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그네토에게 보낸 편지》 - 便紙

〔그〕Επιστολή προς Διόγνητον · 〔라〕Epistola ad Diognetum · 〔영〕Diognetus Epi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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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교회 때 쓰여진 저자 미상의 호교론적 저술. 이문헌의 필사본이 처음 발견된 것은 1436년경 콘스탄티노플의 어느 생선 가게의 포장용 헌 종이 꾸러미 안에서였다. 그리스어를 공부하러 온 한 젊은이가 이것을 헐값에 사서 어느 신학자에게 넘겨준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그 후 이 필사본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bourg) 시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가 1870년 전쟁 때 소실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많은 사람이 이 문헌을 연구하고 출판한 뒤였다.
〔저작 및 특징〕 이 문헌의 저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추측이 있을 뿐이다. 2세기 교부들의 저서와 유사점들이많기에 유스티노, 이레네오, 히폴리토(Hippolytus), 과드라토(Quadratus) ,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ClemensAlexandriae) 등이 그 저자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어느 사람의 것이라고 확정할 수 없는 것이 이 문헌 연구의 실태이다. 한 교부와 유사점이 있는 그만큼 차이점도 많이 발견되고 있고, 다른 교부들이 이 문헌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에 현재로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다만 2세기 후반이나 3세기 초의 문헌이라는 점에 연구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다른 교부들의 호교론에 비해 간략하게 서술되었고,상대방을 설득하기보다는 내적이고 영적인 호소와 간결한 권유로 독자를 감화시키려는 것이 저자의 의도이다.다른 호교론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는 '부활' 과 '성서' 에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이 문서의 특징이다.저자는 성서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바오로의 서간들은 예외로 두 번 인용하였지만, 보통은 인용 없이 자기의 표현 안에 동화시켜 사용하고 있다.
이 편지는 그리스어로 된 그리스도교 문학의 가장 아름답고 가장 우수한 작품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저자는수사학의 권위자로 보인다. 문장의 운율은 호감을 주고문체는 간결하고 투명하다. 내용은 저자의 뜨거운 신앙심과 해박한 지식과 그리스도교 원리에 투철한 영혼을엿보게 한다.
〔내 용〕 이 문헌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디오그네토의질문에 답하는 편지 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그 질문을 서두에 요약하고 있다. "귀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종교에 대해 알고자 하는 열성으로 다음과 같이 명백하고 정확한질문을 해왔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어떤 신을 대상으로하는가? 그 신에게 바치는 경신 행위는 어떤 것인가? 이세상에 대한 그들의 공통된 경멸과 죽음을 두려워하지않음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리스인들이 인정하는 신들을 무시하고 유대적 미신 행위를 하지 않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그들 상호간에 보이는 이 큰 사랑은 어떤 것인가? 끝으로 이 새로운 백성, 이 새로운 생활 양식은 왜이제 와서 생겼으며 더 일찍 생기지 못하였는가?"
2~4장 : 저자는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와 제사, 유대인들의 제사와 의식 고수를 통렬히 비난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을 단순하면서도 대단히 빠른 어조로 설명한다. 이 부분에서는 자신의 독창적인 이론이라기보다 그시대 호교론의 일반론을 요약하고 있다.
5~6장 : 이 작품의 주옥과 같은 부분이다. 문장 구사에 있어서 다양한 기교, 운이 붙은 어조와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표현은 저자의 수사학적 능력을 엿보게 한다. 간결한 문장, 다양한 표현과 율동성 있는 급한 어조로 저자가 묘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현세 생활의 깊은 의미이다.
