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너, 칼 (1904~1984)

Rahner, Karl

글자 크기
3
칼 라너 신부.

칼 라너 신부.

독일의 가톨릭 신학자. 예수회 신부. 금세기의 가장 유명한 가톨릭 신학자 중의 한 사람이며 가톨릭 내의 신학 · 철학 · 역사 · 영성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종교와 사상계에도 영향을 끼친 사상가. 1904년 3월 5일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에서 건실한 가톨릭 신앙을 가진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프라이부르크 지방 학교 교수였고 어머니는 사업가 집안 출신이었다. 대체로 유복한 생활 환경에서 별다른 문제없이 성장한 라너는, 1922년 4월 김나지움(Gymmasium)을 졸업한 후 이미 3년 전에 입회한 형 후고(Hugo Rahner, 1900~1968)를 따라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여기서 그는 벨기에의 예수회 신부 마레샬(Josef Maréschal)의 저술을 통해 칸트와 헤겔의 철학을 접하게 된다. 1932년 사제로 서품되었고, 1934년 철학 공부를 위하여 고향인 프라이부르크에서 동료 로츠(Johann Vaptist Lotz)와 함께 호넥커(Martin Honecker) 교수 문하로 들어갔다. 그러나 라너는 하이데거의 세미나에 더 심취하게 되어 그의 박사 학위 논문<세계 내 정신>(Geist in Welt)은 호넥커 교수로부터 통과되지 못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식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이 논문은 인간 지식의 근본으로서 '환상으로의 전환' (Convesio ad Phantasma)을 주제로 삼고 있다.
〔활 동] 1936년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이듬해 교수 자격 논문이 통과된 후 시간 강사로 재직하다가 빈(1939~194)과 프라하의 수도원 신학교(1945~1948)에서 시간 강사로 있으면서 교의 신학을 강의하였다. 1948년부터는 인스브루크에서 교의 신학과 교의사를 강의하고 수많은 저서들을 집필하였다. 라너는 실천 신학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그에 의하면 사목 신학은 심리학 · 교육학 · 사회학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심은 1959년에 출판된 '현대 세계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 입장의 신학적 해명' 이라는 부제가 붙은 《사명과 은총》(Sendung und Gnade)에 잘 나타나 있다. 교황 요한 23세로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문 위원(Peritus)으로 임명되었으나 후에 사임한 라너였지만, 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오스트리아의 빈 교구장 쾨니히(Franz König) 추기경의 신학자문 위원으로 있으면서 현대인의 마음과 정신을 읽고 이들과 어려움을 나누며, 무신론자들 · 신앙을 원하나 신앙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비그리스도인 · 비가톨릭인과 고민을 함께하는 공의회가 될 수 있도록 촉구하였다. 라너의 이러한 사목적 계획은 공의회에 반영되었으며, '공의회 정신' 의 기초가 되었다. 공의회의 정신은 교회 안팎의 벽을 헐어 내는 개방과 대화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정신에 근거하여 세계는 물론 타종교와 타교파간의 대화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로써 교회가 현대 세계에 대항하는 호교론적 정신의 특징을 이루던 시대, 서구의 그리스도교를 온 세계에 내다 나르던 시대, 전형적인 라틴계 신스콜라 사상이 활약하던 시대가 끝나고 교회사에 새 시대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라너는 이 개방에 기여한 것이다. 1964년에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 1885~1968)의 뒤를 이어 뭔헨 대학에서 세계관과 종교 철학 강의를 맡았으며, 1967년 뮌스터로 옮긴 후 그곳에서 1971년에 은퇴하였다. 은퇴 후 뭔헨에 거주하면서 예수회 신학교에서 명예교수로 봉직하였고, 그 후 1984년 3월 30일 인스부르크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저 서] 《세계 내 정신》 외에 《말씀의 청취자》(Horerdes Wortes, 1941), 《사명과 은총》(1959) 《신학 논총》 (Schriften Zur Theologie, 16권, 1954~1984) , 《신앙의 근본 방향》(Grundkurs des Glaubens, 1976) 등 상당수가 있다. 또한 <신학과 교회 대사전》(Lexikon fiir Theologie und Kirche, 1957), 《신학의 제문제》(Quaestiones disputatae, 101, 1958~1985) 《신학 용어 소사전》(1961), 《구원의 신비》(Myste-rium salutis, 1965, 1976) , 《사목 신학 사전》(Handbuch der Pastoral Theologie, 1964~1969) , 《세상의 성사》(Sacramentum Mundi, 1967~1969) 등의 편찬 작업에도 참여하였으며, 여러 신학 전문지의 편수 위원도 역임하였다. 사망 당시 그의 집필 총목록은 4천 건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라너는 독특한 문체 때문에 난해한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진리를 추구하며 회의하는 인간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올바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고 이해시키고자 하는 소박한 사목적 마음이 작용하고 있다. 