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 안티오키아 학파의 신학자. 성서 주석가.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나 394년경에 다르소에서 사망했다. 훗날다르소의 주교가 된 실바노(Silvanus)와 에메사(Emesa)의에우세비오에게서 신학과 성서를 교육받았다. 율리아누스 황제의 증언에 따르면 디오도로는 아테네에서 세속학문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고 하며, 소크라테스와 소조메노(Sozomenus)에 따르면, 안티오키아 부근에 있는 수도원의 책임자였다고 한다.
안티오키아 학파의 교사로서 이교도들과 이단자들에대항하여 니체아 신경을 옹호한 디오도로는, 그로 인해율리아누스 황제의 미움을 받았다. 율리아누스 황제는디오도로를 '갈릴래아인들의 마술사' 요 '농부들을 위한종교의 열렬한 옹호가 라고 평하면서, 그리스도의 신성은 디오도로의 창작물이며, 수치스러운 십자가 상 죽음을 당한 그리스도의 영원성은 전설에 기초한 것이라고주장하였다. 372년 율리아누스 황제의 후계자인 발렌스(Valens) 황제는 디오도로를 아르메니아(Amenia)로 추방하였는데, 그곳에서 디오도로는 대 바실리오(329-379)와 친분을 갖게 되었다. 378년 황제가 사망한 후, 다시안티오키아로 돌아와 안티오키아의 주교인 멜레시오(Meletius)에 의해 치칠리아(Cicilia) 다르소(Tarsus)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그 후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참석하였는데, 381년 7월 30일 공의회 교령을 인준한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 ) 황제는 포고령에서, 디오도로를 '신뢰할 만한 정통성의 중재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디오도로는 대부분의 삶을 안티오키아 인근에 있는 수도원에서 보냈는데, 그곳에서 행한 가장 중요한 일은 문자적 · 역사적 성서 해석의 기초 확립이었다. 이 해석 방식은 방대한 성서 주석서를 편찬한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와 성서 주석식 강론으로 명성을 떨친 요한 그리소스토모를 제자로 배출하게 하였다.
디오도로는 살아 있을 당시에 다양한 이단뿐 아니라이교 신앙과도 맞서 싸운 정통 신앙의 기둥으로 존경을받았다. 요한 그리소스토모는 그를 '살아 생동하는 순교자' 라 하였고, 포시우스(Phoins)는 "경건한 사람들 가운데서 분명한 영웅이다" 라고 평하였다. 그 반면에 438년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는 《디오도로와 테오도로 논박》(Contra Diodorum et Theodonum)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디오도로가 스스토리우스주의의 발생에 책임이 있다고고발하여, 결국 디오도로는 499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교회 회의에서 네스토리우스주의의 주창자로 단죄되었다.
〔저 서〕 디오도로는 성서 주석, 호교론, 교의 부분, 우주론, 천문학, 연대학 등의 분야에서 많은 저서를 남긴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행히도 네스토리우스주의의 주창자로 단죄된 이후, 많은 작품들이 폐기되었기 때문에그 후 남아 있는 작품들을 모으려는 노력들이 계속해서행해졌다. 최초의 노력은 예수회 회원이었던 가르니에(Garnier, +1681)에 의해 이루어졌고, 최근에는 아브라모프스키(R. Abramowski)에 의해 독일어로 새로운 모음집이 나왔고, 브리에르(Briere)와 레봉(Lebon)도 모음집을발간하였다.
성서 주석서 :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유비적(類比的)해석 방식을 거부하고 역사적 · 문법적 방식을 따르고 있다. 수이다스(Suidas)는 '테오로로 렉토르(T.Lector)가 디오도로가 저술한 구약성서 전체와 4복음서, 사도행전 그리고 요한 1서 주석서를 알고 있었다' 고 한다. 스타압(Staab)은 디오도로가 로마서 주석서를, 예로니모는 고린토 전서와 데살로니카 전서 주석서를 저술하였다고 하면서 자신의 저서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하였다.
교의적 · 논증적 · 호교론적 작품들 : 이교인들, 유대인들 그리고 각종 이단에 대하여 호교적이고도 논증적인작품을 저술하였다. 칼체돈의 주교였던 헤라클리아노(Heraclianus)에 따르면, 디오도로가 25권의 《마니교도논박》이라는 작품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또한 시리아어《단편록)(Florilegium)은 《아폴리나리우스파 논박》(ContraSynusiastas)이라는 디오도로의 작품에서 33곳을 인용하였다. 테오도레토스(Theodoretos)는 《포티누스(Photinus),말키온(Malchion), 사벨리우스(Sabelius) 그리고 안키라(Ancyra)의 마르첼루스(Marcellus) 논박》이라는 작품을언급하고 있다. 이외에도 수이다스는 많은 작품의 이름을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하고 있으며, 특별히 포시우스는 "이미 디오도로가 네스토리우스 이단에 물든 것을 보여 주는" 《성령에 관해》라는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 작품들은 남아 있지 않다.