"그리스도인들이라 해서 다른 사람들과 나라를 달리하는 것도, 언어를 달리하는 것도, 의복을 달리하는 것도아닙니다. 그들은 자기네들 고유의 도시에 사는 것도 아니고, 어떤 특수한 방언을 쓰지도 않으며 그들의 생활이란 특수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의 교리는 광신자들의 상상이나 꿈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어떤 사람들과 같이 인간적 가르침의 전문가들도 아닙니다. 그들은 각자의 운명에 따라 그리스나 야만인들의 도시에 흩어져 삽니다. 그들이 속하는 영적 세계의 특수하고 역설적인 법을 잘 나타내 보이면서도 의복, 음식, 생활 방식에 있어서는 그 지방의 관습을 따릅니다. 그들은각자 자기 조국에 살지만 나그네, 거류자들과 같습니다.시민으로서 모든 일에 참여하지만 나그네와 같이 모든것을 참고 견딥니다. 모든 이역(異域)이 그들에게는 조국이고 모든 조국이 그들에게는 이역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들도 결혼하여 어린아이를 가지지만 아기를 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과 식탁을 함께하지만 잠자리를 함께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육신 안에 살지만 육신을 따라 살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지상에 살고있지만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들은 기존하는 법에 순종하지만 그들의 생활 방식은 법을 초월합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모든 사람으로부터 박해를 당합니다. 그들은 무시당하고 단죄받고 죽임을 당하지만 생명을 얻습니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해줍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지만 모든 것을넘치게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경멸당하지만 이런 경멸안에서 영광을 보고 중상당하지만 의인이 됩니다. 그들은 모욕당하고 축복하며, 폭행당하고 존경합니다. 그들은 선행을 하고 벌을 받으며 벌을 받고도 생명을 얻은 듯기뻐합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이교도로 취급하여 그들에게 덤비고 그리스인들은 그들을 박해합니다. 그러나그들을 미워하는 사람들도 그 미움의 원인을 말하지는못합니다.
한마디로 영혼이 육신 안에 존재하듯 그리스도인은 세상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육신의 모든 부분에존재하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의 모든 도시에 흩어져존재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육신 안에 살고 있으면서도육신에 그 기원이 있지 않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세상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혼이 보이는 육신 안에 갇혀 있듯이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 안에 있음을 볼 수 있지만 그들이 하느님께 바치는 예배는 보이지 않습니다. 육이 자기에게 해를 주지 않는 영혼을 미워하고 싸움을 거는 것은영혼이 육의 쾌락 추구를 반대하기 때문인 것처럼, 세상이 자기에게 해를 주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것은 그 쾌락 추구를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자기를미워하는 육과 그 지체를 사랑함은 그리스도인이 자기를미워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혼은 육신 안에 갇혀 있지만 영혼이 육신을 살려 주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라는 감옥 안에 갇혀 있지만 세상을 살려 줍니다. 불사 불멸의 영혼이 죽을 운명의 천막 안에살고 있듯이 그리스도인 역시 하늘 나라 불멸의 운명을기다리면서 썩어 없어질 세상 안에 살고 있습니다. 영혼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극기할 때 진보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당할수록 나날이 더 증가합니다. 하느님이 그들에게 주신 지위는 그렇게 고상한 것이기에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7~9장 : 신앙 내용의 간단한 해설이다. 여기서 저자는 디오그네토의 질문 중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신을 대상으로 하는가'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와, 계시가 '왜 그렇게 늦었는가 하는 질문에 답한다. 먼저 그리스도교 신앙은 계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하고 그 계시의 주체인 하느님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러나 '아버지' 와 '아들' 에 대해서 말하면서 '성령' 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교의사에 '성령' 에 대한 언급이 명백하게 나타나는 것은 4세기 이후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시기의 공통된 가르침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느님의 계시는 그분의 사랑과 자비의 결과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당신에게로 부르기 위해 그분을 보내셨으며, 또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분노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는 것은초대 교회 전통을 반영하는 것이다. 죄의 기원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어 이성을 지녔지만 죄를 짓고 타락하였다. 영원한 죽음이 합당한 벌이지만 하느님은 '온유하심과 친절하심' 으로 당신 아들을 구세주로 파견하셨다. 이 문헌은 구원의 필요성을 아담의 범죄에다 결부시키지 않고 세상의 죄 때문임을 강조하여 그리스 교부들의 공통된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다.
이 문헌에서 하느님의 아들은 말씀이며 진리이다. 따라서 계시와 구원은 구별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없으면 하느님에 대한 자연 인식이 불가능하며 구약의 예언자들은 구원을 위해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그리스도가 오셨기에 그리스도인은 인류 역사 안에서 새로운 시기를 살게 되었고 하느님 나라에 어떤 양식으로든 참여하게 되었다. 신앙은 하느님을 알게 해주고 말씀을 우리 안에 현존하게 한다. 이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순교이다. 순교자들이 주님을 배신하지 않고 순교하는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말씀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 안에 현존하시기 때문이다.
