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테란 공의회

公議會

[라]Concilium Lateranese · [영]Councils of Late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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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라테란 대성전에서 1123년, 1139년, 1179년, 1215년, 1512년 총 5차에 걸쳐 개최된 세계 공의회.
I . 제1차 라테란 공의회
교황 갈리스도 2세(1119~1124)가 1123년 사순절 기간(3. 18~4. 6)에 소집한 제9차 세계 공의회. 보름스 정교 조약(1122. 9. 23)으로 성직 서임권 논쟁을 종결지은 교황 갈리스도 2세는 교황 레오 9세, 니콜라오 2세, 그레고리오 7세, 우르바노 2세 등 여러 선임 교황들의 개혁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는 교회의 성직 서임권 논쟁과 그레고리오 개혁 정책으로 교황의 권위가 매우 증대되고 강화되던 시기였다. 따라서 교황 갈리스도 2세는 독일 황제 하인리히 5세(1106~1125)와 맺은 서임권 논쟁의 종결을 재확인하고, 10여 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던 싸움과 대립 교황 그레고리오 8세(1118~1121)와의 이교 분쟁 이후 교회의 일치와 평화를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공의회를 소집하였던 것이다.
300명 이상의 주교 및 대주교와 600여 명의 서방 교회 대수도원장들이 참석한 이 공의회의 공식 의결 기록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22개(또는 25개)의 교회 법규가 공포되었다. 그 내용들은 1119년에 개최되었던 랭스(Reims) 교회 회의에서 결정된 법규와 같은 이전의 법규들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주로 성직자의 서임과 영성적 직무, 성직자와 교회 재산 등의 보호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성직 서임에 관한 개혁 : 교황 그레고리오 7세(1073~1085)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개혁 정책은 바로 성직 매매 행위의 근절이었다. 따라서 이 정책은 제1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논의되었는데, 이에관한 규정으로는 성직 매매 금지(1조), 주교 서품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교회법에 따른 선출의 필요성(3조), 단계적인 성직 서품(6조) 등이 있다.
② 성직자 생활의 쇄신 : 수도자와 차부제 이상 성직자의 축첩을 금지하며, 니체아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차부제 이상의 성직자와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여성의 제한 조건(7조).
③ 교회 재산 관리와 교황령 보호 : 평신도는 어떤 경우에도 교회 재산의 소유권을 가질 수 없으며, 이에 대한 권한은 전적으로 주교에게만 있다(8조). 성인들의 봉헌물과 베드로의 세습령(Patrimonium Petri) 등의 교회 재산, 특히 로마 교회의 재산을 보호하고 이 재산의 침탈을 엄금한다(12조). 교황령인 베네벤토(Benevento)의 침략을 파문으로 금지한다(17조).
④ 체계적인 사목권의 질서 확립 : 반드시 새로 사목을 담당하는 성직자는 미리 주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4조). 수도자들은 병자성사의 집전이나 일반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 장엄 미사 등의 사목적인 직무를 시행할 수 없다. 또한 자신의 소속 주교를 하느님 교회의 스승이자 목자로 생각하여 늘 겸손하게 순명해야 하며, 그 주교의 사목권에 대해서도 순명해야 한다(16조).
⑤ 기타 : 이미 해당 주교로부터 파문당한 자를 다시 다른 주교나 수도원장이 교회 공동체에 받아들이는 것을 금지한다(2조). 혈족 혼인 장애에 대한 규정(9조). 교황 우르바노 2세(1088~109)가 1095년에 부여한 십자군에 대한 3가지 특권, 즉 대사(大赦) 및 모든 십자군들의 가족과 재산에 대한 보호 협약을 재확인하였다(10조). 순례자들과 상인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파문한다(14조). '신의 휴전' (Treuga Dei, 12~13세기 무렵 분쟁 중인 제후들에게 교회의 명령에 따라 대림절과 사순절, 그리고 부활 시기 동안에는 휴전하게 하는 제도)을 지키지 않는 자에 대한 처벌 규정(15조). 화폐 위조자나 위조된 화폐를 유통시키는 자는 모두 가난한 자를 억압하고 사회를 혼란시키는 저주받을 자로 단정지어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처벌 규정(13조) 등이다.
