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死海) 동쪽에 살던 모압인들의 도시. 지금의 요르단 왕국 디반(Dhiban) . 사해에서 동쪽으로 21km 지점,아르논 계곡에서 북쪽으로 5km 지점에 있다. 기원전 13세기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영도 아래 아르논 계곡을지나 디본을 차지한 다음 느보 산으로 갔다(민수 21, 21-25, 31). 그 후 여기에 르우벤 지파가 정착하였다고 하나(여호 13, 17), 실은 가드 지파가 정착하였기 때문에 디본 가드라는 명칭이 생겼다(민수 33, 44-45) .
기원전 9세기 모압 임금 메샤(Mesha)는 이스라엘 임금 오므리(886~875)와 아합(875~853)의 강점과 중과세에시달리다가 아합이 죽자 반기를 들었다. 이에 이스라엘임금 여호람과 유대 임금 여호사밧과 에돔 임금은 연합군을 형성하고 사해 남쪽에서 모압 땅을 공격하여 모압군의 마지막 거점인 키르하레셋(지금의 케라크?) 성을 공략하였다. 모압 임금 메사는 장남을 죽여 성 위에서 번제를 드렸다. 이것이 영험했던지 이스라엘 연합군은 물러갔다(1열왕 22, 47 : 2열왕 3, 4-27). 메샤는 이를 큰 승리로 여기고 850년경에 자기 고향 디본에다 모압어로 메샤 승전비(1×0.7m)를 세웠다. 메샤는 디본 바로 남쪽에카르호흐(Qarhoh)라는 지역을 새로 개발하여 수도로 삼고 케모쉬 신을 모시는 신전도 지었다. 메샤 승전비는 이신전에 안치된 듯하다.
1868년 독일 선교사 클라인(F.A. Klein)이 디본에서 처음으로 메샤 승전비를 발견한 다음 예루살렘에 살던 프랑스인이 탁본을 떴다. 서양인들이 이 돌에 관심을 쏟자디본 지역 아랍인들은 승전비 속에 무슨 엄청난 보물이숨겨져 있으리라 생각하고, 불로 돌을 달군 다음 찬물을끼얹었다. 그러나 돌만 박살나고 보물은 없었다. 프랑스 인 클레르몽 가노(Clermont Ganneau)는 깨어진 승전비 조각들을 3/5쯤 모아서 탁본과 비교하여 판독하고 1873년 루브르 박물관으로 보냈다. 메샤 승전비 모사품은 현재 예루살렘 록펠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비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손쉽게 영역(ANET)을 참고할 수 있다. 구약성서를 제외한 기타 문헌이나 금석문을 통틀어
메샤 승전비문에 처음으로 "야훼" 라는 신명(神名)이 나온다. "나(메샤)는 그곳(느보 산)에서 야훼의 기물들을 가져다가 케모쉬에게 바쳤다" (ANET p. 320). → 열두 지 파, 모압의 ; 야훼)
※ 참고문헌 A.D. Tushingham, 《ABD》 2, pp. 194~196/ BustanyOded, Mesha. Mesha Stele, 《EJ》 11, pp. 1397~1399/ J.A. Dearman ·Gerald L. Mattingly, Mesha Stele, 《ABD》 4, pp. 708~709/ J.B. Pritchard,Ancient Near Eastern Texts(略 ANET), Pricenceton Univ. Press, 1955, pp.320~321/ A. Millard, Treasures from Bible Times, Lion Publishing,1985(정태현 역, 《성서 시대의 보물들》, 성바오로출판사, 1992, pp.191~195). 〔鄭良謨〕
디본
〔히〕דִּיבוֹן · 〔영〕Di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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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디본에 세워졌던 모압 승전비(루브르 박물관 소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