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신, 장 밥티스트 (1639~1699)

Racine, Jean Bapti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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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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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신.

프랑스의 극시(劇詩)작가이며 프랑스 고전주의 비극(tragédie)의 대가. 고전 비극의 전형을 확립시켰으며, 절도 있는 수법과 강력한 시적 감정이 결합된 완벽한 기교로 자신의 비극을 가장 높은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생애와 작품〕 라신은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65km쯤 떨어진 라페르테 밀롱(La Ferté-Milon)에서 평범한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1세 때 어머니를,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고아가 된 라신은 할머니 곁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가 9세 때, 과부가 된 할머니는 그를 데리고 파리 근처의 포르 르와얄 데 상(Port-Royal des Champs) 수도원으로 가서 수녀가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라신은 생애 최초의 행운을 얻게 되는데, 이 수녀원 근처에는 유명한 학자들과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이들은 1642년과 1656년에 로마에서 비난받은 얀센주의(Jansénisme)를 지지하였는데, 그 종교 운동의 영향으로 금욕적인 은둔 생활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작은 학교' (Petite Ecole)를 세워 10~20여명의 소년들로 구성된 소그룹을 대상으로 교육에 힘을 쏟고 있었다. 할머니의 도움으로 이곳에서 공부하게 된 라신은 그들에게서 라틴어 지식과 문학적 취향을 흡수하였고, 그 당시의 순수한 문필가들로부터 해박한 그리스어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원죄와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그들의 우울한 신학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1653~1654년에는 보베(Beauvais)로 가서 얀센주의 계통의 한 대학에서 고전을 배운 후 포르 르와얄로 돌아와 1658년까지 '작은 학교 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1658년 파리로 간 라신은 아르쿠르(Harcourt) 학교에서 1년 간 철학을 공부하였다. 이때 그는 사교계를 출입하며 문필가들과 친분을 쌓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비극을 써 보기도 하였다. 라신의 파리 생활을 염려한 친척들과 포르 로얄 스승들은 위제(Uzes)의 주교 총대리를 맡고 있는 라신의 외삼촌이 그에게 성직을 얻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1661년에 그곳으로 내려보냈다. 약 2년 동안 그곳에 머물렀지만, 주위의 기대와는 달리 문학에 대한 정열을 버리지 못하고 친척과 스승들과 마찰을 빚은 채 파리로 돌아와 버린 라신은, 그 후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작가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때 그는 위대한 희극 시인이자 배우 겸 감독인 몰리에르(Moler)를 만나게 된다. 그 당시 그가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몰리에르를 따라다니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었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이를 반대하던 얀센주의자들인 스승과 친척들을 무시하는 행위였다. 1663년에 라신은 개심(改心)하지 않는 한 포르 로얄 수도원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통고를 받았다.
1664~1677년 라신은 시인이자 극작가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664년 몰리에르는 라신의 첫 번째 비극 《테바이드 : 원수지간의 형제들》(La Thébaïde ou les frères ennemis)을 공연하였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 다음해에 공연된 《알렉상드르》(Alexandre)는 그런 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몰리에르의 자연적인 연기 방식에 불만을 품은 라신은 이 작품을 부르고뉴 극장(Hotel de Bourgone)으로 몰래 가져 가서 몰리에르 극단이 공연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공연을 하였다. 이 사건 때문에 몰리에르와 결별하게 된다. 부르고뉴 극장에서의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라신이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완전히 굳힌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행동 때문에 그와 포르 로얄과의 관계는 더욱 불편해졌다.
1667년 관중들에게 새로운 충격을 던져 준 《앙드로마크》(Andromaque) 공연으로 라신은 당시 비극의 거장인코르네이유(Coreneille)에 버금가는 성공을 하게 되었다. 가장 순수하고 비극적인 감동을 재발견한 라신의 이 비극은 정념적(情念的)인 사랑의 맹목적인 면과 비극적인 어리석음을 주제로 다루었는데, 이것은 라신의 진가가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 것이다. 1668년에는 라신의 유일한 희극인 《소송광(訴訟狂)들》(Les Plaideurs)이 발표되었다. 한편 《앙드로마크》공연 이후로 코르네이유 지지파들과 맞서게 된 그는 《소송광들》 서문에서 이들에게 반격을 가하였다.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할 의도로 코르네이유가 즐겨 다루던 로마 역사에 바탕을 둔 《브리타니쿠스》(Britanicus, 1669)를 발표 하였지만 이 작품은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나 당시 코르네이유의 작품과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서 테마를 얻은 《베레니스》(Bérénice, 1670)의 공연이 성공함으로써 끝내 자신의 뜻을 이루게 된다. 1672년에는 터키를 무대로 한 《바쟈제》(Bajazet)의 공연으로 명성은 절정에 달했고, 이듬해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이어 1674년에는 《미트리다트》(Mithridate), 《이피제니》Iphigénie) 같은 걸작들을 연속 발표하였고, 명예 자문 귀족직인 프랑스 출납관에도 임명되었다.