그의 저술들은 이런 사목적인 지평에서 쓰여졌는데, 이는 그의 저술 내용들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시작하여 종교적 · 영성적 · 사목적으로 조명하고자 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라너 신학의 요점] 초월 신학 : 라너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초월적 방법론(transzendentale Methode)을 간과할 수 없다. 초월적 방법론은 소위 초월에 관한 것을 추구하는 학문이라기보다는 초월자는 일상 범주 세계와 밀접한 관계에서 비로소 인식된다는 사실을 밝혀 주는 초월과 범주의 관계, 그리고 범주 세계에 관한 학문이기도 하다. 라너에 의하면 초월적 요인과 역사적 · 범주적 동기는 서로 병행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조건의 관계를 통해 표현된다. 라너 신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방법론에는 은총의 체험과 신비의 체험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은총은 그리스도교의 근본 실재이며 자기 자신을 선물하는 하느님이다. 은총은 인간 안에 있는 어떤 물질적 실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직접성에 이르는 영적 주체의 규정이다. 라너는 '본성과 은총' , '초자연적 실존' (ein transzendentales Existenz)에 관한 논문에서 이런 경험을 다루고 있다. 또 자신의 신비 체험을 근거로 하여 전승된 교회의 신앙을 반성하려고 시도하였다. 이렇게 라너가 초월적 방법론에 근거한 것은 신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주체의 요구를 인정해야 한다고 보았음을 말해 준다.
라너의 신학이 때때로 '인간학적 전환' 으로 불리는 것은 그의 신학이 이처럼 구체적인 인간에서부터, 인간의 동요와 질문 그리고 인간의 여러 체험에서부터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라너의 신학은 인간주의적인 신학에 머물지는 않는다. 그의 신학은 기도가 수반되고 기도로 이끄는 신학이다. 라너에 의하면 기도는 본질적으로 가장 내부에서의 '들음' (Hören)과 일치하고 있다. 말하자면 밖으로부터 온 것이고, 교회가 보호하고 전승한 하느님에 대한 묵상인 것이다. 기도에는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이성과 강하게 느끼는 감정과 냉철한 감성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라너는 이 집중된 중심에서 인간이 자기의 근원(Wovonher)과 목적(Woraufin)을 향하여 손을 뻗는 무한한 초월성을 체험하게 되며, 나아가 직접 다가와 있는 하느님의 현존이 감지된다고 확신한다. 기도하는 명상은 이렇듯 가까이 와 있는 존재를 파악할 수 없는 사랑으로 파악하게 한다.
여기서 왜 라너가 '신' 대신에 '거룩한 신비' 라는 표현을 선호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신 체험은 순수한 인간의 자기 구명이나 자신의 내면적 삶의 투사가 아니기에 하느님은 파악될 수 없는 타자성(他者性) 가운데에서, 그리고 이 때문에 하느님의 참 신성 가운데에서 체험된다. 그러기에 듣고 기도하는 묵상에서 지각되는 하느님 사랑의 계명은 가까이 와 있으면서도 파악되지 않은 채 머물러 있는 타자로서의 하느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 라너에 의하면 절대 타자로서의 하느님은 일상과 인간을 떠나서는 체험될 수 없다.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평범한 순간은 신적인 순간인 것이다. 즉 가까이 와 있고 그러면서 동시에 파악될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는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상황에서 지각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은 서로 일치를 이룬다. 마태오 복음 25장 31절 이하의 최후의 심판 장면이 잘 말해 주듯이, 인간이 신을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이웃과의 만남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을 통해서이다. 신 체험과 이웃 사랑은 부름과 응답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라너는 거의 수백 년 동안 가톨릭 신학을 지배해 왔던 신스콜라 철학과 신학을 깨뜨렸다. 물론 이로써 라너가 신스콜라 철학의 자리에 완전히 새로운 신학을 정립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스콜라 철학은 구별적이고 (distanzier) 대상적인(objekiv) 것이어서 신학하는 사람은 이 스콜라 철학의 배후로 또는 그 안으로 무의식 중에 빠져 들어, 이런 객관적이고 차별적인 대상화(객관성 , Sachafte-distanziert Objetivität)를 불행하게 하느님에게도 적용시키려 들었다. 그리하여 신학자들은 하느님을 완전히 해부된 대상처럼 대하고, 삼위 일체 하느님이라는 대상이 어떤 규정에 따라 작용하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이렇게 외부에서 들여다보고 바라볼 수 있는 하느님은 또 자기의 뜻에 따라 투명한 법칙에 복종하여야 했다. 그러나 라너에 따르면, 하느님은 신학과 신학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하느님은 신학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의 불투명하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절대 신비인 것이다.
