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9월 30일, 교황 비오 12세가 발표한 성서 연구에 관한 회칙.
〔배 경〕 예수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신앙 공동체는,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이고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는 성서의신적(神的) 권위를 인정해야만 한다. 나아가 성서 안에서, 인간 역사 속에서 역사(役事)하는 하느님의 손길을찾아야 하고 더불어 성서의 메시지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의 삶 속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는 점을 믿어야만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메시아성을 믿는 신앙인은 성서의 신적인 권위와 성서 메시지의 항구한 가치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누구나 성서를 읽고거기서 생명력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것은 필연적이다.그런데 한때 성서에 대한 무지(無知) 현상은 가톨릭 교
회에 팽배해 있던 엄연한 현실이었다. 성서의 무지 현상은 종교 개혁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다. 교회의 가르침과 전통들을 무시한 채 '오직 성서뿐' (Sola Scriptura)을 주창했던 종교 개혁에 맞서기 위해 가톨릭 교회는 더욱 제도권적인 교회로 움츠러들었다. 더욱이 개인주의와 인본주의를 주장하며 개혁의 물결을 일으킨 르네상스 운동은유럽인들로 하여금 종교 개혁을 인간과 세상에 대한 혁명적인 개념으로까지 받아들이게 하였다. 이에 맞서기위해 가톨릭 교회 안에서는 안센주의(Jansenism)와 같은극단적 움직임이 생겨나게 되었다. 얀센주의와 더불어가톨릭 교회는 점차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으로 변모되어갔고, 그에 대한 자성(自省)의 소리가 높아지게 되었다.
한편, 가톨릭 교회는 1870년에 있었던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 와서야 비로소 성서의 영감(inspiratio)에 대해서정확하고 권위 있는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도교에서부터 중세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서의 영감에 대한 문제는 교회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16세기에 일어난 종교 개혁은 그교회로부터 떨어져 나와 새로운 교회를 만들게 되었던것이다. 그래서 트리엔트 공의회(1546)는 우유부단한 자세를 탈피하고, 균열이 생긴 영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종교 개혁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만 하였다.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교황 비오 12세는 회칙 <디비노아플란테 스피리투>를 내놓았는데, 이로써 교회가 나아갈 새로운 이정표를 만드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내 용〕 이 회칙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특별한 것중의 하나는 성서의 저자를 '성령의 도구' 로, 그러나 분별력이 뛰어난 생활한 도구 로 규정함으로써 성서 저자의 고유한 특성에 대해 강조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비오12세는 여기서 레오 13세의 <프로비덴티씨무스>(Provi-dentissimus, 1893. 11. 18)와 베네딕도 15세의 <스피리투스파라클리투스)(Spiritus Paraclitus, 1920. 9. 15)라는 회칙에서언급된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 회칙의 일부 내용을보면 다음과 같다. "성서 주석가는 거룩한 성서 저자의고유한 특성과 그의 삶의 조건들,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가 사용했던 성문화된 것이나 구전으로 된 원천들, 나아가 그가 기술하는 방법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분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거룩한 성서 저자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그가 책을 쓰면서 표명하고자 했던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주석을 하는 데 지켜야 할 최고의 규칙은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인지하고 규정하는 것인데 누구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비오 12세는 계속해서 성서 주석가들에게 고대의 저자들이 어떤 문학 유형을 사용하고자 하였는지, 다시 말해서 복음서 저자들이 말하는 방법이나 형태들이 그 당시,그 나라의 사람들이 사용하였던 것을 전수받았는지를 분별하여 올바로 인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오 12세가 요구하는 것을 따르려면 필연적으로 학문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비판학의 도움을 빌리지 않을수 없다. 한편 성서의 신적인 기원과 성서 저자의 자유를연계시키는 문제는 정당한 방식으로 설정된다. 성서를구성하고 있는 두 측면 즉 신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은 상호 존중되는 가운데 서로 제 위치를 찾게 된다. 이때부터신앙과 과학의 대화는 신뢰 가능할 뿐만 아니라 풍부한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된다. 그런 대화는 우선 성서적 탐구 자체를 통해 건전한 바탕 위에서 설정되어야만 한다.