파리 무대에 오른 그의 비극들 가운데 가장 심오하고 시적인 《페드르》(Phèdre, 1677)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으나 공연에는 실패를 하였다. 라신이 연극과 결정적으로 손을 끊기 전에 발표된 이 희곡은, 포르 르와얄 사람들과의 화해도 이루어져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젊은 시절의 도덕으로 되돌아가는 작가의 마음을 반영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포르 르와얄에서 주선한 신앙심 깊은 여인과 결혼할 무렵, 라신은 절친한 친구이자 비평가이며 풍자 작가인 니콜라스 브왈로(Nicolas Boileau, 1636~1711)와 함께 루이 14세의 사관(史官)으로 국왕의 치세에 대한 공식 역사를 쓰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1677년부터 라신의 직업과 생활 방식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였다. 사교적 재능이 뛰어난 그는 궁정에서 환영을 받았으며 새로운 명예가 잇따랐고, 1690년에는 왕의 침실에서 시중을 드는 시종이 되었다. 이는 명실공히 귀족에 속하는 칭호로서 두 번째로 높은 계급이었고, 1693년에는 왕의 배려로 세습적인 칭호가 된다. 비록아내는 라신의 작품을 단 한 편도 읽지 않았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지만 슬하에 2남 5녀의 자식을 둔 가정을 훌륭히 꾸려 나갔다. 만년에는 생시르(Saint-Cyr) 여학교를 위해 성서를 바탕으로 쓴 두 편의 희곡, 《에스테르》(Esther, 1689)와 《아탈리》(Athalie, 1691)를 제외하고는 작품 활동도 일체 중단한 채 포르 르와얄 수도원의 가르침대로 조용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1696년에 장관직을 사면서 낭비한 돈과 1698년에 그 지위에 부과된 세금은 그때까지 유복했던 경제사정을 악화시켜, 그 동안 얻었던 사회적 신분조차 유지하기 힘들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얀센주의자들과 유지해 온 우정 때문에 왕의 호의도 점차 식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신은 죽기 전, 마지막 생애 18개월 동안 특히 더 엄격한 금욕 생활을 하였으나 1699년 간종양으 로 가족과 옛 친구 브왈로가 보는 가운데 평안히 숨을 거두었다. 그의 딸 하나는 그가 죽기 직전에, 그리고 또 하나는 그가 죽은 직후에 수녀가 되었다. 그의 유언에 따라 포르 르와얄에 있는, 옛 스승들 중에서도 그가 가장 존경하였던 은사 아몽(M. Hamon)의 무덤 발치에 묻혔다.
〔평 가〕 라신의 작품에서 비극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정념에 사로잡힌 사랑이다. 왜냐하면 모든 정열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연정이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그들의 넋을 그 밑바닥까지 뒤흔들어 끊임없이 번민하고 때로는 이성을 잃기도 하면서 알 수 없는 운명에 시달린다. 그들은 가끔 서로 죽이거나 자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처럼 잔인하게 그들을 이끄는 것은 바로 숙명적인 정열이다. 사랑의 격정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저항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고, 아무리 자신을 분석하며 자신을 심판하고 자신을 책망해도 소용이 없다. 인간은 무슨 일을 하든 자기의 정열에 끌려 다닌다. 왜냐하면 정열은 억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성에 대한 라신의 이러한 정의는 그의 사상 토대가 되는 얀센주의에 기인하는 것이다. 문학가의 길을 걷는 동안에는 옛 스승들과 절교하였으나 그들의 가르침은 항상 그의 정신 속에 뿌리박고 있었다. 라신은 유년 시절 스승들의 가르침을 자기 작품의 주인공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즉 인간 본성은 약한 것이어서 본능 · 정열 · 의지 사이에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되며, 은총 안에 살지 않으면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어서 결국은 본능의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 몰리에르 ; 가톨릭 문학, 프랑스의)
※ 참고문헌  André Lagard · Laurent Michard, Les grands auteurs frangais du programme, XXe Siècle, Bordas, 1969/ G. Lanson · P. Tuffrau, Manuel illustrè d'histoires de la Littércture française, Classique Hachette, 19741 Pierre Brunel etc., Histoire de la Littércture française, tome 2, Bordas, 1981/ J.P. de Beaumarchais · Daniel Couty · Alain Rey, Dictiomaire des Littératures de Langue française, tome 1, Bordas, 1987. 〔曺圭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