이 공의회는 도덕적인 개혁과 그리스도인들의 평화를 도모하고, 보름스 정교 조약에서 결정된 사항들이 모든 교회에 대해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게 하는 데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특히 십자군 운동 등 이미 전(前) 시대부터 시작된 교회의 당면 과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그레고리오 개혁 운동을 정착시켰으며, 후대의 교회들이 쇄신 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여 세계적으로 로마 주교좌의 기능과 위상을 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게 하였다. 따라서 이 공의회는 교회의 개혁 역사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콘스탄츠의 코라도(Corrado, +976) 주교가 이 공의회에서 시성되었다.
II . 제2차 라테란 공의회
교황 인노첸시오 2세(1130~1143)가 교회의 일치를 확인하고 교리와 규율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139년 4월 4일에 소집한 제10차 세계 공의회. 이 공의회가 개최되기 전 1130년의 교황 선거에서 인노첸시오 2세와 아나글레토 2세(1130~1138)가 이중으로 선출되자 분열 · 대립하는 일이 발생하였는데, 이 일은 결국 1138년에 아나글레토 2세가 사망함으로써 종결되었다. 대략 500~1,000여 명의 주교와 대주교, 대수도원장들이 참석하였는데, 그중 일부는 동방 교회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개회 연설에서 교황은,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며 교회 안에서 교황은 군주와 같은 권위를 갖고 있는 존재이며, 모든일을 결정하는 데에는 교황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교황은 대립 교황 아나글레토 2세를 추종하는 자들의 성직을 박탈하고, 모든 이단자들에 대해서는 단죄하고 파문할 것을 선언하였다.
여기에서도 제1차 라테란 공의회에서처럼 이미 개최된 클레르몽(Cleromont) 교회 회의(1130)와 랭스 교회 회의(1131) 등에서 결정된 사항들을 재확인하였다. 따라서 이미 추진되고 있었던 교회의 개혁 정책과 함께 1139년 4월 8일에는 교리와 교황의 권위, 주교, 성직자, 수도자, 교회의 권리 등의 제반 문제를 다룬 30개의 교회 법규가 공포되었다. 법규 내용 중 23조와 30조의 두 조항만 신앙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제1차 라테란 공의회의 결의 내용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이 공의회의 결정들이 《그라시아노 법령집》에 수록되었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성직 서임 : 원칙적으로 성직 매매를 금지한다. 만약 성직 매매 행위로 성직에 오른 자가 있다면 그 직책을 박탈한다(1-2조). 사제의 아들은 '제단의 봉사 를 할 수 없다(21조). 주교가 선종한 후 교회법에 따라 3개월 이내에 새로운 주교를 선출해야 한다. 그 이상의 공석 기간을 두어서는 안되며, 수도자와 의전 사제들의 협력을 받아 기간 내에 선출해야 한다(28조). 이교와 이단에 의한 성직 임명은 모두 무효로 인정한다(30조)
② 성직자 생활의 쇄신 : 모든 주교와 성직자는 자신들의 영혼과 모범적인 행동을 통해 하느님과 타인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4조). 부제나 그 이상의 성직에 서품된 자가 결혼하거나 축첩 생활을 하면 그 직무와 성직은 박탈된다(6조). 수녀들은 성당에서 남성 수도자나 의전 사제들과 시편 기도를 위한 성가대를 구성할 수 없다(27조). 주교, 의전 사제, 사제, 부제, 차부제, 정결 장엄 서원자의 결혼을 금지한다(7-8조) . 수도자와 의전 사제들은 민법과 의학을 배울 수 없다(9조)
③ 교회 재산 문제 : 평신도가 교회를 소유하거나 그 교회의 십일조에 대한 수입을 갖는 것, 그리고 고용된 사제에게 교회를 맡기는 것을 금지한다. 모든 교회에는 반드시 상주하는 소속 사제가 있어야 한다(10조). 교회록의 상속을 금지한다(16조) . 평신도가 교회록을 수여하는 것을 금지한다(25조)
