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마르철리노. 한국명은 구마슬(具瑪瑟) 1871년 5월 1일 프랑스 보르도(Bordeaux)에서 태어나, 1890년 9월 15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894년 7월 1일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같은 해 8월 29일 프랑스를 출발하여 많은 고생 끝에 두 달 뒤인 10월 25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입국하자마자 곧바로 전북 금구(金溝) 땅 배재[梨峴] 지역에 파견되어 베르모렐(Vermorel, 張若瑟) 신부, 조조(Jozeau, 趙得夏) 신부 등과 더불어 전라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895년 5월에는 수류(水流) 지방으로 근거지를 옮겨 그곳에 성당 건립을 위한 부지를 마련하고, 이듬해 수류 본당을 창설하였다. 초대 주임 신부가 된 라크루 신부는, 배재를 비롯한 본당 관할 지역의 교세 신장과 전교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1900년 6월 5일 제주도로 부임하였는데, 그곳은 외국인을 불신하는 토착민, 선교사들의 존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지방 관리들, 그리 고 선교사들에게 환심을 사려고 하는 유배인들 때문에 어려움이 많은 지역이었다. 따라서 라크루 신부는 더욱더 적극적인 전교 활동을 펼쳐, 많은 외교인들을 개종시키고 교회의 기틀을 다져 나갔다. 그러나 1901년에 교 · 민(敎民) 사이의 유혈 폭동 사건 즉 신축교난(辛丑敎難, 제주교안)이 발생하여 그 동안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주민들의 반감과 박해가 계속되었지만, 라크루 신부는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교에 힘써, 마침내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한편 1909년에는 교육 사업의 일환으로 제주 읍내에 초등 교육 기관인신성학교(晨星學校, 현 신성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하였으며, 학교 운영을 위해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의 한국인 수녀 두 명을 초빙하기도 하였다.
1915년 보두네(F.X. Baudounet, 尹沙勿) 신부 후임으로 전주(全州, 현 전동) 본당 2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사목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18년에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고국 프랑스로 돌아갔다. 그 뒤 1920년에 한국에 재입국한 라크루 신부는, 1925년에 결핵 치료를 위하여 홍콩에 갔다가 완쾌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한국에 돌아와 계속 전교 활동을 해나갔다. 1926년에는 전주 본당의 사제관을 신축하였고, 현재의 강당 자리에 학원을 설립하여 젊은 여성들이 교리와 학문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만성 폐결핵이 악화되어 결국 1929년 8월 11일 전주에서 사망하였다. (→ 제주교구 ; 제주교안 ; 전동 본당)
※ 참고문헌 《경향잡지》 668호(1929. 8)/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호남교회사연구소, 《전주교구사 연표》, 빅벨출판사, 1993/ 김구정 · 김영구, 《天主教湖南發展史》, 천주교 전주교구, 1964. [李裕林]
라크루, 마르셀 (187~1929)
Lacrouts, Marc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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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마르셀 라크루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