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성인. 파리의 초대 주교. 축일은 10월 9일. 파리대교구를 비롯한 여러 교구의 수호 성인인 디오니시오는, 3세기 중엽 성 파비아노 교황(236~250)에 의해 당시루테시아(Lutetia)로 불리던 현재의 파리 지역에 복음을전파하기 위해 파견되었는데, 전교 활동 중 체포되어 동료 일레우테리오(Eleautherois) 부제와 루스티코(Rusticus)사제와 함께 참수형을 당하였다.
그의 수난에 관해서는 현재 세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있다. 첫 번째 전설은 선교 활동에 크게 성공을 거둔 그들이 참수당한 후 시체가 센(Seine) 강에 던져졌다고 하나, 다른 전설에 따르면 참수 후 자신의 머리를 들고 파리 북쪽을 향하여 걸어갔다고 한다. 520년경에 출간된《성녀 제노베파의 생애》(Vie de Sainte Geneviève)라는 책에는 디오니시오가 이미 전례적 공경의 대상이었고, 디오니시오가 걸어간 장소를 현재 파리 북쪽에 위치한 생드니(Saint-Denis)라는 지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디오니시오가 매장된 이 장소에 그를 기념하는 대성당이 세워져 있다.
두 번째 전설은 순교의 장소가 메르쿠리우스(Mercu-rius) 신을 경배하던 언덕이었으나 후에 '순교자의 산'(Mons Martyrum)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으로 한정하고 있다.
세 번째 전설은 파리의 주교였던 디오니시오, 1세기에아테네에서 바오로 사도에 의해 개종한 재판관 디오니시오(사도 17, 33-34), 또 바오로 사도가 아테네로 여행할때 개종한 익명의 신비주의적 저술가 등 세 사람을 서로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17세기까지 계속된 이 혼동에도 불구하고 이들간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것은확실하다. 특히 재판관 디오니시오는 아테네 상급 법원의 판사였는데, 개종 후 아테네의 초대 주교가 되었다. 이러한 혼동은 디오니시오에 관한 여러 저작의 내용이약간씩 차이가 있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즉 투르의 그레고리오(Gregore de Tours)의 저작에는 디오니시오가 3세기에 파리 지역으로 온 것으로 되어 있으나, 다른 저작에는 3세기가 아닌 1세기 말에 글레멘스 교황에 의해 파견되었다고 하며, 또 다른 저작에는 디오니시오의 순교 시기를 도미시아누스 황제 치하인 81~96년 사이로 규정하고 있다. (→ 몽마르트르)
※ 참고문헌 H. Leclercq, Abbaye de Saint-Denis, Dictionaired'archéologie chrétienne et de liturgie, vol. 4, Paris, Librairie Letouzey,1934/ O. Englebert, La Fleur des Saints, Paris, Albin Michel, 1984/ M.Dubost et al., Théo, Paris, Droguet-Ardant, Fayard, 1992/ M. Driot, Le Saintdujour, Paris, Mediaspaul, 1995. 〔편찬실〕
디오니시오 (?~258)
Dionysius
글자 크기
3권

참수 후 자신의 머리를 들고 있는 성 디오니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