비오 12세의 이 회칙은 고고학과 역사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과를 높이 평가함으로써 성서의 학문적 연구에대해 낙관론을 강하게 표명하고 있다. 이 회칙은 성서 언어들과 텍스트 비판에 관해 연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회칙이 발표되던 시대는 로마의 종교 재판소가 요한 1서5장 7절이 과연 진본(眞本)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던학자들을 단죄하였던 시대(1897)와는 거리가 먼 시대였다. 나아가 이 회칙은 이미 발표된 바 있는 다른 회칙들보다 성서의 문학적 의미를 찾는 데 더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다. "성서 주석가들은 그 무엇보다 문학적 의미라고 부르는 성서적 용어들의 의미를 식별해 내고 규정하는 일에 몰두해야 할 것이다"(27조). "주석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인식하고 규명하는 것이다"(34조). 이렇게함으로써 주석가는 각 텍스트의 신학적 교의를 찾아내야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 회칙의 내용들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최소한 구약성서 안에 나타나는 '문학 유형들' 을 인지하는것이다. 왜냐하면 신약성서의 특별한 문제점들이 그때까지는 제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학 유형들을명확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동방의 고(古)문학들에 대한연구에 기초해야만 한다(35조). 한동안은 성서의 권위에치명타를 가한 것 같이 보였던 그런 식의 비교 연구는 이스라엘이 자기의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에 있어서 탁월한모습을 지니고 있었음(36조)을 더 깊이 깨닫게 해주게되었다. 이 회칙은 성서학자들의 노력에 찬사를 아끼지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노력을 차분하게 지속해 가도록 성서학자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는 것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영향과 의의〕 성서의 학문적 연구의 문을 열어 놓은이 회칙은 전쟁의 와중에서 발표되었지만,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성서 연구를 가능하게 해주는 일종의 허가서와같은 것이었다. 회칙이 발표된 직후 이탈리아에서는 성서의 영적인 의미만을 주장하면서 성서에 대한 비판학적연구의 무용성(無用性)을 주장하는 자들을 반대하는 팸플릿이 즉시 발간되기도 하였다. 가톨릭 주석학은 1943년부터 많은 이들로 하여금 교의적인 원천을 찾아내는데 있어서 이 회칙이 경탄할 만한 비약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었다. 비록 이 회칙이 양식사(樣式史, Formgeschichte)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지만1964년에 발표된 <복음서들의 주석에 대한 성서위원회의 지침>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분의 구원사적 행위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형식화하는 데 있어서 신앙 공동체들이 참여하였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길을 활짝열어 주었다. 더 나아가 비가톨릭 주석학자들의 작업들이 오랜 기간 동안 의구심에 처해 있었지만, 그러한 의구심은 일치 운동을 진척해 나가는 데 있어서 본질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는 선의의 경쟁심으로 대체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 회칙은 성서의 삶의 자리를 올바르게 깨달아 성서 메시지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성서 텍스트에 관한 학문적 연구의 장(場)을 열어 주었다는 점에서, 성서에 대한 기존 인식을 불식시키고 성서에 더욱 가깝게 접근할 수 있도록함으로써 성서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새롭게 해주었다. (→ 비오 12세 ; 성서학)
※ 참고문헌 Pope Pius XII, 《AAS》 35, 1943, pp. 297~326/ A. Bea,Biblica 24, 1943, pp. 313~322/J.F. Whealon, 《NCE》4, pp. 925~926. 〔安秉鐵〕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
〔라〕Divino Afflante Spiritu
글자 크기
3권

성서 연구에 관한 회칙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를 발표한 비오 12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