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너, 후고 ( 1900 ~ 1968)

Rahner, Hugo

글자 크기
3
후고 라너 신부.

후고 라너 신부.

독일 예수회의 역사가. 신학자. 독일 풀른도르프(Pfullen-dorf)에서 1900년 5월 3일에 태어나 동생 칼 라너(K. Rahner)보다 3년 전인 1919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인스부르크와 오스트리아 대학에서 공부하고 철학과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라너는, 1935년부터 인스부르크 대학에서 초기 교회사와 교부학을 가르쳤으며 폭 넓은 주제로 저술 활동을 하였다. 나치 정권 때 폐지되었던 신학부가 스위스 지튼(Sitten)에서 재조직되자, 라너는 신학부를 따라 1938~ 1945년까지 망명하였으며, 전쟁 후에 인스부르크로 되돌아와 신학부 학장이 되었고 1949~1950년에는 대학의 총장을 역임하였다. 1962년에 건강때문에 강단을 떠난 후고 라너는, 1968년 12월 21일 뮌헨에서 사망하였다.
〔사상과 저서〕 라너의 신학 사상은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는 교부학으로, 고대 그리스도교를 전공한 그는 교부 신학 내에 있는 상징(象徵)에 대한 연구에 특별한 중요성을 두었다. 그는 초대 교회의 활동이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포괄하면서 진행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도교 정신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중시하면서, 그리스의 종교성 및 고대의 신심이 얼마나 교회에 의해 성화되었으며 교회와 융합되었는지를 지적하였다. 그는 두 가지 사유의 양식을 일치시키려 하였는데, 즉 교부학의 상징적인 사유와 스콜라학의 개념적인 사유가 그것이다. 그는 이러한 종합을 《마음의 신학》 (Theologia cordis), 《신자들의 그리스도 탄생 신앙에 대한 교부들의 가르침》(Die Gottesgeburt. Die Lehre der Kirchen-väter von der Geburt Christi im Herzen der Glaibigen), 《그리스도교적 의미에서의 그리스 신화》(Griechische Mythen in christlicher Deutung, 1945), 《교회의 상징, 교부들의 교회론》 (Symbole der Kirche, Die Ekklesiologie der Vaiter, 1964) 등에서 시도하였다.
둘째는 복음 선포의 신학이다. 교부학자와 교의사가일 뿐만 아니라 사목 신학자이기도 한 라너는 《마음의 신학》에서 사목 신학을 전개했는데, 이는 당시의 실존 신학에 의거한 것이었다. 1939년 이래 그의 복음 선포에 관한 작품이 《선교 신학》(Theology fProclamation, 1939)이다. 라너는 여기에서 사제의 제일 중요한 임무는 전통적인 신학 지식을 잘 이용하고 부흥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전통적인 신학 지식이란 사제들이 특별히 부름받은 예언직을 수행하는 데에 직접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교의 신학의 지식이다. 이 저서는 전쟁 이 후 나온 이른바 신(新)신학의 최초 작품 가운데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셋째로 라너는 그의 수도회 창설자들의 사상을 연구하였는데, 특히 로욜라의 이냐시오와 그의 영성을 소개하는 데에 전념하였다. 이러한 라너의 작품으로는 《로욜라의 이냐시오와 그의 영성의 형성》(Ignatius von Loyola und das geschichtliche Werden seiner Frömmigkeit, 1947), 《인간 그리고 신학자로서의 이냐시오》(gnatius von Loyola als Mensch und Theologe, 1964)가 있다. 이 밖에도 《여성들에게 보낸 로욜라의 이냐시오 편지》(Letters to Women by Ignatius Loyola, 1965)를 편집하였으며, 동생 칼 라너와 함께 공동으로 《묵상을 위한 기도》(Prayers for Meditation, 1962)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라너의 수많은 논문들을 모은 《후고 라너 전집》(Das Schrifttum Hugo Rahners)이 1961년에 간행되었다. (→ 라너, 칼)
※ 참고문헌  T. Early, 《NCE》 13, pp. 373~374/ G.H. Baudry, 《Cath》12, pp. 444~445/ 《CE》, p. 1077. 〔梁惠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