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므세스 2세

〔영〕Ramsses(Ramessses)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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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누비아인들을 추격하는 라므세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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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누비아인들을 추격하는 라므세스 2세.

기원전 1279년에서 1212년까지 통치한 이집트 제19왕조의 3대째 왕.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무명(無名)의 파라오로 간주된다(출애 5-15장). 그의 아버지는 세티 1세(Sety 1,기원전 1291~1279)이며, 만일 라므세스 2세가 출애굽기에 나오는 무명의 파라오라면, 세티 1세는 이집트 왕인 '착취의 파라오' (출애 1, 8-2, 23)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활 약〕 즉위와 건축 : 라므세스 2세는 군사적 배경을 가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祖父) 라므세스 1세는 왕좌에 계승자를 두지 못하였던 호렘헵(Horemheb) 왕휘하의 고관 대신이었는데, 호렘헵 왕은 그 동안 전사자(戰死者)들에 의해 보존되어 왔던 그의 왕권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라므세스 1세를 계승자로 임명하였다. 라므세스 1세의 짧은 집권 후 그의 아들인 세티 1세가 왕좌에 올랐으며, 호렘헵 왕 통치 기간에 그의 장남으로 태어난 라므세스 2세는, 세티 1세의 통치 중반기에 누비아(Nubia)에서 소규모의 전투 경험을 갖기도 하였다. 실제로 세티 1세는 그의 아들을 공동 통치자로 임명하였으며, 2년이 채 못 되었던 공동 통치 기간 동안에 그들은 신전 내부의 부조를 우아하게 장식하였다. 세티 1세가 죽은 후 이집트의 왕이 된 라므세스 2세는, 라므세스 가문의 왕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왕이었다. 훌륭한 무사요, 뛰어난 건축가였으며, 탁월한 행정가였던 그가 통치한 시대에 이집트 제국의 권력은 절정기에 올랐다. 세티 1세와 라므세스 2세 당시의 왕궁은 델타 지역에 세워졌는데 그 수도의 자리는 피라메스(Pi-Ramessu)였고 여러 곳에 비돔(Pithom, 출애 1, 11)과 같은 비상시를 위한 창고 도시들이 세워졌다.
라므세스 2세는 새로운 조각 기술로 신전을 새롭게 꾸였으며, 초기 몇 년 동안의 유일한 업적은 테베(Thebes)에 세운 라메세움(Rameseum) 사원과 피라미드라 불리는 수도 델타(삼각주)에 세운 왕궁 즉 피라메스를 완성한 거대한 건축 활동으로 집약된다. 그는 종종 그의 선조들의 기념비를 강탈한 자로 비방을 받았으나, 그가 비록 신전 벽과 입상 위에 이전의 왕 이름들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대체시켜 놓았을지라도, 이집트와 누비아를 통틀어 단행되었던 거대한 양의 건축들은 그의 커다란 업적으로 남아 있다. 후대의 왕들은 저마다 라므세스 2세와 그의 66년 간의 긴 통치를 흉내내려 하였다. 거대한 양의 건축물들은 그의 통치시 서부 아시아 지역과 누비아에 대한 이집트의 지배력으로 보존될 수 있었던 강한 경제력를 반영하였다.
전투와 평화 : 아시아 제국과 관련해서 주요한 문제가 이집트에 직면하였다. 즉 기원전 13세기 초 시리아에 강력한 히타이트(Hittite)족이 출현한 것이다. 그의 초기 재위년에 히타이트족과의 결정적인 격전을 준비해 왔던 라므세스 2세는, 즉위 5년에 카데시(Kadesh)에 주둔하고 있던 히타이트족의 동맹군에 대항하여 대군사 원정을 벌였다. 이것은 아부 심벨(Abu Simbel), 카르낙(Karnak) 아비도스(Abydos), 그리고 왕의 시신을 모셨던 테베의 라메세움 사원에 문자와 그림으로 또한 시(詩)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카데시 탈환의 대실패는 팔레스티나와 시리아 지역의 군주들에게 이집트에 대한 반란의 기회를 제공해 준 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라므세스2세는 히타이트족과의 평화 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이집트 변방의 방위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여러 차례 아시아 지역으로 군사 원정을 하여 아시켈론(Ashelon)을 탈환하고 에이커를 황폐화시켰다. 