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 포로 시절을 계기로 팔레스티나를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유대교의 규범과 관습을 지키며 살던 유대인 또는 그 거주지. 디아스포라는 '이산' (離散), '흩어져있음' 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또한 이 그리스어 디아스포라는 원래 유배(流配)를 뜻하는 구약성서히브리어의 번역이다. 그럼에도 그리스어 디아스포라에직접 상응하는 히브리어는 발견되지 않는다. 쓰라린 과거의 유배 생활을 회상케 하며 지난날의 부정적인 측면을 전제하는 말, 곧 고향에서 쫓겨나 여기저기 흩어져 살게 된 이들을 뜻하는 히브리어(신명 28, 25 : 30, 4 : 느헤1, 9 ; 시편 147, 2 : 에제 37, 21-22 ; 예레 34, 17 ; 다니12, 2)를 좀더 부드러운 그리스어로 옮겨 놓은 신학 전문용어라 할 수 있다. 이 용어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정의될수 있다. 첫째는 '유배' 를 뜻하는 말이고, 둘째는 팔레스티나 지방 이외의 타지방에 거주하는 유대인 공동체를부정적 · 긍정적 의미를 떠나 중립적으로 일컫는 말이다.점차적으로 '디아스포라' 는 외교인들 사이에, 또는 타민족들 틈에 섞여 이곳저곳에 분산되어 살아가는 소수의유대인들을 집단적으로 일컫거나, 이같이 살아가는 작은무리의 유대인 공동체를 지칭하는 전문 용어로 쓰여지게되었다. 오늘날 '디아스포라' 란 말은 비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끼어 여기저기 흩어져 살아가는 작은 무리의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일컫는 데 쓰이는 용어로도 통용되고있으며, 일종의 관용어이다.
〔용어의 발전〕 '(유배지로) 끌고 감' , '(포로) 끌려간 이들' 을 뜻하는 히브리어 גָּלוּת גּוֹלָה(아모 1, 6 : 예레24, 5 : 28, 4. 6 ; 29, 1. 4 : 40, 1 ; 52, 31 등)를 번역할때 70인역은 '디아스포라' 대신에 '전쟁 포로' , '(강제로) 끌고 감' 등을 뜻하는 용어들(예 : αἰχμαλωσία)로 옮겨놓고 있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아시리아로의 유배(기원전 721)나 바빌론 유배(기원전 587)의 뼈저린 체험이 차츰 퇴색되어 갔기 때문에, 그리스어를 쓰는 유대인들은 지난날의 쓰라린 체험들을 굳이 옛날처럼 되살리고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하여 70인역은 직접적으로 유배가거나 포로 생활하는 장면들을 표현하는 그리스어를피하고 단순히 '흩어지게 됨' 또는 '흩어져 있음' 을 뜻하는 그리스어 '디아스포라' 란 용어를 선택한 듯하다.여기저기 산재해 있거나 흩어져 있음을 뜻하는 그리스어'디아스포라' 는 어디든지 외교인들이 대부분인 세계 속에서 작은 무리의 유대인들이 분산되어 살고 있는 현상자체를 단순히 뜻하게 된다. 훗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차지하는 세계 역사의 내적 의미를 인식하고 디아스포라 유대인임에 대한 자부심까지 갖게 되었다.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신약성서에 단지 세번 나타날 뿐(요한 7, 35 ; 1베드 1, 1 ; 야고 1, 1), 70인역구약성서를 제외하면 기타 다른 그리스도교 문헌이나 유대교 문헌에서는 거의 그 용례를 찾아볼 수 없다(단 한 번의 예외가 있다 : PlutSuav VivEpic 27) .
〔개념의 발전〕 구약성서적 사고에서 '유배' 개념은 매우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 곧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범죄한 당신 백성을 징벌하는 방법으로 그들을 고국 땅으로부터 내쫓는다. 그러나 당신 백성을 사랑하기에 유배 기간은 한정되어 있다. 범죄하였기 때문에 포로가 되어 멀리 이국 땅으로 끌려 와 귀양살이하는 당신 백성이 회개하여 그 죄를 용서받게 되면, 하느님은 그들을 다시금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시켜 줄 것이다(에즈 1, 1-4 : 7, 12-26 ; 시편 137편 : 예레 29, 4-14 에제 1, 3 : 3, 15).
