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인도 힌두교의 신비가. 수행자. 본래의 이름은 가다다르 차테르지(Gadadhar Chatterjee). 인도 벵골 지방의 외딴 마을에서 태어난 라마크리시나는, 비스누-크리시나(Visnu-Krishna, Vaisnava)파의 정통 브라만 가문 출신이지만 가난하여 학교 교육은 거의 받지 못하였다. 17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칼리(Kali) 여신을 숭배하는 힌두 사원의 사두(Sadu, 일반적으로 제사를 집행하는 사제)로 있는 형을 돕기 위해 캘커타로 갔다. 여기서 그는 라마(Rama)와 크리시나(Krishna)를 신봉하는 사제로 살면서 그 특유의 광적인 신비 체험을 겪게 되는데, 사두가 된 후, 상카라의 베단타(Vedanta) 철학에 정통한 한 출가 수행자로부터 '라마크리시나' 라는 이름을 받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그는 감성적인 경향이 매우 강하여 어떤 아름다움이나 정서에 압도되면 의식을 잃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본래 그의 가문이 속하여 있는 바이시나바(Vaisnava)파가 광적인 정서적 몰입 및 몰아적 헌신을 그 주요 특징으로 하는 박티' (Bhakti) 신앙이었다는 것도 그의 성장 및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열광적인 종교적 도취 혹은 신비 체험은 칼리 여신의 이름만 불러도 혼수 상태에 빠져 버릴 정도였다. 결국 사원에서 맡은 그의 소임마저 불가능하게 되어 숲 속으로 들어가 12년 동안 고행하며, '칼리' 여신과의 합일을 열망하며 살았다.
이 숲 속에서 그는 칼리 여신을 숭배하는 여성 요가(Yoga) 수행자와 토타푸리(Totapuri)라는 수행자를 만나 요가와 탄트라(Tantra), 상카라(Sankara)의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 베단타 철학과 무분별삼매(無分別三昧, Nirvikalpa samadhi)라고 하는 최고의 종교 체험을 체득하였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의 종교 체험은 힌두교를 넘어 3일 간의 알라 체험, 그리고 몇 년 뒤에는 4일 동안의 예수 체험 등으로 전개되었다고 하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체험들은 그가 체험한 힌두교의 여러 신들과의 체험과 동일한 것이었다고 한다. 열광적이고 몰아적인 라마크리시나의 신비 체험은 그에게 있어서는 '모든 종교가 동일한 신성 체험에 이르는 길' 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역설하는 체험적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그의 체험 혹은 주장은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힌두교도 및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힌두교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자극이 되었다. 18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 라마크리시나는 대중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는데, 1872년에는 다야난다(Dayananda)가, 1875년에는 케삽 찬드라 센(Keshab Chandra Sen)이, 또 그 뒤를 이어많은 지식인들이 그에게로 모이기 시작하였다. 그중 하나가 유명한 비베카난다(Vivekananda)였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캘커타를 중심으로 힌두교를 부흥시키는 하나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찾아오는 방문자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것을 가르치면서 만년을 보냈는데, 이 가운데 많은 부분들이 “복음”(Gospel)-그리스도교의 성서를 도전적으로 의식한 듯 그의 추종자들은 이렇게 부른다-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비베카난다에 의하면, 라마크리시나는 평소에는 모든 사람을 신으로 받들었으며 자신은 그의 종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였지만, 일단 신과 합일의 체험에 들면(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열광적 신비 체험), 그는 전지전능한 신처럼 행동하고 자신이 바로 크리시나 · 예수 · 부처의 화현(化現, Avatar)이라고 말하며 자신이야말로 해탈자요 신이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주요 교설, 주장 및 논의〕 그의 교설 및 주장(또는 가르침)의 핵심은 그의 성장 과정 및 생애가 보여 주고 있듯이, 모든 종교는 그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종교의 귀결처는 오직 하나의 진리이며, 제각기 다른 길을 거쳐 동일한 신에 이른다는 포용(包容) · 유화(宥和)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라마크리시나의 교설 및 주장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일체의 종교는 진리요, 선이다. ② 신은 비인격적 · 불가지적 · 비논리적인 것이지만 우주 삼라 만상에 편재(偏在)한다. ③ 신상(神像) 숭배는 숭배의 건전한 형식이다. ④ 힌두교의 모든 요소는 모두 가치 있는 것이며, 경솔한 개혁은 삼가야 한다. ⑤ 최고의 정신적 문화유산을 지닌 인도 국민은 서구 유럽의 몰이해를 넘어 마침내 전세계를 지도하게 될 것이다. ⑥ 인도 국민은 서구 유럽의 물질적 · 이기적 문명의 타락으로부터 자신의 종교와 문명을 지키는 동시에 서구 유럽의 교육과 문물을 널리 취하여 세계로 진출해야 한다. 기타 그의 교설을 인도의 종교 사상적으로 상론할 수 있으나 이는 오히려 라마크리시나가 위치하는 종교 사상적 투명성에 혼란을 초래할 소지가 더 크다. 라마크리시나의 교설 일반 또한, 근대 인도의 힌두 부흥 운동들이 갖는 일반적 성격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까닭이다. 인도의 종교 사상이 지니는 일반적 특징이 그러하듯 자칫 역사적 배경을 등한시하면 모든 교설들은 한결같이 지극히 난해하며, 매우 관념론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역으로 '왜 이러한 교설이 등장하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적 · 사회적 접근 방법이 문제의 핵심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 준다 하겠다.