이집트와 히타이트족은 일시적인 휴전 상태에 들어갔는데, 이집트인들이 누비아에 있는 아부 심벨 신전을 포함한 몇 개의 신전 벽에 기록해 놓은 카데시 전투에 대한 기사에는 전투에서 이집트가 승리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표현이 들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집트는 아무것도 획득하지 못하고, 카데시는 그대로 히타이트족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카데시 전투의 휴전은 전투 경과 중의 세부적인 전경(全景)들을 그린 그림들과 더불어 이야기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런 전경들을 수반하고 있는 긴 글들은, 격전 가운데서의 파라오 즉 라므세스 2세의 감정이나 적들의 진지 한가운데에서 위기에 몰려 아몬(Amon) 신에게 기도했음직한 라므세스 2세의 모습 등과 같이, 기록될 수 없었던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즉위 10여 년 기간에 라므세스 2세는 시리아의 히타이트족의 영역을 쳐부수려고 몇 번 더 시도하였으며, 때때로 튜닙(Tunip)과 다푸르(Dapur) 같은 지역을 일시적으로 정복하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히타이트족의 방위망을 뚫고 북쪽으로 깊숙이 진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집트는 계속하여 시리아의 북쪽 지역을 장악할 수 없었다. 이집트 사본과 아카디아(Akkadian) 사본에는 그의 즉위 21년에 히타이트족과의 16년 동안의 간헐적인 적대 관계를 종식하고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다고 묘사되어 있다. 이는 두 왕국의 신들을 특별히 일치의 수호자들로서 서로 인정해 주는 세계주의적인 성격을 지닌다. 조문에는 영원까지의 평화적 결합과 다음 두 가지 사항의 재확증을 포함하고 있는데, 즉 외부의 침략과 가능한 내부 반란에 대항하는 공동 동맹과, 도망 범죄인들을 각 나라로 인도하는 것 등이다(ANET, 199~203). 30년 후에 이 평화 협정은 라므세스2세가 히타이트 왕녀와 결혼함으로써 더욱 공고히 되었다. 이 사건을 이집트에서는 라므세스 2세의 세력이 히타이트로 하여금 항복하도록 강요했던 것으로 여겼지만, 주요 원인은 아나톨리아(Anatolia)에 든 기근과 '바다 민족' (the Sea People)과의 충돌이 히타이트로 하여금 외교적인 결혼을 서두르도록 하였다. 히타이트 왕은 "우리의 신 세트(Seth, 이집트 폭풍의 신)께서 우리에게 노하셔서 하늘은 우리에게 물을 주지 않으며, 모든 외국 나라가 우리와 싸우려 한다" 고 말하였다. 그 후 라므세스 2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메렙타(Merenptah) 왕 때는 히타이트로 곡식이 보내지기도 하였다.
라므세스 2세의 재위년 절반은 이집트의 평화기였다. 그는 백성들의 복지에 관심을 두었고, 노동자들과 장인들에게 잘 베풀어 주고 있다고 자부하였다. 이집트인들은 일반적으로 왕의 존재를 신으로서 대우하였는데, 왕은 태양신의 지상 현현으로 간주되었다. 공식적인 예배의식에서 백성들은 왕의 커다란 입상 앞에서 기도를 바쳤고, 왕은 이론상으로 제사를 지내는 유일한 사제였다. 그래서 라므세스 2세는 때때로 그 자신의 상 앞에 제물을 바치게 하였다. 그의 즉위 13년 초에 그리고 그 후에도, 파라오로서의 힘을 확인시키기 위해 기념식을 거행하였으며 거대한 축제를 벌이기도 하였다. 많은 아내에게서 45명의 아들과 40명의 딸을 둔 라므세스 2세는, 귀족뿐만 아니라 성직의 임명에도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점차 주요한 시민적 · 교계적 지위자들의 권력이 부흥하여, 마침내 왕권의 중앙화에 도전해 오게 되었고, 카르낙에 있는 아몬 신전의 경제적인 힘도 왕권과 경쟁 관계가 되어 갔다. 그리하여 제19 왕조 중반에는 왕의 계승자 문제가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그는 그의 삼각주 거주지에서 80세에 사망하였고, 그의 시신은 미이라로 보존되어 테베에서 발견되었다.
〔성서 관련적 의의〕 출애굽기에서 이집트 왕의 이름은 밝히지 않고 '파라오' 라고만 언급되어 있지만,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라므세스 2세는 출애굽의 사건과 결합되어 있다고 간주된다. 수많은 외국인 용병들과 노예들이 라므세스 왕가가 벌였던 건축 사업에 동원되었는데, 델타 동쪽에 건립된 왕궁 즉 '라므세스의 집' (Pi-Ramessu)은 세티 1세 재위시에 이미 건축되고 있었기 때문에, 세티 1세는 출애굽기 1장의 '착취의 왕' 이고, 라므세스 2세는 출애굽이 발생하였던 때에 통치하던 자였을 가능성이 많다. 또 한 가지의 가능성은, 비돔이라는 도시가 라므세스 2세의 비문이 발견되었던, 현재의 텔 엘 라타바(TellelRataba) 자리에 있었던곳이라는 것이다. (→이집트 ; 출애굽기)
※ 참고문헌  R.O. Faulkner, Egypt From the Insception of the Nineteenth Dynasty to the Death of Ramesses Ⅲ, Cambridge Ancient History,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1963/ Sir Alan H. Gardiner, The Kadesh Inscriptions of Ramesses II, Oxford, Oxford Univ. Press, 1960/ -, Egypt of the Pharaohs, Oxford, Oxford Univ. Press, 1961/ J.A. Wilson, The Culture ofAncient Egypt, Chicago, Univ. of Chicago Press, 1951/ E.F. Winte, 《ABD》 5, pp. 618~620. 〔張春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