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철학계의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철학자이며 교육자. 정치가. 인도의 대통령(1962~1967). 힌두교인들의 순례지로 유명한 마드라스(Madras) 남쪽의 작은 마을 티루타니(Tiruttani)에서 태어난 라다크리슈난은 1908년 마드라스의 그리스도교 대학(Christian College)을 졸업하기까지 12년 동안 그리스도교에서 세운 학교를 다녔다. 이 과정을 통하여 그는 가정 안에서 훈육되고 성장한 힌두 신앙과 학교 생활 중심의 그리스도교 신앙과의 첨예한 긴장 사이에서 이미 그의 인생 전체에 걸쳐 피력된 사상적 단초, 즉 비교 철학 · 비교 종교 · 비교 윤리의 토양을 쌓았다고 할 수 있다. 1908년에 <베단타의 윤리와 그 형이상학적 전제>(The Ethics fVedanta and Its Metaphysical Presuppo-sitions)로 마드라스 대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18년에는 그의 최초의 독창적 저술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철학》(The Philosophy of Rabindranath Tagore)을 통하여 인도 사상의 근원과 다양성 그리고 인도 사상의 철학적 · 종교적 직관의 단초들을 보여 주었다.
마드라스 대학(1911~1917) · 미조르(Mysore) 대학(1918~1921) · 캘커타 대학(1921~1931)의 철학 교수를 거쳐, 안드라(Andhra) 대학(1931~1936) · 바나라스 힌두(Benares Hindu) 대학(1939-1948)의 부총장, 델리(Delhi) 대학의 총장을 역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동양 종교 및 윤리학 교수(1936~1952), 런던 대학(1929) , 미국 시카고 대학(1926)에서도 가르쳤다. 또한 인도 철학회 회장(1925~1937), 유네스코 인도 대표(1946~1952) , 소련 주재 인도 대사(1949~1952), 유네스코 총회 의장(1952~1954), 인도의 부통령(1952~1962) 그리고 대통령(1962~1967)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 및 편집서〕 그의 사상이 갖는 세계 학계의 비중만 고려한다 하여도 많은 저술들이 이미 우리말로 옮겨졌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인도 철학계가 지니는 불교 중심의 인도학(印度學) 접근 탓인지 우리 언어로 옮겨진 그의 저술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사실 라다크리슈난은 불교에 관한 주목할 만한 주장을 전개하여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하였다. 특히, 석존과 우파니샤드 사상과 관련하여 불교와 힌두교의 관계, 불교의 무아설(無我說)과 관련된 자아(自我)의 문제 등은 매우 중요한 논의이다. 한국 불교계로서는 이를 동의할 수 없는 까닭인지, 라다크리슈난의 불교에 관한 탁월한 통찰은 한국의 불교계로부터 오해되거나 배척되었다.
종교와 철학에 관련된 저술로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철학》(1918) 외에 《현대 철학에 있어서 종교의 힘》 (The Reign ofReligion in Contemporary Philosophy, 1920), 《인도 철학》(Indian Philosophy, vols. 2, 1923), 《힌두의 인생관》 (The Hindu View of Life, 1927) , 《우리가 필요로 하는 종교》(The Religion We Need, 1928), 《한 이상주의자의 인생관》(An Idealist View of Life, 1929), 《동양과 서양의 종교》 (East and West in Religion, 1933), 《우파니샤드의 철학》(The Philosophy of Upanisads, 1935) , 《고타마-부다》(Gautama-The Buddha, 1938), 《동양의 종교와 서양의 사상》(Eastern Religions and Western Thought, 1939), 《종교와 사회》(Reli-gion and Society, 1947), 《신앙의 재발견》(Recovery of Faith, 1955), 《변화하는 세계의 종교》(Religion in a Changing World, 1967), 《현대 신앙의 위기》(The Present Crisis of Faith, 1970) 등이 있다.
