으며, 1749년 이신론에서 무신론과 유물론 쪽으로 한걸음 더 나아간 《맹인에 관한 편지》(Lettresur les Aveugles)로 인해, 7월 24일부터 11월 3일까지 뱅센느 감옥에 수감되었다. 루소가 옥중의 디드로를 면회하러 가는 도중에 디종 아카데미의 현상 논문 <학문과예술의 확립은 풍속을 정화했는가>에 대한 영감을 얻어1위에 입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옥중의 디드로는 오래견디지 못하고, 종전보다 훨씬 완화된 어조로만 쓰기로약속하고 옥에서 풀려났다.
백과 전서 활동 : 1745년 르 브르통(Le Breton)이라는서점상에게서, 1728~1729년에 영국에서 간행된 체임버스(Chambers)의 《백과 사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것을 번역만 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한 디드로는 새로운 백과 사전의 편집을 르 브르통에게 설명한 후, 과학 아카데미의 달랑베르(d'Alem-bert)를 역자(譯者)로 끌어들였다. 1747년 10월 이후,투옥 기간을 제외하고, 이 두 사람은 <백과 전서》(Encyclo-pédie)의 간행에 전력을 다하였다. 이 책은 구(舊)제도와그 사상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의도하는 것으로, 완성되기까지 많은 박해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초기의 협력자들이 대거 이탈하였으나, 디드로는 굴복하지 않고 비밀리에 편집 인쇄를 계속하여 1772년에 본문 17권, 도판 11권의 대사업을 완성하였다.
디드로의 저술은 철학 · 과학 · 문학 · 연극 · 미술 · 음악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으며, 그의 주요 저서들은 먼저 독일에서 독일어로 번역되어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1784년 죽을 때까지 무신론자로 남아 있었다.
〔사 상〕 세계관 : 디드로는 고정된 철학 체계를 확립하지 않았고, 그의 사상은 늘 유동적이었다. 그의 사상의 일반적인 특징은 독단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그는 열린 마음으로 사색하려 했고,의심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며 끝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그를 이신론자, 무신론자 혹은 범신론자라고 단정하여 부를수 없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는 감각주의, 경험주의, 물질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상가라고 불릴 수 있다. 그는 일찍이 볼테르, 루소, 콩디약처럼 감각주의의 이론에심취해 있었다. 또 그는 '모든 것은 흐른다' 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그에 의하면 우주는 단순한 물리적 체계를 갖는 전체이다. 물질은 절대 공간 속에서 빈틈없이 분자로 나뉘어지고, 이 분자는 여러 가지 종류로서 모두가 감성을 갖는다. 무기물의 분자는 죽은 감성만 가지고 유기물은 살아 있는 감성을 가진 분자로 구성되지만, 양자는 서로 자리바꿈을 할 수 있다. 유기물의세계에도 절대적 경계선이 없고, 식물과 동물, 동물과 인간은 서로 얽혀 있다고 하였다. 또한 세계는 무한한 진화의 과정에서 적자 생존의 원리에 의하여, 현재 보는 것과같은 모습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디드로는18세기의 기계론적 유물론에만 머무르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변증법적인 유물론에 접근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의 자연 과학적 시각이 기계론을 분명히 극복할 만큼 발전해 있지 않았으므로 그의 사상에는 모호한 점이많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그는 유기체적인 존재가순수히 물리적인 원인들에 의해 어떻게 진화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일반적인 변이(變移)의 가능성을 가정하였다. 때문에 그는 결정론적인 견해에 빠져들기도 하였으나, 개인의 운명이 생물적 · 물리적인 요인에 의해 완전히 규정될 수 없다는 여지를 남겨 둠으로써 결정론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 흔적을 보인다. 그의 물질과 사유에 대한 견해는 물질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 감각성이물질의 성질이며, 물질은 점점 복합성과 전문화를 증가시켜 나간다는 그의 믿음에 의하면, 사유는 고도의 복합적이고 전문화한 물질적 기관인 뇌의 성질이다. 그에 의하면, 기억은 신체적이며 자아는 물질적인 실재만을 갖는다. 이와 같은 그의 견해는 심리학에 과학적 · 생리학적인 기초를 부여하였고, 이러한 경향의 심리학은 19세기와 현대에 이르러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윤리 사상 : 이와 같은 디드로의 사상적 특징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희생, 관대함, 인도주의의 이상을 주창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물질주의와 윤리 사상 사이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디드로는 이 양자 사이에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의견해에 의하면, 윤리적 이상과 인간의 영혼에 대한 믿음사이에 본질적인 관계는 없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심리적인 행위에서 사유가 도출된다고 해서 높은 도덕적 이상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사유가감각에서 유래하거나 도출된다는 이론에서 도덕적으로악한 행위의 결과가 유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인간은 그가 있는 바대로 있고, 그가 힘을 쏟은 선한 목적이나 악한 목적에 따라 평가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는 윤리 사상에서 불변하는 도덕 법칙이라는 '이성주의자' 의 이상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는 이 법칙의 기초를 인간의 본성에서 즉 인간의 충동, 격정, 욕구의 유기적인 통일체에서 찾고자 한다. 그에 의하면, 도덕법의 기초는 이성의 선험적인(a priori) 명령에 있는 것이 아니다.그의 사회 · 정치 사상은 그의 인간관에 근거한다.