하느님 계시의 신학 : ① 하느님의 자기 전달 : 라너에 의하면, 신비적 사고와 인간의 초월 경험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자기 전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느님은 자기 자신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고 자신의 무한한 실재와 영광 · 성스러움 · 자유 · 사랑 등을 제한된 피조물인 인간의 실존 안에 나타내 보이며 스스로를 전달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 체험을 위해 하느님의 자기 전달 은총을 받아들여야 하며, 이 받아들임 자체를 신 체험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느님이 자기 자신을 인간에게 알리고 전달한다는 것은 라너가 신학적 숙고의 결론으로 이끌어 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은 어떤 인간에게도 거절되지 않고 도달한다고 확신하는 교회 전승을 라너가 받아들이는 가운데서 이끌어 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것,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한다는 것, 하느님의 사랑은 효험 있는 사랑으로 인간에게 도달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라너의 신학이 말하고자 한 것이고 그가 늘 묘사하고 늘 인용한 하느님 계시의 핵심 단어들이다.
② 비신앙인(익명의 그리스도인, anonyme Christen)의 구원 : 라너는 하느님이 "일반적" 계시를 통해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하느님을 체험하도록 하였다고 확신한다. 하느님 증인의 공동체에 일어난 '특수' . '공적' 계시는 이 일반 계시 안에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라너는 유대-그리스도교 계시의 하느님을 실제 알지 못하는 인간들도 그들의 마음 안에 자신을 알리는 유대-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라너는 우선 교회의 고전적 가르침 안에서 하느님은 모든 인간의 마음 안에서 양심의 소리로서 말씀하신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양심의 소리는 나이, 사회적 지위의 고하, 교육 정도에 상관없이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이며 하느님이 바라는 보다 위대한 것이 무엇이며, 절대 해서는 안될 것이 무엇인지를 인간에게 말해 준다는 것이다. 한 인간이 생명의 하느님께서 직접,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부여한 인간 존재를 받아들인다면, 다시 말해서 현존재의 불합리성에 반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자기 자신을 시인한다면, 그는 인간 존재의 완전한 개별적인 길을 제시한 하느님을 알든 모르든 경청한 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이에게 자신을 전달하며,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는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기 전달, 즉 하느님의 계시가 예외 없이 모든 인간을 향하여 있다는 견해 때문에 라너는 가혹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라너의 이런 '익명의 그리스도인' 개념에는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의지를 거슬러 그들을 그리스도인화하려는 그리스도교의 오만과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비판(한스 킹)과, 또는 교회의 복음 선포와 선교 사명을 근원적으로 상대화하였다는 비판(H.U. von Balthasar)이 그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비판의 경우는 라너의 이 명제가 모든 이를 그리스도인화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의 요구가 비신앙인의 구원을 그리스도교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의 절대 필요성에 대한 교회의 자기 이해를 표현한 것임을 간과하고 있다. 두 번째 비판의 경우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적극적인 관계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미' 주어졌는데, 이 관계를 시공 안에서 실현시키고 사회적 표현으로 나타내려 한 라너의 견해를 보지 못하고 있다. 라너에 의하면, 하느님과의 관계는 시공을 떠난 곳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개인 양심의 내면성 안에 주어진 것은 사회적인 영역에서 활발한 실천을 촉구하는 것이다. 앞의 두 비판이 온전한 타당성을 갖지 못한 것은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라는 표현이 라너신학의 결론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라너에 의하면 '익명의 그리스도인' 은 하느님이 본래 의도한 것은 아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은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인간, 수정과 보충을 필요로 하는 인간들인 것이다. 그러기에 공적이고 구원사적인 유대-그리스도교적 하느님의 계시의 징표 안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그들의 삶의 실천을 통해서 계시된 하느님의 의지를 충만하게 하고, 교회적 의미에서 아직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함축적이고 감추어진 채 그들에게 주어진 바를 전개시키고, 그래서 그들을 완전한 의미에서 신앙의 역동성으로 이끌도록 부름받은 것이다. 즉 자기 책임을 느끼는 모든 신앙인들의 과제는 신비로의 인도(Mystago-gie), 신앙 이해의 전달, 신앙이 사랑과 하느님 흠승으로 완성되는 길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라너의 계시 신학은 그리스도인 존재를 단순하고 값싼 존재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부담을 주면서 더욱 해방적이며 더욱 즐거움을 느끼는 존재가 되게 하였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의 절대성 주장에 비추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와 그리스도교의 절대 필요성을 극과 극으로 대치시켜 놓고 볼 때에만 그러하다. 