주요 편집 및 번역서로는 <현대 인도 철학》(Contem-porary Indian Philosophy, 1936),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 Essays and Reflections on His Work, 1939)를 비롯하여 라다크리슈난이 편집하고 번역한 《바가바드기타》 (The Bhagavadgita, 1948), 《법구경》(The Dhammapada, 1950), 《주요 우파니샤드》(The Principal Upanisads, 1953) , 찰스 무어(C.A. Moore)와 함께 편집한 《인도 철학의 기본 문헌집》(A Source Book in Indian Philosophy, 1957), 《브라마수트라》(The Brahma Sutra, 1960) , 라주(P.T. Raju)와 함께 편집한 《인간이란 무엇인가?-비교 철학적 연구》(The Concept ofMan : A Study in Comparative Philosophy, 1960) 등이 있다.
〔주요 사상 및 논의〕 라다크리슈난의 방대하고 심원한 사상 전반을 요약 정리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그의 사상이 지니는 몇 개의 특징을 대별하여 정리해보고, 특별히 그가 역점을 두어 강조했던 바를 선별하여 서술하는 것으로 제한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먼저 라다크리슈난의 저술에 나타나는 뚜렷한 특징의 하나는 종교적 체험, 특히 힌두의 신비 신학 전통에 바탕한 종교적 체험과 철학, 그리고 근대 서양의 관념론적 사상 일반과의 매우 긴밀한 관련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저술 전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세 분야에 걸친 밀접한 관심과도 직결된다. 그 하나는 힌두이즘의 기본 경전을 구성하는 우파니샤드, 바가바드기타, 브라마 수트라에 기초한 인도 정통의 종교 · 철학적 사상 즉 베단타 철학의 현대적 재조명 및 재발굴이고, 또 다른 하나는 플라톤(Platon)으로부터 헤겔(Hegel) · 브레들리(Bradley)로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서양 철학의 관념론처럼 인도 전통 안에 자리해 온 철학적 관념론의 옹호이며, 마지막 하나는 종교적 · 영성적 가치를 내팽개친 유물론적 사조 및 과학적 사고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 그 기본축을 형성하고 있다.
종교 철학 : 라다크리슈난은 일찍이 비베카난다(Vive-kananda)가 힌두교의 세계관과 종교 사상을 서양에 소개하였던 것과 같이 베단타 철학에 입각하여 종교의 본질과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세계적으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인도의 철학과 종교 사상을 연구하고 소개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풍부한 종교적 다원성을 수용해 온 힌두교의 포용적 정신을 바탕으로 심원한 종교 철학을 전개하여 현대에 있어서 종교간의 이해와 대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라다크리슈난은 그의 많은 저서들을 통하여 일관성 있게 종교적 독단주의와 세속적 물질주의의 양극을 비판하면서 온 인류의 영적 생활의 공통성과 통일성을 웅변적으로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모든 종교란 궁극적으로 하나이다. 교리 · 신학 · 제도 의식 등 종교의 외적 표현은 다양하고 서로 많은 차이들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나, 내적인 종교적 체험에 있어서는 모든 종교가 근본적으로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종교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영적인 체험에 있는 것이지 교리나 신학과 같은 외적인 표현에 있는 것이 아님을 그는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체험은 종교의 영혼이요, 표현은 종교의 육체라는 것이다.