바빌론 유배를 통하여 잘 드러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범죄→ 유배→ 속죄 → 구원' 이라는 도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같은 도식의 이면에는 메시아의 구원을기다리는 시기에 즈음하여 '잃어버린 북이스라엘 왕국의10지파들' 이 남유대 왕국과 재결합하게 되리라는 성서적 희망이 자리잡고 있다. 이 점에 대하여 특히 에제키엘서 37장 15-28절이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다 : "나 이제 에브라임 수중에 있는 요셉과 그와 한편이 된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쓴 나무 막대기를 유대의 이름을 쓴 나무 막대기에 붙여 한 막대기로 만들리라. 둘이 하나가 되게 내가 잡고 있으리라⋯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나 이제 뭇 민족들 가운데서 이끌어 내리라.사방에서 모아 고국으로 데려오리라"(37, 19-21). 이 같은 사고는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을 계기로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곧 이러한 관념이 유대인들의 새로운 정치적 상황에 직결된다. 두 번째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과 아직 고대하고 있는 메시아의 도래 사이에 살아가는 유대인들의 삶에 직결된다.
근대 시온주의 운동 저변에는 바로 이러한 사고가 세속화된 양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시온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은 팔레스티나에 모든 것을 국한시키고자 한다. 예를 들면 시온주의의 한 양상은 매우 극단적인 형태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국가 '이스라엘' 밖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일컫는 말, 곧 '디아스포라' 란 용어조차도 거부한다. 따라서 이러한 극단주의자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의 생존권이나 '이스라엘' 이라는 국가 밖에서의 유대교의 정신적 또는 문화적 발전 가능성까지도거부하는 경향까지 띠고 있다. 이들 극단적 시온주의 주창자들에 따르면 '이스라엘' 밖의 유대인들, 곧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한다하더라도 정상적이 아닌 상태나 변화된 모습으로 이해된다.
디아스포라에서의 구원 희망 : 오늘날 유대교 내에서거론되는 바에 따르면, 특히 시온주의의 입장에 따를 때,'디아스포라' 개념은 그 자체로서 이미 흔히 '유배' 의의미로 이해된다. 의식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때때로 유배를 단지 장소적 의미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메시아적 대망 사상과 관련 짓고자 한다. 이에 따르면, 디아스포라에 머무르는 기간은 아직 구원받지 않은 시간,곧 완성되지 않은 시간으로서 그 안에서 이스라엘 시민들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바빌론 탈무드의가르침에 따르면 하느님 자신이 이스라엘과 함께 유배와서 이스라엘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bMeg 29a). 이와 같은 가르침은 16세기에 이르러 유대교카발라에(증세기에 시작된 유대교 신비주의)에 의하여 수용되며 우주적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어 발전된다.
오늘날 디아스포라 개념은 (특히 유럽 등지에서) 예수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며 인류의 구세주임을 믿고고백하는 여러 갈래의 그리스도교 교파들 사이에서도 사용된다. 이때 이 개념은 다수의 다른 교파 사이에 산재해있는 소수 무리의 교회(교파나 종파)의 입장을 표현하는데 사용되는 전통적 용어로 이해된다. 곧 소수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일컫는 데 통용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디아스포라란 용어는 유대인들에게뿐 아니라 비종교인들에게, 나아가 문학 작품들 안에서도 '낯섬' 또는 '소외감'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역사적 배경〕 유대인들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게된 배후에는 크게 두 가지 사건들이 자리잡고 있다. 북이스라엘인들의 유배와, 남유대인들의 팔레스티나로부터의 유배 사건이 그것이다. 또한 초세기에 와서 로마인들에게 항거하다가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티나를 떠나게되었다. 물론 유대인들이 산재해 사는 이유가 단순히 유배와 전쟁 포로에만 근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열왕기 상 20장 34절에 보면 이스라엘인들은 솔로몬에 의해 건립된 성전이 바빌론 제국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되기(기원전 587) 이전에 이미 이스라엘 영역 밖의 타지역에 무역 시장을 열었던 것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또한 기원전 6세기에 나일강 엘레판틴 섬에는 이집트에서 군인으로 일하던 유대인들이 거주했었다(이사49, 12). 