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토마스. 한국 성 은 나(羅). 1906년에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페스트(Belfast)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달간 파크(Dalgan Park) 대신 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수학한 다음 1932년 12월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듬해 10월 29일 아일랜드의 골롬반 외방 선교회가 처음 한국에 진출할 때 입국한 라이언 신부는, 1934년에 동료 신부와 함께 제주도에 파견되어 서귀포의 서홍리(西烘里, 현 서귀포) 본당에서 전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교 활동을 펴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한때 그는 일제에 의해 신자들에게 민족 의식을 고취시켰다는 혐의를 받아 다른 많은 외국 선교사들과 함께 구금되기도 하였다.
해방 후 1946년에는 일제의 우민 정책에 따라 탄압을 받고 무기 휴교 조치를 당했던 신성학교(晨星學校)를 신성여자중학원으로 재건한 라이언 신부는, 1948년 4월 3일 남조선 노동당 계열의 좌익 분자들이 일으킨 '제주도 폭동 사건' 으로 제주도 전역이 큰 피해를 입게 되자, 피해 복구와 이재민의 구호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또 '제주도 유지(有志) 사건' 때에는 선의의 피해를 입은 인사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에 적극적으로 호소하는 일을 전개하였다.
선교사로 한국에 파견된 이후 38년 동안 한국 천주교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라이언 신부는 주로 제주도 지역을 맡아 매우 적극적으로 사목하였다. 그러나 65세 때인 1971년 11월 20일에 목포의 성 골롬반 병원에서 간암으로 선종, 그의 첫 부임지이면서 성직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서홍리 본당 경내에 안장되었다. (→ 제주교구)
※ 참고문헌 Jeremiah F. Kelly, The Spendid Cause, Columban Fathers, 1984/ <가톨릭 시보>(1971. 12. 12)/ 《경향잡지》 1246호(1972. 1)/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 50년사》, 빛고을 출판사, 1990. 〔李裕林〕
라이언, 토마스 (1906~1971)
〔영〕Ryan, Thomas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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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라이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