라다크리슈난에 의하면, 종교적 체험이란 우리의 모든 가치들과 경험들을 궁극적으로 통일시켜 주는 것으로서 영원하고 절대적인 실재에 대한 우리의 전인적(全人的) 추구를 의미한다. 라다크리슈난은 종교적 체험의 특성으로서, 첫째로 주객의 분리를 초월한 통일적 의식을 말한다.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자아의 체험과 같이, 이러한 통일적 의식의 상태에서는 아는 자(knower)와 알려진 것(known), 의식과 존재, 사유와 존재의 대립이 초월되며 여러 가지 관념들과 감정들의 구별과 차별도 사라진다. 그리하여 좁은 개인적 자아의 테두리가 보편적 자아에 의하여 부수어진다. 종교적 체험은 그 자체에 있어서 충족적이고 완전하여 그 의미와 진리와 타당성에 있어서 다른 어떤 외부적인 보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종교적 체험은 그 자체로 자명성과 확실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적 체험에는 일상 생활의 긴장이 사라지고 내적인 평화와 기쁨이 지배한다고 한다. 종교적 체험은 또한 모든 언어적 표현과 논리를 초월한다. 단지 상징적 표현이나 암시만이 허용될 따름이다. 이들 표현들은 물론 역사적 그리고 문화적 특수성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라다크리슈난은 절대적으로 독립적이고 순수한 종교적 체험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종교적 체험은 어디까지나 어떤 특수한 종교적 전통안에서 발생하며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체험의 내용, 즉 대상은 우리의 모든 해석을 초월하는 지고한 존재이다. 우리가 그것을 추상적이고 비인격적인 것으로 체험하고 해석할 때는 '절대자' 라 부르고, 우리가 그것을 의식과 희열의 대상으로, 인격적인 존재로 해석할 때는 '신' 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재는 인격과 비인격 및 모든 해석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실재의 초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것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영혼 혹은 자아가 이 실재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재와의 접촉을 위해서는 자아를 발견하고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는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닦아서 자아에 부착되어 있는 이질적인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특히 명상을 자아 발견의 길로 강조하고 있는데, 종교의 목표는 수행을 통하여 자아를 변화시키고 온 인류의 삶을 성화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라다크리슈난에게는 구원인 것이다.
비교 사상 : 서구 문명의 인도 유입은 필연적으로 서구 사상과 인도 전통 사상과의 마찰과 대립을 초래하게 되었다. 라다크리슈난은 선구적인 자세로, 동서의 상호 이해를 위해서는 동서 사상의 비교 연구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인도의 고전인 베다(Veda) · 우파니샤드 · 불교 · 상카라(Sankara)의 철학 등과 서구의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 · 칸트 · 헤겔 등을 비교 고찰하면서, 인도 철학의 현대화 혹은 세계화를 전개하였다. 예를 들어 석존은 2,500여 년 전에 만물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諸行無常 生住異滅)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현대 과학이나 철학에서 다시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파니샤드에서의 아트만(Aman)을 예로 들어, 곧 자아(인도 철학에서의 아트만, 眞我)는 우리의 주체 그것으로서, 결코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아트만은 모든 것을 인식하나 아트만 자체는 인식할 수 없다. 이는 바로 칸트(I. Kant)의 인식론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대상을 인식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 선험적(先驗的) 자아 그 자체는 결코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칸트의 주장과 같다는 것이다. 또한 자기 자신의 존재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 의식하고 있다는 베단타 철학의 주장은 곧, 진리의 부동의 기초를 의심할 수 없는 직접적인 자기 인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데카르트(R.Descartes)의 주장을 들어 인도 철학을 옹호하였다.
라다크리슈난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인도 철학의 심원한 탁월성을 역설하려고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상카라의 자아와 칸트의 선험적 자아를 비교하면서 한 단계 더 깊이에서 이 둘은 선명하게 비교 · 구별된다는 것이 그 주장의 하나이다. 칸트의 자아는 경험적 의식을 초월하고는 있으나 개체화된 것이지만, 상카라의 자아는 자기 자신의 본래의 빛이요, 절대지(絶對知)요, 초월적이고 보편적이요, 무한한 것이므로 오히려 헤겔의 절대 정신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면서, 더 나아가 상카라에서 자아의 세계는 직관지(直觀知)로서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이 직관지에 의해 비로소 주 · 객의 대립이 해소되고, 자기 자신 속에서 만상의 근원을 알게 되는 최고아(最高我)의 진리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교 연구는 결국 상카라의 직관의 대상이란 서양 철학의 칸트의 물자체(Ding an sich)도 아니고, 피히테의 자아(Selbst)도 아니며, 셀링의 중성적 동일성(Identiät)도 아닌, 이 모든 것을 넘어선 '보편적 의식' (universal consciousness)이라는 주장으로 결론지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인도 사상을 관통하는 주요한 한 특징을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서양 사상과는 달리 인도 사상에서는 종교와 철학의 영역이 엄격히 구분되지가 않는다. 불가분의 관계로 이 영역은 상호 관련을 갖는다는 점이다.