인간관 : 그는 튀르고(Trugot), 콩도르세(Condorcet), 콩트(Comte)처럼 점진적인 진보에 따라 인류가 완성 단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루소처럼 굴레를 씌우는 문명화한 사회에서 인간이 외톨이로 살아야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로서 늘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실존 방식에는 늘 갈등이 있을 수밖에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인간은 자신 안에 분열과 균형의심리 상태를 지닌 야릇한 존재이다. 또 열정은 선행과 악행에 필요한 충동력이다. 그는 인간의 낙원에서와 같은순진 무구한 상태와 이후에 생긴 타락의 상태를 인간 안에 존재하는 일종의 형제 싸움에서 상반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는 인간 본성의 선량한 측면을 따르는 정치질서의 모델을 기획하고, 그와 반대되는 사회 질서의 부패된 형태에 관하여 언급한다. 그에 의하면 이와 같은 부패된 사회 형태에서 인간 본성의 사악한 측면에 상응하는 행동 양식이 제도화한다고 한다. 그의 사상에서는 전통적인 질서, 그리스도교적인 현세 질서가 파괴된다.
종교관 : 그에 의하면, 신(神)은 모호한 존재이므로 교회에 관하여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신의 지상의 대리로서 이해되는 어떤 왕국에 관해서도 말할 수없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디드로가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말하는 것은 당시 사제라고 하는 이들의 집단이며,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가졌다고 자칭하는 절대주의적인 왕이다. 이들 모두는 실제로는 인간의 정신을 혼란케 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사제직과 절대왕국은 사회 질서의 부패된 형태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도들 안에서 괴물인 신이 정치적인 모습을 취하여 수백 년 간의 역사를 지배하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 정신의 진보 역사에 관하여 언급하는 가운데, 인간 정신의 혁명으로 인하여 '신법' (loi divine)의 자리에'자연법' (loi naturelle)이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디드로는 '천상 도덕' (morale céleste)을 거부하고 '지상 도덕' (morale terrestre)을 요청한다. 이러한 혁명에 따라 최상권자가 되려고 하는 자는 더 이상 '신의 은총을 통하여' (par la grace de Dieu)가 아니라, '그의 신민들의 은총을통하여' (par la grace de ses sujets)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최상권자인 왕은 모든 것을 '현세의 행복'(bonheur présent)의 실현에 투자해야 한다.
〔평가 및 의의〕 디드로는 당시의 다른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함께 프랑스의 정신적 · 정치 제도적인 부패 질서, 독단적인 가톨릭 교회, 신의 은총에 의거하는 절대주의적 왕정에 반대한 것이다. 그는 《철학적 사색》에서 신에 관하여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실제로 신에 관한 존재 증명이나 변신론이 중심이 되지는 않고, 그리스도교적인 존재 이해로부터 회의에 이르게 되는 자신의 사상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그의 중요한 의도였다. 디드로는인간 이성의 절대적인 고양(高揚)을 위해 신을 계몽주의 라는 제한점에 끌어다 놓고자 한 것이다. (→ 백과 전서파 ; 하느님)
※ 참고문헌  Hubert Guillot, Denis Diderot, L'homme, ses idéesphilosophiques, politiques, littéraires, Courville, 1937/ EncyclopaediaUniversalis, Paris, 1968/ Tilo Schabert, Arno Baruzzi ed., Aufklärung undMaterialismus im Frankreich des 18. Jahrhumderts, Miinchen : Paul ListVerlag, 1968, pp. 99~131/ 민희식, 《프랑스 문학사》, 이화여대 출판부,1976. 〔崔鍾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