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우투르눔 일룻>

〔라〕Diuturnum ill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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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6월 29일 국가 권력에 대한 입장을 밝힌 교황 레오 13세(1878~1903)의 회칙.
〔배 경〕 보기 드문 학자요 탁월한 지도자였던 교황 레오 13세는, 교황으로 즉위하자 천부적인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여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화해 정책을 추진하였다. 당시는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 그리고 19세기 자유주의 사조로 인하여 교회와 사회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전임자였던 교황 비오 9세는 교황령의 몰락과 더불어 속권을 포기하고 정신적인 지도자로서 교회 내부의 결속 강화에만 몰두하여, 유럽 각국의 정부와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갈등을 치유하기 위하여, 레오 13세는 특유의 외교 전략으로 가능한 한 교회가 처한 곤경을 완화시키고 충돌을 피해 가며 각국 정부와 교회의 관계 회복을 추구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독일과의 관계이다. 레오 13세는 교황으로 선출된 바로 그날 독일 황제에게 관계 개선 희망을 피력하고 비스마르크와 협상하여, 이른바 문화 투쟁(Kulturkampf)이라는 반교회 법률을 완화시켰다. 1883년부터는 독일에 주교 임명을 재개하여 추방당한 주교들이 귀환하게 되었으며, 1884년에 정식 외교 관계가 다시 수립되었고, 1886년에 이르러서는 문화 투쟁이 거의 사라져 여러 수도회들의 독일 귀환이 이루어졌다. 또한 러시아, 프랑스, 벨기에, 영국, 아일랜드 등의 정부와 교회의 우호
관계 증진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였으며, 1892년에는 미국 워싱턴에 교황청 대표부를 설치하였다. 그는 정부 형태의 다양성을 긍정하며, 시민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내 용〕 1881년 3월 13일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 러시아 황제 알렉산데르 2세가 암살당한 사건을 계기로 하여, 레오 13세 교황은 이 회칙을 통하여 정치적 권위의 토대와 그 안전성에 관한 반성을 전개하였다. 당시 국가의 권위를 위협하는 반란과 소요 · 폭력이 난무하는 풍조의 주요 원인은 궁극적으로 교회의 신적(神的) 권위에 대한 거부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국가의 권위는 하느님에게서 나온다"고 강조하였다. 또 "교회의신적 권위를 거슬러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격심한 투쟁이 그 극에 달하여, 인간 사회의 공통된 위협, 특히 공공의 안녕이 주로 위임되어 있는 국가 권력에 대한 위협이되고 있다. 바로 우리 시대에 이러한 결과가 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제는 민중들의 격정이, 전보다훨씬 더 대담하게, 온갖 권위의 속박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측면에서 지나친 방종이 자행되고 소요와폭동이 빈발하여, 국가 통치자들에 대한 복종이 거부되고, 국가의 안녕에 대한 충분한 안전 보장이 무너져 버린것으로 보인다"라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자유 정신을 지닌 군주로서 위대한 사회 개혁가였던 러시아 황제 알렉산데르 2세의 모살을 암시하는 "가장 강력한 황제"에 대한 끔찍한 살해는 그러한 위협과 증오의 정신이 빚어낸결과라고 지적하면서, "참으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통치자들을 경멸과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고통을 겪어왔다. 그렇게 조장된 질시의 불꽃이 마침내 타올라, 음모로든 공공연한 공격으로든, 군주들의 목숨을 노리는 살해 기도가 여러 차례 빈발하였다. 가장 강력한 황제의 참살로 인해 요즈음 전 유럽이 공포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아직도 그 엄청난 범죄에 대한 경악으로 떨고 있는 가운데, 버림받은 사람들은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유럽의 다른 군주들에 대한 위협과 위해를 공공연히떠들어대고 있다" 고 경고하였다.
교황 레오 13세는 오로지 하느님만이 국가 권위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논증을 전개하였는데, 그 결정적인 논거로는 "결코 그 어떠한 인간도 원래 자기 혼자서 다른사람의 자유 의지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한다"는 것으로, 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참으로 자연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연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시민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를원하고 계신다. 이것은 의사 소통의 위대한 매체인 언어의 기능을 보더라도, 그리고 마음속에 타고난 수많은 열망들은 물론 혼자 고립되어서는 얻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협동할 때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수많은필수품들과 극히 중요한 물건들을 보더라도 명백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들의 의지를 다스리는 사람,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의 뜻을 모아 하나의 의지를 만들어공동선을 향해 올바로 질서 정연하게 나아가도록 강요하는 그러한 통치자가 없는 사회란 존재할 수도 없고 또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시민 사회 안에많은 사람들을 다스리는 사람이 누군가 있어야 한다고원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국가를 관리하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시민들에게 복종을 강요할 수 있어야하고 또 그 사람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은 명백히 죄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하나의 강력한 논증이다. 그러나결코 그 어떠한 인간도 원래 자기 혼자서, 그러한 종류의권위로 다른 사람들을 속박하여, 다른 사람의 자유 의지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한다. 이러한 권한은오로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입법자이신 하느님께만 있다. 그리고 그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하느님께 부여받은 그 권한을 마땅하게 사용하여야 한다는 사실은 필연적이다. '입법자와 심판자는 한 분뿐이시니 그분이야말로 구원할 수도 있고 멸망시킬 수도 있습니다' (야고 4,12). 그리고 이것은 온갖 종류의 권한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가정에서 누리는 아버지들의 권위도 '하늘과 땅 위의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에페 3,15) 하느님 안에 있는 권위의 뚜렷한 표상과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렇듯이 다른 여러 종류의 권위는, 그것이정부의 권위이든 군주의 권위이든, 그 기원이 세상의 창조주이시요 주님이신 한 분의 똑같은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까닭에, 서로 놀라운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평 가〕 교황 레오 13세는 당시 정치 권력에 관한 학설들이 국가의 질서와 안녕을 무너뜨렸다고 보았으며,이러한 비극적 오류의 기원을 종교 개혁에서 찾았다. 그리스도인들의 분열이 유럽에 커다란 질병을 초래하였으며, 이른바 종교 개혁이 철학자들을 준동하게 하여 결국에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무정부주의에 이르게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 개혁의 이단적 측면에 대한 교리적 판단을 내리고 종교 개혁이 사회에 미친 그 파괴적인 영향을 강조하였던 그 시대 문헌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따라서 이 회칙은 사회 문제에 관한 교회의 여러 발언들이 지니고 있는 "일시적인 성격"을 보여 주는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오늘날의 교회 입장과는 현저하게 다른 그러한 입장은 그 시대적 배경 안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가톨릭과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 사이의 교리적 차이를 여전히 인식하고는 있지만, 현재의 교회 문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활동에서 초교파적 협력의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은 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최근 문헌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있다. (→ 레오 13세)
※ 참고문헌  《AAS》 14, pp. 3~14/ The Papal Encyclicals(84), ThePierian Press, U.S.A., 1990/ H. Carrier, 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Revisited : A Guide for Study, Pontifical Council for Justice and Peace,1990(강대인 역, 《사회 교리란 무엇인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1992)/ J.M. Mayeur, Leo XIII, 《NCE》 8/ Roberlt J. Renault, Leo XIII,《CE》6. 〔姜大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