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브르, 베네딕도 요셉(1748~1783)

Labre, Benedict 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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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 요셉 라브르.

베네딕도 요셉 라브르.

성인. 축일은 4월 16일. 일명 '로마의 거지' 라고도 불렸으며 '40시간 성체 조배' 신심을 크게 전파한 라브르는, 1748년 3월 25일 프랑스의 아메트(Amettes)에서 소매 상인의 15자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라브르가 12살 되던 해에 에랭(Érin) 교구 신부인 큰아버지에게 보내어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게 하였다. 라브르도 점차 성서와 성인들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을에 콜레라가 유행했을 때에는 열성적으로 환자들을 돌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백부가 콜레라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라브르는 공부를 중단하고 엄률(嚴律) 수도회에 입회하여 보속과 고행의 삶을 살고자 하였다. 그래서 카르투지오회(Cartusia)와 같은 엄률 수도회에 입회한 적도 있었지만 특이한 성격과 건강 때문에 나왔다.
1770년 라브르는 로마로 순례를 시작하였다. 부모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는 이탈리아에 있는 수도회에 입회할 예정이라고 적어 보냈지만 맨발로 구걸하면서 보낸 순례 여행은 그의 마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방랑생활을 하면서 세상 한가운데서의 복음 실천을 자신의 소명으로 느끼고 수도원에 입회하려던 계획을 과감하게 포기하였던 것이다. 그 후 6년 동안 로레토(Loreto), 아시시(Assisi, 바리(Bar), 아인지에텔른(Einsiedeln), 엑스(Aix), 콤포스텔라(Compostela) 등 유럽의 유명한 성당을 계속적으로 순례하였는데 항상 맨발로 다녔고 누더기 망토와 몇 권의 책 외에는 재산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거지 행색이었기에 미친 사람으로 놀림을 받거나 중상과 비방을 당하였다. 나쁜 날씨 등 어려운 경우도 많았지만 이 모두를 하느님을 위하여 스스로 당하는 고통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또 오랜 순례 동안에도 몇 시간씩 성당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고, 며칠씩 외딴 곳에서 기도하며 지내곤 하였다.
라브르는 1776년부터 로마에서 머물렀는데 낮에는 성당에서 기도로, 밤에는 폐허가 된 콜로세움에서 지냈다. 특히 40시간 성체 조배를 좋아하여 이런 신심이 준행되고 있는 성당들을 찾아다니곤 하였는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탓에 건강은 점차 악화되었다. 1783년 성주간 화요일을 내내 기도로 보낸 라브르는 다음날 수요일도 다시 조배하기 위해 성당에 갔다가 제대 앞에서 졸도하였다. 곧 정신을 차려 성당 현관 앞 돌층계까지 나왔으나 다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마침내 35세의 젊은 나이로 하느님 품에 안겼다. 장례식은 인파가 몰려서 군대가 동원되어야 할 정도의 성황 속에 엄숙히 치러졌다. 그의 사후 거의 백 년이 지난 1883년 12월 8일 원죄 없으신 성모 잉태 대축일에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자기를 포기하는 마음' 을 영성 생활의 비결로 삼은 라브르 성인의 삶은 십자가의 고통은 외면한 채 부활의 영광만을 바라는 현대인들에게 참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경종이 되고 있다. "나는 나의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고귀한 인식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그분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을 쓰레기로 여깁니다"(필립 3, 8). (⇦ 분도라브르)
※ 참고문헌  김정진 편역, 《가톨릭 聖人傳》, 가톨릭출판사, 1987/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바오로출판사, 1987/ 최정오 편,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 출판사, 1987/ 배문한, 《그리스도의 향기》, 성모출판사, 1993/ W.E. Langley, 《NCE》8, p. 302.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