세계 의식 및 보편 종교 : 앞에서의 예처럼 라다크리슈난은 서구 사상과 인도의 고유 사상을 대비하여 인도 철학을 천명하였다. 그는 사상이나 종교의 대비를 통해서 인도 사상을 세계의 사상계에 등장시킴으로써 세계의 일체화를 꾀하였다. 힌두교를 세계에 제시함으로써 오늘날 세계의 사상적인 혼란을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러한 그의 주장은 다음 몇 개의 전제에 기초한다.
첫째로 힌두교는 대상을 강조하는 신앙보다는 스스로의 존재의 근원을 직접적으로 체험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므로 체험, 그것이야말로 자아 자체이며, 신이요, 생명이다. 이것은 각자가 스스로 궁극적으로 지각되는 실재이다. 이러한 실재의 경험과 그 이론적인 반성이 힌두교의 합리성을 구성한다. 둘째로는, 힌두이즘은 참된 인간적 생명의 자연스러운 전개라는 것이다. 인간적 생명의 자연스런 전개 안에서만이 보편적 인간에 자리한 참된 휴머니즘이 있을 수 있다. 사실 힌두의 인간관, 인생의 목적(purusartha)은 그리스도교 일반의 금욕적 · 내세적 경향과 비교한다면 매우 이질적인 요소를 보여 준다. 힌두이즘에 의하면, 참된 자기의 확립, 온전한 자아의 실현은 비록 육체가 소멸되더라도 죽지 않는 영원한 빛이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자아로 돌아간다는 것은 순수한 인간으로 돌아감이며, 유한에서 무한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이러한 참된 인간에 이르러 실재(Sat)와 지혜(Cit)와 환희(Ananda)가 하나로 완성된다.
이상과 같은 합리성과 참된 인간성의 근본인 아트만을 실증하는 것이 힌두이즘의 신비성이요, 이것이 곧 "세계의식"(universal consciousness, 또는 오로빈도의 용어를 빌려 integral consciousness)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아트만의 실증은 누구나 여기로 돌아오고야 말 필연적인 운명이요, 인간 정신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종교의 세계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는 인간 정신의 성장을 돕는 모든 종교는 각각 용인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협조해야 하는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하여 서로 다른 교의들조차 본질적이고 공통적인 인간성을 개진하게 된다. 그러므로 보편적인 공동체의 실현에는 어떤 종교도 그의 외적 차별이 방해가 될 수 없다. 현대 세계는 정치적 · 사회적 · 정신적 · 경제적으로 일체라고 하는 인식이 더욱 깊게 자리해 가듯이, 인간의 본질은 또한 그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역사적 형태보다 항상 보다 깊은 곳에 있으며, 넓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라다크리슈난은 강조하였다.
라다크리슈난의 이러한 견해는 동서 사상의 근저에 공통적인 지반이 있음을 확인하려고 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모든 종교의 교의나 사상 형태를 초월한 존재의 직접적 체험을 의미한다. 세계 공동체의 실현은 이러한 세계의 근원을 자각하면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 공동체를 지도할 새로운 정신이 다시 발견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하여 인류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세계 의식을 제시하고 "보편 종교"(universal religion)를 역설하였다.