바빌론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많은 유대인들조차도 그곳에서의 삶을 고달프게만 여기지는 않았던 것같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바빌론 유배지의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자유 칙령을 내렸을 때 소수의 유대인들만이 팔레스티나로 돌아갔으며, 많은 이들이 바빌론에 그대로 머물러 살았기 때문이다. 그 예를 우리는 에즈라와 느헤미야에게서 볼 수 있다. 그들은 바빌론에 그대로 머물러 살다가 팔레스티나로 돌아와 기원전5세기에 붕괴된 팔레스티나의 유대교를 재건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에즈 7장 ; 느헤 2장). 또한 예수와 동시대의 랍비 유대주의의 거장인 힐렐(Hillel)도 바빌론에서 팔레스티나로 돌아온 인물임을 볼 때 페르시아황제 고레스의 자유 칙령에도 불구하고 바빌론에 그대로머물러 살던 유대인들이 적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규모는 어떠했는가? 유대인역사가 바론(Salo W. Baron)의 견해에 따르면 1세기경에팔레스티나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의 수효가 약 200만 명에 이르렀으며, 팔레스티나 지방을 제외한 로마 제국의영역 안에만 400만 명의 유대인들이 거주하였고, 바빌론 제국 영역 안에 살던 유대인들과 로마 제국의 지배나통제를 받지 않는 타지역에 주거하던 유대인들의 숫자만해도 적어도 100만 명을 넘었으리라고 한다. 유대 본토를 떠나 다른 지방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대개의 경우 무역 시장을 개척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덧붙여 둘 바는 당시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머물던 지역의 많은 원주민들이 유대교로 개종하였다는 사실이다(J.J. Petuchowski). 이러한 사실들을 놓고 볼 때 유대인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된 동기가 반드시 전쟁으로 인한 포로나 유배에서 비롯된다고만 말하기는 힘들다 하겠다. 이사야서 11장 11절을 보면 이스라엘인들이 세 대륙에 걸쳐서 흩어져 있었음이 확인된다.
〔영향과 문화적 가치〕 외적인 숫자나 규모에서뿐 아니라 내적인 측면, 곧 종교적 · 문화적 활동에서도 디아스포라 유대교가 팔레스티나 본토 유대교를 훨씬 능가한다고 평가된다. 실상 팔레스티나 유대교가 성서의 본거지이며 전기 유대교 문헌을 창출해 낸 곳임에는 틀림없다.그럼에도 유대교 발전사에서 바빌론 탈무드는 팔레스티나 탈무드(예루살렘 탈무드)보다 훨씬 권위 있게 평가받고있다. 유대교 신학과 종교 철학, 그리고 유대교 신비주의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온 것도 팔레스티나 유대교보다는 디아스포라 유대교의 공헌이었으며, 유대교 전례의발전에도 디아스포라 유대교는 크게 기여하였다. 이와같이 팔레스티나에서 성서에 바탕을 두고 싹튼 유대교를한걸음 앞으로 발전시키고 키워 간 것은 디아스포라 유대교의 지대한 역할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2세기 인물인 랍비 오샤야(Oschaja)의 다음과 같은 표현을통하여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 "거룩하신 분, 그분은찬미받으소서 . 그분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은혜를베푸셨다. 곧 이스라엘 백성을 뭇 민족들 가운데로 흩어지게 하시는 가운데 그분께서는 이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것이다" (bPes 87b). (→ 게토 ; 유대교 ; 구약성서)
※ 참고문헌 A. van den Born, Bibel-Lexikon Zuerich, Herbert Haaged., Einsiedeln, Koeln. 3. Aufl., 1982, pp. 332~333/ Cecil Roth · GeoffreyWigoder eds., 《EJ》 6, pp. 8~19/ D. Sänger, διασπορά, 《EWNT》 1, HorstBalz · Gerhard Schneider eds., pp. 749~751/ J.J. Petuchowski, Lexikon derJuedisch-christlichen Begegnung, Freiburg-Basel-Wien, 1989, pp. 76~82/L.A. Sinclair, Theologische Realenziklopaedie, Bd. 8, Gerhard Krause ·Gerhard Mueller eds., Berlinl, New York, 1981, pp. 709~711/ Salo W.Baron, A Social and Religious History ofthe Jews, Bd. 1, Philadelphia,1952, pp. 167~171/ 유형기 편, 《성서 대사전》, 한국기독교문화원,1984, pp. 278~280/ 《가톨릭 사전》. 〔辛敎善〕
디아스포라
〔그〕διασπορά · 〔라 · 영〕diasp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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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