하르낙(Harnack)과 페티소프(Fetisov)는 《정통에 대한문제와 책임》(Quaestiones et Responsiones ad orthodoxos)《이방인들에 대한 그리스도교인들의 물음》(QuaestionesChristianorum ad gentiles),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이방인들의 물음》(Quaestiones gentilium ad Christianos), 《아리스토텔레스 교의에 대한 논박》(Confutaion dogmatum Aristotelis)이라는 4편의 가(假)유스티니아노(Peseudo-Justinian) 작품이디오도로의 저서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주장은 학자들간에 일치를 보고 있지 못하며, 이 4편의 작품 중《정통에 대한 문제와 책임》은 키로(Cyus)의 테오도레토스의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적 · 연대학적 작품들 : 수이다스는 5편의 작품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천문학자, 점성가 그리고 운명을 논박함》(Contra astronomos et astrologos et factum)이라는 8권으로 된 이 작품은 운명과 별들의 무한한 힘에 대한 믿음에 반대하면서 하느님과 그분의 섭리에 대한 신앙을 옹호하고 있다. 또한 악의 기원과 바르데사네스(Bardesanes)와 그의 추종자들을 논박하고 있다.
또한 수이다스는 디오도로가 가이사리아의 에우세비오를 반대하여 《연대기》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성서에서의 연대기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보인다.
〔사 상〕 디오도로의 저서가 단편으로 남아 있고, 이 단편들 또한 디오도로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에 그의사상을 정확하게 재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그릴마이어(A. Grillmeier)와 켈리(J.N.D. Kelly)와 같은 학자들은 디오도로의 그리스도론이 말씀-육 그리스도론'(Logos-sarx christology)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설리반(F.A. Sullivan)이나 그리어(R.A. Greer) 같은 학자들은'말씀-인간 그리스도론' (Logos-anthropos christology)이라고 주장한다. 이 두 가지 그리스도론 양식 중 어느 것이디오도로가 전개한 그리스도론인지 결론지을 수는 없다.이와 같은 의견의 불일치는 디오도로의 저서가 오직 단편으로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디오도로의 사상 가운데분명한 것은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양성을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디오도로는 아리우스주의자들처럼 그리스도의 신성이 감소되는 것을 거부하였고, 사모사타의 바오로와 그 추종자들처럼 그리스도를 단순한 인간으로 보는 것도 거부하였다. 그러나 디오도로에게 있어서 예수의 영혼은 아직 신학적 요소로 자리하지는 않았다.
디오도로의 그리스도론을 '말씀-육 그리스도론' 으로볼 때, 그의 그리스도론을 안티오키아 학파적으로 볼 수있는 것은 그가 육화 체험의 직접적 주체로 로고스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난 분이라거나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분' , '고통을 받고 죽은 분'은 로고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로고스는 두 번의 탄생을 경험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는 성서를 주석하면서 그리스도가 인간이라는 면에서는 다윗의 후손이지만,로고스라는 점에서는 다윗의 주님이라고 하였다. 이 두주체는 구분되며 그리스도의 인성 역시 신성에 의해 억압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다윗의 아들이란 칭호는 인간적 주체에만 해당되는 칭호이고 주님이란 칭호는 오직 하느님에게만 부여되는 것이지만, 다윗의 후손에게 주님이란 칭호가 부여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그는 엄격한 이원론적 토대 위에서 '양성' (兩性) 그리스도론을 주장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본질적이고 실체적일치를 주장하였지 결코 본성적 일치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결국 디오도로는 '하느님의 아들' 과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아들' 사이의 구분을 엄격히 함으로써 그리스도를더 이상 하나의 위격으로 보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자신은 하느님의 두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본성상 하느님의 아들과 은총에 의한 하느님의 아들을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두 아들로 분리하였고 따라서 그리스도를 두 위격으로 주장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는 디오도로를 네스토리우스주의의 주창자라고 고발한 것이고 교회 회의에서 단죄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디오도로의 사상은 그의 후계자인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로 이어지게 되었다. (→ 네스토리우스주의 ; 안티오키아 학파 ; ← 다르소)
※ 참고문헌 P.B. Schmid, Grundlinien der Patrologie(정기환 역, 《교부학 개 론》, 컨콜디아사, 1993)/ J.N.D. Kelly, Early ChristianDoctrines(김광식 역, 《고대 기독교 교리사》, 1990)/ Justo L. Gonzalez,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vol. 1(이형기 · 차종순 역, 《기독교 사상사》, 대 한예수장로회총회 출판국, 1990)/ F.M. Young, The Making ofthe Creed(이후정 . 홍삼열 역, 《초대 기독교 신조 형성사》, 컨콜디아사, 1994)/ A. Grillmeier, Christ in Christian Tradition 1, London &Oxford : A.R. Mowbrays & Co. Ltd., 2nd, revised ed., 1975/ B. Altaner,trans. by H.C. Graef, Patrology, New York, Herder and Herder, 2nd ed.,1960/ Johannes Quasten, Patrology, vol. 2, Westminster, The NewmanPress, 1953/ F.M. Young, From Nicaea to Chalcedon, London, SCM Press,1st ed., 1983/ F.A. Sullivan, The Christology ofthe Theodore ofMopsuestia,Roma, Gregorian Univ., 1956/ R.A. Greer, The Antiochene Christology ofDiodore of Tarsus, 《JThS》, NS 17(1966. 10)/ F.A. Sullivan, 《NCE》4. 〔邊宗燦〕
디오도로, 다르소의 (?~394?)
Diodorus Tars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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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