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법 학자의 수호 성인. 도미니코 수도회 신부. 교회법 학자. 축일은 1월 23일. 1175년 스페인 카탈로냐 지방의 페냐포릇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 주교좌 성당의 부속 학교에서 공부한 후 그곳에서 논리학과 수사학을 가르쳤다. 이탈리아로 건너가 볼로냐 대학에서 8년 동안 법학을 공부하여 1218년에 교회법과 민법 분야의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그곳에서 강의를 하였다. 바르셀로나로 다시 돌아온 그는 1222년에 알렉산드리아의 가타리나 수도원에 들어가 도미니코회의 수도자가 되었다.
1229년 스페인에서 교황 사절의 보좌로 일하던 라이문도 신부는, 이듬해 교황 그레고리오 9세(1227~124)의 부름을 받아 로마로 가서 교황궁 고해 사제와 교황청 내사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신학교와 대학교의 교과서로 사용하기 위해 그때까지의 역대 교황의 교령들을 수집하라는 교황의 명에 따라 이를 묶어 《그레고리오 9세 교령집》(Decretales Gregorii IX)을 편찬하였다. 이 교령집은 1234년에 교황 칙서(Rex Paciticus)로 공포되었다. 라이문도는 1235년에 아라곤 왕국의 수도인 타라고나(Tarragona)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다음해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1238년까지 수행한 교황청 내사원 원장을 제외한 모든 직책에서 떠나 설교 업무에만 전념하였다. 명예에 관심이 없었지만 1238년에 동료 회원들의 추대로 도미니코 수도회 3대 총장으로 선출되어 내사원 원장직을 사임하였다. 그는 성 도미니코가 수도회를세우면서 적응했던 관습을 보존하면서도 설교자 수도회로 도미니코회의 회헌을 개정하였다. 1240년 도미니코회 총장으로서의 직무를 마친 후 스페인으로 돌아온 라이문도 신부는, 그 후 35년 간 이단과 싸우면서 유대인과 무어인들의 회개를 위해 헌신하였다. 또한 도미니코회 학교에 히브리어와 아랍어 학과를 설치하도록 하였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로 하여금 이방적인 정신 세계에대한 참된 신앙의 표현인 《대이교도 대전》(對異敎徒大全, Summa Contra Gentiles)을 저작하도록 격려하기도 하였다.
그의 최초의 저술은 1222~1229년에 바르셀로나에서 쓴 《고해성사 사례 대전》(Summa de casibus poenitentiae)4권이다. 처음에는 3권이었으나 1235년에 탄크레드(Tancred)의 유명한 《혼인 대전》(Summa de matrimonio)을개정한 내용이 덧붙여졌다. 1권은 하느님을 거스른 죄, 2권은 이웃 사람을 거스른 죄, 3권은 무자격이나 장애에 관한 사항 및 그에 따르는 관면에 관하여 서술되어 있다. 그 밖에도 그는 교회법에 대한 많은 권위 있는 교과서들을 저술하였는데, 그의 저술들은 후대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의 편찬으로 이루어진 《그레고리오 9세 교령집》과 개정된 도미니코 수도회의 회헌 등은 현대의 교회법전에 이르기까지 교회법률의 한 부분으로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100세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위한 생애를 살았던 라이문도 신부는 1275년 1월 6일 선종하였다. 그의 시신은 처음에 바르셀로나의 가타리나 수도원 성당에 안치되었다가 1878년에 바르셀로나의 주교좌 성당의 요한바오로 소성당으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1601년에 교황 글레멘스 8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교회법전》)
※ 참고문헌 최정오,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출판사, 1987/ P. Stenger, 《NCE》 12, p. 105/ J.E. Tobin, 《CE》 9, pp. 171~172. 〔鄭鎮奭〕
라이문도, 페냐포릇의 (1175~1275)
Raimundus de Peñafort
글자 크기
3권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게 교령집을 증정하는 라이문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