〔라마크리시나 교단〕 라마크리시나의 생애 및 교설은 여러 유능한 제자 및 추종자들에 의하여 인도 전역 및 세계에 널리 전파되기에 이른다. 이들 중 특히 라마크리시나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제자 비베카난다는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국제 종교 회의"(Pariament of Religions)에서 베단타 철학에 입각한 "힌두교의 세계관, 종교관"을 발표하였는데, 이때 스승 라마크리시나의 생애와 교설을 극적으로 소개하여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1896년 미국에서 "뉴욕 베단타 협회" (The Vedanta Society ofNew York)를 창설한 비베카난다는, 인도로 돌아와 캘커타 교외에 "라마크리시나 교단" (Ramakrishna Misssion)을 창설하였고 사회 사업과 종교 교육에 전력을 다하여 1902년 그가 죽을 때까지 이 교단을 정비 · 육성하였다. 오늘날까지 인도 및 세계 곳곳에 지부를 발족시켜 베단타 철학에 입각한 힌두교의 세계관을 서양에 소개하는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라마크리시나 교단은, 특히 사회 봉사를 매우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히 그리스도교의 선교 방식에서 지대한 영향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비평 및 평가〕 스리랑카의 피에리스(A.Piens) 같은 가톨릭의 불교 최고 권위자도 '힌두이즘은 전문가에게조차도 빙산의 일각밖에 보이지 않는다' 고 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을 정도로, 인도의 종교 · 철학 사상은 매우 난해하여 신중하게 평가하여야 한다. 특히 그 이유와 원인이야 어찌 되었건 그리스도교 신앙에 식상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을 버리고 그 반발 혹은 몸부림의 하나로 동양 특히 인도에 광적으로 편도하는 서구의 우려스러운 일반적 현상과 아울러 전통적으로 불교가 깊게 뿌리내린 한국의 현실 일부에서 최근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인도 편향적 시각과 맥을 같이하여 몇 가지 비평을 가하고자 한다.
힌두이즘은 종교 사상적으로 최고의 변신론(辯神論)적 자기 방어를 수행해 나갈 만큼 충분한 고도의 사변과 변론으로 무장된 문화적 통일 체계를 의미한다. 극도로 신비화되고 종교적으로 이상화되는 힌두이즘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고찰할 수 없다면, 영락없이 우리는 힌두이즘의 교묘한 교설에 함몰될 수밖에 없다. 왜 모든 종교는 결국 동일한 것이라는 주장이 인도 안에서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주장되어 왔을까? 왜 모든 것은 결국 궁극적으로 브라흐만으로 귀일되는 하나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주장되어 왔을까? 힌두이즘이라는 거대한 산맥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인도, 인도 일반인의 종교, 혹은 종교적 의식 및 인식에 관한 이해만큼이나 인도의 실상, 사회상 그리고 역사적 · 정치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도의 불가촉 천민으로부터 법무부 장관까지 역임하였던 암베드카르(Ambedkar, 1893~1956)의 힌두이즘에 대한 정면 고발은 무엇을 반증하는가? 고대 인도의 소위 순세파(順世派)라 불리는 차르바카 로카야타(Carvaka Lokayata)의 출현은 무엇을 반증하는가? 왜 만인의 평등을 주장한 불교가 자신의 고향에서 그렇게 뿌리조차 내리기 어려웠던가?
이러한 성찰 위에서 라마크리시나를 검토한다면, 그의 위상은 보다 명확해진다. 그는 지극히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의 종교적 · 신비적 체험이 그러하고 그의 삶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의식하였건 의식하지 못하였건 그의 진정한 염원, 즉 모든 종교가 진정 평화롭게 함께할 수 있는 궁극적 세계로의 만남조차 결국은 힌두이즘의 선교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확인하게 된다.
최근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푸나(Puna)의 라즈니시(Rajneesh) 집단은 인도 안에서도 이미 사이비 종교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광적으로 라즈니시의 교묘한 교설에 현혹되어 삶을 망치고 있는가! 결론적으로 이렇게 라마크리시나를 평가할 수 있겠다. 그의 교설과 생애에서 우리는 순수하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또 받아들인다. 동시에 그러한 그의 교설과 주장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던 근대 인도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의 교설은 종교 사회학적으로 비판을 피해 갈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교설 또한 힌두이즘의 종교적 독단 때문에 고통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수많은 동족들에게는 또 하나의 진통제 같은 멍에만을 덧씌우는 결과만을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 인도 ; 힌두교 ; 신비사상)
※ 참고문헌 Swami Nikhilananda, The Gospel of Sri Ramakrishna,New York, 1952/ Swami Saradananda, trans. by Swami Jagadananda, TheGreat Master, Madras, 1963/ Max Muller, Ramakrishna : His Life andSayings, New York, 1955/ H.W. French, The Swan's Wide Waters :Ramakrishna and Western Culture, NewYork, 1974/ Fr. Paul Puthanangadyed., Towards an Indian Theology ofliberation, Bangalore, 1986/ Fr. Gispert-Sauch ed., Theologizing in India, Theological Pub., Bangalore, 1981/ ArunShourie, Indian Controversies (Essays on Religion in Politics), ASA, Delhi,1993/ Aloysius Pieris, An Asian Theology ofLiberation, T & T Clark,Edinburgh, 1988/ Bipan Chandra, Essays on Contemporary India,Haranand Pub., 1993/ M.N. Srinivas, Caste in Modem India, mpp, Bombay,1989/ -, Social Change in Modern India, Orient Longman, Delhi, 1992.〔吳將均〕
라마크리시나 (1834/1836~1886)
Ramakrish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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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크리시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