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발, 자크-데지레 (1803~1864)

Laval, Janques-Désir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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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선교사. 신부. 마리아 성심 수도회(Congrégation du S. Coeur de Marie) 회원. 1803년 9월 18일 프랑스 에브르(Evreux)에 있는 크로(Croth)에서 유복한 농부의 가문에서 태어나, 그의 삼촌이자 트루빌 라 캄파뉴의 주임 신부인 라발 신부에게서 라틴어를 배웠다. 에브르의 소신학교와 파리의 스타니슬라오 대학에서 수학한 후 의학을 공부한 라발은, 1830년에 의사가 되어 생 안드레 드 레르와 이브리 라 바타이유에서 의사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곳에서 말에게 심하게 다쳐 생명을 잃을 뺀하였는데, 회복되자 생 쉴피스(St. Sulpice)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신학교 시절 리베르만(M.M. Libermann), 부르봉섬 출신의 바바세르(Vavasseur) 생 도밍고 출신의 티스랑(Tisserand) 등과 친분을 나누던 라발은, 그들과 함께 아프리카의 복음화를 위한 수도회를 세울 계획을 세웠다. 1838년 12월 2일 사제품을 받은 라발은 고향 에브르로 돌아와 450명 가량의 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 팽트빌(Pinerville)의 주임 신부가 되어 기도와 참회의 열정적인 생활을 하였다.
〔선교 활동〕 베네딕도 수도회 콜리에(M. Collier) 신부의 초대를 받은 라발 신부는, 1841년 주교의 동의를 얻어 인도양에 위치한 모리셔스(Maurius) 섬의 대목구에 속해 있는 흑인들을 위해 선교 활동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3명의 동료 사제들, 즉 베네딕도 수도회 사제 1명과 교구 사제 1명, 그리고 사부아의 사제 1명과 함께 그 해 9월 13일 모리셔스에 도착하였다. 며칠 후인 9월 27일에 리베르만 신부가 마리아의 성심 수도회를 설립하자 라발은 그 수도회에서 서원을 하였다. 그 후 라발과 그의 동료들은 1835년 1월 1일 이래로 노예 제도로부터 해방된 약 75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을 찾아가 전교하게 되었는데, 열심한 선교 활동으로 그곳의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은 충실한 신자가 되었다. 이때부터 태어난 아이들은 곧 세례를 받게 되었으며, 따라서 그 아이들은 자기네들의 토속 종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조상 숭배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후손들 역시 굳건한 신앙을 유지하여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을 믿고 있다. 1864년 9월 9일 사망할 때까지 23년 동안 그곳에서 많은 일을 했던 라발은 그들에게 '모리셔스 섬의 사도' 로 불린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이미 성인으로 간주하였으며, 그가 사망한 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무덤을 끊임없이 찾아왔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9월 9일에는 그를 기억하여 기리는 많은 순례객들이 그곳에서 기도를 바친다. 1918년 6월 26일에 시복되었다. (→ 모리셔스)
※ 참고문헌  J. Bolâtre, 《Cath》 7, p. 72.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