계시가 그렇게 늦게 주어진 이유에 대한 디오그네토의질문은 2세기 이교도들이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부인하기 위해 항상 동원하던 논리를 반영한다. 그리스도교에대한 이교도들의 이 반박은 그 당시 교회에 심각한 어려움을 갖다 주었다. 당시의 사회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것일수록 그 권위를 인정하였고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교도들의 이 반박앞에서 많은 교부들은 그리스도교가 뒤늦게 새로 생긴종교가 아니며 이미 구약성서에 그 기원이 있는 종교라고 말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순교자 유스티노(Justinus)의 호교론이다. 오리제네스(Origenes)는 구원을위한 교회는 영원으로부터 있었다고 말하면서 이 문제에답하려 하였고, 이레네오(Irenaeus)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복음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이 교육적 동기에서 기다리셨다고 답한다.
이 편지의 저자는 디오그네토의 질문이 이런 반박 논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대답한다. 구원 경륜은 하느님이 영원으로부터 세우신 계획이지만 그 실현의 시기는하느님 안에 감추어진 신비이다. 하느님이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을 버렸거나 무관심하였기때문이 아니다. 하느님은 절대자이기 때문에 그분 안에아무런 악의가 있을 수 없고 우리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없다. 하느님은 이 기다림으로써 당신의 충만한 사랑과인내심을 보여준 것이다. 구원 경륜에 대한 저자의 설명저변에 흐르는 것은 구원의 무상성(無償性)이다. 철학은하느님 앞에 무력하지만 하느님의 계시는 하느님을 알수 있는 특권을 우리에게 주었다. 우리는 우리 죄 때문에구원될 수 없는 처지이지만 하느님은 당신의 의로움으로우리를 의롭게 만든다. 이것은 "감미로운 교환이며, 헤아려 짐작할 수도 없는 일이고, 예상 밖의 큰 은혜이다.""하느님은 과거에는 우리 본성의 무능력이 생명을 얻지못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셨고, 현재는 우리에게 불가능하던 구원을 줄 힘을 가진 구세주를 나타내 보이셨다."
10장 : 이 장부터는 저자의 어조는 달라져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설명하고 독자에게 그 실천을 간곡히 권유한다. 즉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하며, 그 사랑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웃을 탄압하며 약한 자를 짓밟고 재산을 축적하며 아랫사람들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행위 등은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도 않고 하느님을 본받는 행위도아니다." 그러나 "이웃의 짐을 대신 지는 자···· 이웃에게베푸는 자, 자기가 받은 것을 이웃이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내어 주는 자, 이런 사람은 그 혜택을 받는 사람 앞에서는 하느님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진실로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다."
11장 : 여기부터 이 문헌의 결론이다. 독자를 세례 예비자로 생각하고 친밀한 어조로, "진리 자체이신 분의제자 되는 사람들에게 전승된 바를 배우라고 권고한다.이 전승은 사도들의 설교로 지속된다. 교회는 '율법이존중되고, 예언자들의 은총이 인정되며, 복음서들에 대한 신앙이 굳어지고, 사도들의 전승이 보존되는' 곳이다. 결국 교회는 말씀에 충실한 백성이다. 초기 교회의모든 문서가 그러하듯이 이 저자도 교회의 조직체로서의성격이나 교계 제도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없다. 교회는 구원의 말씀이 보존되고 지속되는 특권적영역이다.
12장 : 참다운 지식(gnosis)에 대해 서술한다. 그리스도인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신비와 구원 경륜에대해 얻는 지식을 말한다. '지식' 이라는 단어를 열 번이나 사용하면서도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비전적(秘傳的) 지식이라는 그노시스주의적 경향은 전혀 나타나지않는다. 저자는 창세기 낙원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지식과 생명을 나란히 놓고,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건설합니다"(1고린 8, 1)라는 말씀을 빌려, 지식과 생명은 병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둘을 향상시켜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결론짓는다. (→ 호교 교부 ; 호교가)
※ 참고문헌  서공석, (디오그네토에게, 2세기 무명 교부의 신앙해설>, 《신학전망》 20호(1973. 3), pp. 69~86/ P. Andriessen, L'apologiede Quadratus conservée SOUS le titre d'Epitre a Diognète, Recherche deThéol. ancienne et médiévale 13, 1946, pp. 5~39, 125~149, 237~260 ; 14,1947, pp. 121~156/ R. Connolly, The Date and Authorship of the Epistle toDiognetus, 《JThS》 36, 1935, pp. 347~353/ J. Geffcken, Der Brief anDiognetos, Heidelberg, 1928/ H. Marrou, Lettre à Diognète, SourcesChrétiennes n. 33 bis , Paris, Cerf, 1965/ A. Roberts · J. Donaldson, Theante-Nicene Fathers, vol. 1, Michigan, W.B. Erdmans, 1985, pp. 23~30. 〔徐公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