〔비판 및 평가〕 라다크리슈난의 사상 전반의 기초를 단적으로 요약한다면, 우리는 그에게서 확고하게 자리한 힌두 범신론적 형이상학과 성선론(性善論)적 인생관, 그리고 세계 동포주의적 세계관을 읽을 수 있다. 그가 교육받아 온 과정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듯이 그리스도교의 사상이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지라도, 그에게는 힌두 사상을 보다 깊게 이해하는 하나의 계기로 승화시켰을 뿐이다. 물론 그는 결코 배타적인 사상가가 아니었다. 철저히 자신을 개방하고 자신의 사상적 전통 위에서 포용력 있는 성숙한 자세로 타종교 혹은 다른 문화권의 사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의 사상은 바로 이러한 긴장의 과정을 걸쳐 만개한 결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라다크리슈난 사상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하나의 특징으로 꼽았던, 종교적 체험과 철학과의 밀접한 관련성은 철학 일반과 종교가 극단적으로 대립되어 가는 듯한 오늘의 사상적 상황과는 매우 대조적인 것으로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아울러 서구 사상에 맞서 자기 전통을 고수하고 그 이상의 사상적 깊이와 넓이를 자신의 토양에서 발굴해 냈다는 점에서 그는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의 사상 전반을 통하여 두 가지 점은 분명히 지적하고 비판하고자 한다. 라다크리슈난을 힌두 옹호론자(Hindu apologist)라고 비판하는 일련의 견해와도 맥을 같이하는데, 라다크리슈난 같은 민주적 지성이 힌두의 뿌리깊은 악습 카스트를 합리적으로 옹호하고 있다는 점과, 모든 종교는 결국 동일한 것이므로 보편 종교에 이르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이다. 카스트 제도는 그 시대적 정황, 인종의 문제 등과 연결되어 고안된 최선의 방안이었다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차원에서, 민주주의적 가치의 하나인 평등이라는 차원에서 철저히 비판되고 극복되어야 마땅한 악습임이 분명하다. 이 문제를 분명히 끄집어내지 못하였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럽게도 라다크리슈난이라는 거장 또한 결국은 철저히 인도인이라는, 그것도 상류 카스트로서, 인도 사회의 한 지배자로서 인도 철학을 했을 뿐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라다크리슈난은 평등의 개념을 인도식으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또 하나는 보편 종교에 대한 비판이다. 인간 본성의 동일성을 전제한 그의 주장은 물론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결국은 자신의 신앙, 그 기본적 정체성도 확립되기도 전에 힌두이즘 같은 종교 시장으로 흡수된다면 그 결과 또한 바람직한 것일 수 있을까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주지하듯이 힌두이즘 안에는 온갖 형태와 내용의 신앙과 교의와 사상적 주장이 공존하여 왔다. 무신론까지 힌두이즘은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구한 역사와 심원한 철학, 종교 사상을 자랑하는 힌두이즘 속에서 끊임없이 고통받고 착취당하며 살아온 이들은 누구였던가? 왜 그들은 그 긴 역사 동안 한 번도 사람답게 살지 못하였던가? 이러한 현상이 가장 깊이 인간을 발견하고 있다는, 인간의 자아 실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힌두이즘 안에서 계속 진행되어야 하는가? 이는 바로 힌두이즘 자체가 힌두이즘 최대의 도전이요,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바로 그 대상이라는 사실을 라다크리슈난 같은 지성인도 읽어 내지 못하였다는 반증이 아닌가? 종교가 종교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K. Marx)의 고전적 주장이 다시금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는 곳이 바로 힌두이즘의 땅, 인도라는 사실을 라다크리슈난은 겸허하고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 힌두교 ; 인도 철학 ; 비교 종교학)
※ 참고문헌 Paul Arthur Schilpp ed., The Philosophy of Sarvepalli Radhakrishman, NewYork, Tudor, 1952/ P.T. Raju, Structual Depths of Indian Philosophy, South Asian Publishers, New Delhi, 1985/ -, Idealistic Thought ofIndia, Johnson Corp., New York, 1973/ - Indian Idealism and Modern Challenges, Punjab Univ., Chandigarh, 1961/ D.N.Sharma, The Hindu Renaissance, Banaras Hindu Univ., 1982/ Anil Kumar Sarkar, Dynamic Facets ofIndian Thought, vol. 4, South Asian Publishers, New Delhi, 1988/ I.C. Sharma, Ethical Philosophies of India, Johnson Publishing Comp., Lincon, Nebraska, 1968/ K. Satchitananda Murty, Philosophy in India, Motilal Banarsidass, 1991. 〔吳將均〕
라다크리슈난, 사르베팔리 (1883~1975)
Radhakrishnan, Sarvepalli
글자 크기
3권

라다크리슈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