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 연안, 적도 바로 위에 위치한 아프리카 최초의 공화국으로 정식 명칭은 라이베리아 공화국. 면적 11만 1,370k㎡, 인구 284만 4천 명(1993) . 북서쪽은 시에라리온, 동쪽은 코트디부아르, 그리고 남쪽은 대서양과 접하고 있으며, 수도는 먼로비아(Monrovia)이다. 언어는 영어가 공용어이고, 종교는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이슬람교 그리고 전통적인 부족 신앙 등이다. 15세기경 메수라도(Mesurado) 범선을 타고 이곳에 정박한 포르투갈인들은, 이곳을 '후추 해안' 또는 '곡물 해안' 이라 불렀다. 16~18세기에는 유럽의 식민 세력들이 이곳을 놓고 서로 경합을 벌였으며, 1821년에 미국은 해방 노예인 흑인(Negro)들을 데려와 국가를 세우고 '자유의 나라' 라는 뜻으로 라이베리아라고 명명하였다. 1847년 7월 26일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1891년 프랑스가 영토를 부분적으로 강탈하는 등 식민주의 국가들은 계속해서 라이베리아의 권한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미국의 원조를 받은 정권이 들어섰으나 1980년 4월 사무엘 도에(Sammuel K. Doe)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심각한 경제 위기로 1989년에는 내란이 발발하였으며, 이듬해 9월 9일에는 도에가 살해되고 마침내 1993년 7월 평화 협정이 체결되어 내란은 종식되었다. 그러나 평화 협정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 정치적으로 피폐된 이 지역에는 아직까지 긴장이 감돌고 있다.
15세기부터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이 해안 지역을 방문하였으며, 17세기 이래 시에라리온에서 온 예수회와 카푸친회가 간헐적으로 전교 활동을 하였다. 1833년 미국 찰스톤(Charleston)의 존 잉글란드(John England) 주교는 가톨릭을 믿는 흑인 거주자들을 돌보아 줄 선교사들을 파견해 줄 것을 교황청에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아일랜드 출신의 바론(E. Barron) 신부와 켈리(J. Kelly) 신부, 그리고 평신도 핀다르(Denis Pindar)가 1842년에 이곳으로 파견되었다. 1842년에 창설된 기니의 대목구장이 된 바론 주교는 1844년에 유럽에서 7명의 신부와 3명의 평신도들을 더 데리고 라이베리아로 돌아왔으나 선교사들이 죽거나 건강이 나빠져서 선교를 포기하고 말았다. 1884~1886년 시에라리온의 성령회가 먼로비아에 선교회를 설립하였으며, 1903년에는 라이베리아 지목구가 창설되어 몽포르(Montfort)회에 위탁되었다. 1906년부터는 아프리카 선교사회가 선교의 책임을 맡았다. 1934년 라이베리아 지목구가 대목구로 승격되었으며, 1950년에는 먼로비아 대목구가 라이베리아 대목구에서 분리 설립되었고, 케이프 팔마(Cape Palmas)는 1962년에 대목구로 승격되었다. 정식 교계 제도는 1982년에 설립되었으며1993년 현재 가톨릭 신자는 총인구의 3%인 79,000명이고, 대교구 1, 교구 2, 본당 58, 공소 200개에, 대주교 1, 주교 2, 사제 42(교구 소속 18, 수도회 소속 24), 신학생 21, 수사 19, 수녀 61명이 있다. (⇦ 리베리아)
※ 참고문헌 M.J. Rooney, 《CE》 6, pp. 381~385/ F.X. Murphy, 《NCE》 8, pp. 713~714/ 《EU》 13, pp. 725~7291 《EU》 Les chiffres du Monde 1994, p. 328/ Petit Robert, Dictiomaire Universel des Noms Propres 2, 1988/ 《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 사전》 10, 동아출판사, pp. 278~2791/1994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梁惠貞〕
라이베리아
〔영〕Republic of Libe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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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