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요셉. 한국 성은 나(羅). 1903년 4월 1일 프랑스 푸아티에(Poi-tiers) 교구 브레(Bress) 지방의 되세브르(Deux-Sévres)에서 프랑스 국유 철도 회사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브레 및 몽모리용(Montmorillon)에서 중등 교육을 받은 후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했다. 1926년 5월 29일 사제품을 받고, 곧바로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그 해 9월 20일 프랑스를 출발, 11월 20일 한국에 입국하였다.
입국 후 장호원(長湖院, 현 감곡) 본당에서 전교하던 부이용(Bouillon, 任加彌) 신부를 도와 사목하면서 한국어와 풍습을 익혔다. 1929년에 답동 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던 드뇌(Deneux, 全學俊) 신부를 돕기 위해 인천 지역에 파견된 라가르드 신부는, 각 공소를 순방하며 적극적으로 전교하는가 하면, 본당에서 운영하는 박문학교(博文學校)의 사무도 효과적으로 처리했다. 1933년 답동본당 6대 보좌 신부로 사목하다가 1935년에 서울 소신학교 교장으로 전임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39년에 군 복무를 위해 본국 프랑스로 돌아갔다. 얼마 후 징집 명령에 따라 동원되어 푸아투(Poitou)에 머무르게 되었으나, 그가 속한 부대가 패하게 되자 포로로 잡혀 1945년까지 수용소 생활을 하는 등 많은 고생을 했다.
라가르드 신부는 수용소에서 나온 뒤에는 계속 본국에서 사목하였다. 수년 동안 보프레오(Beaupréau)의 테오판베나르(Théophane Vénard) 신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성전 예수 수녀회(Jésus au Temple) 부속 학교에서 담당사제로 활동하였다. 또한 여러 언어에 능숙하여 각국의 언어로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러나 암과 합병증으로 고생하다가 결국, 1988년 8월 10일 몽브통(Monbeton)에 서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천주교 인천교구, 《인천교구의 전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Memorial de la Société des M.E.P., Paris, 1988. 大學 [李裕林]
라가르드, 마리 조제프 (1903~1988)
Lagarde, Marie 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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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