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활약한 수도자. 교회법학자. 스키티아(Scythia)곧 지금의 루마니아 도브루자(Dobrudha)에서 태어났다.생몰 연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수도자로서 로마에서 5세기 말부터 6세기 전반기에 걸쳐 눈부신활약을 하였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엑시구우스'(exigus, 작은, 미소한)라는 별명은, 디오니시오가 겸손의뜻으로 스스로 붙인 것이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능통했던 그는 방대한 양의 번역 작업과 교회법 편찬 작업,부활 주일 날짜 계산 작업 등을 하였는데, 이 모든 작업들은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 사이의 이해와 화해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번역 작업〕 그리스어로 된 문헌들을 라틴어로 번역하였는데, 그중에 중요한 것으로는 《파코미오 전기》(VitaPachomii PL 73, 227~282), 《세례자 요한 머리의 발견 역사》(Historia inventionis capitis S. Johannis Baptistae : PL 67,427~432), 니사의 그레고리오의 《인간 창조》(De creationehominis : PL 67, 347~408) ,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의 《네스토리우스 논박 서간》(Epistola synodica S. Cyrilli et conciliiAlexandrini contra Nestorium : PL 67, 9~18), 콘스탄티노플의 프로클루스의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보낸 신학 서간》(Tomus ad Armenos : PL 67, 407~418) 등이 있다.
[교회법 편찬 작업] 496년 젤라시오 1세 교황의 요청을 받아 교황청 문서고의 문서들을 분류 · 정리하면서 세차례에 걸쳐 《교회법전》(Codex canonum ecclesiasticorum)을 편찬해 냈다. 이 법전에는 《사도 법전》(Constitutionesapostolicae) 중에서 50개 법규, 그 다음 동방 교회 안에서널리 인정받고 있는 니체아 공의회 · 안키라 주교 회의 ·네오 가이사리아 주교 회의 · 간그라 주교 회의 · 안티오키아 주교 회의 · 라오디게이아 주교 회의 ·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등에서 결정된 165개의 법규, 칼체돈 공의회의 27개 법규, 세르디카 주교 회의의 20개 법규, 카르타고 주교 회의의 138개 법규 등 총 400항목의 법규가 수록되어 있다. 그는 다시 심마코 교황(498~514)의 《법령집》(Praeteritorum sedis apostolicae praesulum constituta)을 편찬해 냈다. 그리고 《교회법전》의 제2차 편집에서는 이《법령집》을 덧붙여서 편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디오니시오 문집》(Dionysiana collectio)이다. 또 호르미스다스교황(514~523)의 요청에 따라, 동방 교회의 여러 주교 회의들에서 결정된 다른 법규들을 모아 편찬하였는데 오늘날 그 서문만 전해 온다. 교회법전의 창시자라고 일컬어지는 디오니시오의 명성은 중세기에 더욱 높았다. 그는교의적인 측면에서 니체아 공의회의 절대 권위를 인정하여 그 결정 사항들에 어떠한 변경도 가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교회 규율적인 측면에서는 다른 교회들에 대한 로마 교회의 수위권을 강조하였다.
〔부활 주일 계산〕 초세기부터 부활 주일의 날짜를 정하는 방법은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서로 달랐다. 부활주일은 유대인들의 과월절 축제와 연관되어 지켜져 왔는데, 과월절은 유대 월력으로 니산 달 15일에 시작된다.동방의 시리아와 소아시아 교회에서는 예수가 돌아가신날, 곧 과월절 전날인 니산 달 14일을 고수하여 요일에상관없이 부활 주일로 지내는 전통이 있었고, 다른 교회들은 예수가 부활한 날이 일요일이었음을 기념하여 부활주일을 일요일에 지냈다. 그런데 음력은 양력에 비해 1년에 11일이나 적어 몇 년이 지나면 큰 차이가 생기므로, 니체아 공의회(325)에서는 이러한 편차를 줄이기 위해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전통에 따라 '19년 주기' 즉 19년에 7번의 윤달을 넣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한편 로마교회는 84년 주기에 따라 부활 주일을 양력 3월 25일과4월 21일 사이에 지내는 전통이 있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주기법은 모두 양력과 음력 사이의 편차를 가급적 줄여 보자는 시도였다. 각 교회는 다가올 해의 부활 주일날짜를 미리 계산하여 배포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동방에서는 알렉산드리아의 테오필로와 그 뒤를 이어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가, 서방에서는 아퀴타니아의 빅토리오가 531년까지 작성했었다. 디오니시오 엑시구우스는 부활 주일 계산법에 관한 저서를 여러 권 남겼으며(Libellusde cyclo magno paschae, Argumenta paschalia, Epistola duae de rationepaschae 등), 니체아 공의회에서 결정한 방법을 채택하여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의 뒤를 이어 532년부터 626년까지 95년 간의 부활 주일 날짜를 미리 계산하여 축일표를 작성하였다. 또한 그는 처음으로 그리스도교의 시대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고 예수는 로마 건국으로부터 754년 되던 해의 12월 25일에 탄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전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서력 기원(西曆紀元)의 시작이다. 그의 계산은, 후에 밝혀진 대로 약 4년의 오차가 있으나, 이 오차는 오늘날에도 수정되지 않은 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 부활 축일 논쟁 ; 전례력 ; 《교회법전》의 역사)
※ 참고문헌 U. Moricca, Storia della Letteratura Latina Cristiana, Ⅲ-2, Torino, 1934, pp. 513~514/ Rambaud-Buhot, 《DDC》 4, Paris, 1949, pp.1134~1152/ W. Peitz, Dionysius Ex, Studien. Neue Wege der philol. undhistor. Text-und Quellenkritik, Berlin, 1960/ B. Altaner, Patrologia, Torino,1980, pp. 513~514. 〔李瀅禹〕
디오니시오 엑시구우스 (470?550?)
Dionysius Exigu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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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