라너의 이런 종교 철학적이며 종교 신학적인 관점은 무신론이나 마르크스주의자들과의 대화도 가능하게 하였다. "자기 양심을 따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바야흐로 굳이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다, 혹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든 말든, 굳이 무신론자라고 생각하든 말든, 혹은 그 반대로 생각하든 말든 상관없이, 그런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에 의하여 받아들여져 있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목표로 고백하고 있는 영생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이다. 바꾸어 말하면 은총과 성의(聖意), 하느님과의 일치와 결합, 영생에의 도달 가능성이란 오로지 한 인간의 나쁜 양심에 그 한계성이 있을 따름이다. 이것이 정작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뜻하는 내용이다" (Erinnerungen, I, 99). 익명의 그리스도인 사고는 교회 신학 역사를 볼 때 트리엔트 공의회 등 이미 수백 년 전에도 있었던 사고이다. 이른바 열망의 세례〔火洗〕 등이 그것이다. 아직 물로 세례를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윤리적인 방향에서 적극적으로 하느님을 지향하는 사람은 이미 의화된 사람이다. 이는 암브로시오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주 오래된 가톨릭 교리에 따른 것이다. 익명의 그리스도론은 자기와 다른 신앙을 가진 모든 집단과의 대화도 추구한다. 이런 면에서 라너는 대화와 화해와 평화의 인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 : 죽음에서 라너의 삶의 신학을 읽을 수 있다. 그가 바라본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일치가 이루어지는 극적인 장소이다. 바로 그의 초월적 신학이 실현되는 장소이다. 라너는 평소 죽음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하였고 또 삶 속에서 죽음을 실제로 살았다. "나는 많은 말을 했고 여러 가지 말을 하였다. 그런데도 너 또는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서 듣고 싶어하는 많은 말을 잊어버리고 말없이 내버려 두었다. 이제는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도 이미 말하였던 것들만큼 이나 죽을 수도 있으리라는 그런 이야깃거리들을 또다시 들먹이지 않으련다. 마지막은 이러나저러나 침묵이리니. 말없이 하느님을 찬송하는 그런 침묵이리니" (Erinnerungen, 13).
[평 가] 라너는 수많은 저서와 강연으로 학문으로서의 신학, 교회 일치, 현대에서의 교회상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라너는 로마 국제 신학위원회(1969-1971), , 독일 주교 협의회 신앙위원회와 독일 교구 시노드(1971~1975)의 위원이었으며, 또 '가치를 위해' (Pour le mérite)와 영국 아카데미의 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또한 세계 각국의 대학으로부터 받은 명예 박사 학위가 15개에 이른다. 라너의 신학이 현대 신학에 끼친 영향은 그가 죽은 후에도 끊임없이 그에 대한 글들이 출판되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도 알 수 있다. 포르그림러(H. Vorgrimler)등 많은 신학자들은 라너를 벌써부터 아우구스티노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열에 넣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라너에게 사상적 영향을 끼친 인물로는 이냐시오, 마레살, 하이데거 등을 들 수 있는데, 하이데거로부터는 신학적인 것보다는 사유하는 양상이나 현대 그리스도교 신학에 현대 철학을 접목시키려는 노력에 있어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라너의 제자로는 뮌스터 대학 교의 신학교수로 있으면서 지금도 끊임없이 라너의 계획과 업적에 대한 글을 발표하고 있는 포르그림러와 라너의 비판가가된 메츠(Johann Baptis Metz), 마인츠의 주교인 레만(KarlLehmann), 밖르츠부르크 대학교 기초 신학 교수인 클링거(Elmar Klinger) 등을 꼽을 수 있다. (-> 익명의 그리스도인 ; 죽음의 신학)
※ 참고문헌  K. Rahner, Geist in Welt. Zur Metphysik der endlichen Erkenntnis bei Thomas Aquinas, Miinchen, 1957/ 一, Hörer des Wortes. Zur Grumlegung einer Religionsphilosophie, Neu bearbeitet von Johannes Baptist Metz, Freiburg-Bsel-Wien, 1971/ - Grundkurs des Glaubens.
Einfihrung in den Begriffdes Christentuns, Freiburg-Basl-wivien, 1976/ --, Schriften zur Theologie, 16, Einsiedeln, 1954~1 984/ 一, ZurTheologie des Todes, Herder, Freiburg-Basel-Wien, 1961(김수복 역, 《죽음의 신학》, 가톨릭출판사, 1982)/ -, Erimerumgen im Gesprich mitMeinold Kraus, Freiburg-Basel-Wien, 1984(정 한교 역, 《칼 라너 그는 누구였나?》, 분도출판사, 1985)/ 一, Sehnsucht nach dem geheim-nisvollen Gott, Profil, Bilder. Texte, herausgegeben von H. Vogrimler, Freiburg-Basl-Wiien, 1990/ 一, Karl Rahnerversehen. Eine Einfihrrungin sein Leben und Denken, Freiburg-Basl-Wien, 1985/ 이제민, <칼 라너사상 접근-그의 서거 5주기에 부쳐>, 《종교 신학 연구》 2집, 서강 대학교, 1988, PP. 141~159. [李濟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