④ 성사 생활 : 가식적인 참회는 금지한다(22조) 성사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제재를 받아야 한다(23조). 견진성사, 병자성사, 장례 미사의 경우에는 무료로 집전해야한다(24조)
⑤ 일상 생활에 관한 규정 : 한 번 소속 주교로부터 파문당한 사람을 다른 주교가 받아들일 수 없다(3조). 이미 선종한 주교라도재산을 횡령한 경우에는 단죄한다(5조). 성직자, 수도자, 순례자, 상인, 농부에 대해서는 안전을 보장한다(11조). 신의 휴전 준수 의무(5조). 고리 대금 금지(13조). 기마 시합 금지(14조). 타인을 선동하여 성직자나 수도자에게 폭력을 가한 독성죄는 파문당하며, 죽을 위험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주교라도 용서할 수 없다(15조). 혈족간의 결혼을 금지한다(17조). 방화나 기타 파괴자들은 모두 파문의 제재를 받는다(18조). 대주교나 주교가 위의 규정에 대해 엄격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 때문에 어떤 손해를 입게 될 때에는 반드시 보상해 주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1년 동안 주교의 직무를 정지한다(19조). 기마 시합 중에 쇠뇌와 활쏘는 것을 금지한다(29조).
제2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새로운 규정을 공포하지 않았다. 제1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이미 공포한 규정 중에 사제들의 사치, 친족간의 결혼 문제와 같은 어느 정도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만 주의를 환기시켰다. 또한 지역 공의회에서 결의된 몇몇 규정들만을 첨가하였을 뿐이다. 제2차 라테란 공의회 역시 신자들의 영혼을 돌보는 사목의 중심인 본당을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교회의 소유물을 분배하는 것은 주교의 판단과 권한에 예속시켰다. 사실상 이 공의회는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개혁의 결말을 예고하고 있다. 이 공의회가 개최되는 동안 보니파시오 성인의 제자이며, 풀다(Fulda) 수도원의 스트르미오(Sturmius, +779) 원장이 시성되었다.
Ⅲ . 제3차 라테란 공의회
1179년 3월 15~19/22일에 열린 제11차 세계 공의회. 1159년 알렉산델 3세 교황(1159~1181)의 선거에 뒤이어 시작된 4명의 대립 교황(빅톨 4세, 파스칼 3세, 갈리스도 3세, 인노첸시오 3세)에 의한 교회 분열이 1177년 베네치아에서 교황과 황제 사이의 조약으로 종식되면서 정치 · 종교적인 오랜 혼란 끝에 교황 알렉산델 3세는 교회를 정상적으로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교황은 무엇보다도 이교로 인한 치명적인 타격을 치유하여야 했고, 직무정지 처분을 받은 성직자와 주교들의 상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계각층 모두가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였다.
또 서방과 마찬가지로 동방에서도 공의회에 참석하는 것이 유리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교황은 자신을 돕고 교회를 쇄신하는 데에 조언을 줄 수 있는 주교들에게 서신이나 사절을 보내 소집을 통보하였다. 따라서 이 자리에는 각국에 있는 300여 명의 주교들은 물론, 다수의 대수도원장과 고위 성직자들이 참석하였는데, 교황은 공의회가 어떤 특별한 경향으로 치우쳐 진행되거나 결의 될 수 없도록 '회의의 완전한 권한' 이 자신에게 있음을 강조하였다. 공의회의 마지막 회기인 3월 19일에 공포된 27개의 법규들은 대부분 이전의 교령에 대해 공의회 차원의 승인을 재확인한 것이며, 보다 오래된 규정들을 다시 유효하게 하는 정도였다. 여기서 논의된 내용들은 모두 1234년의 《그레고리오 교회법전》에 수록되었는데, 주로 교회의 영적 · 물질적인 생활을 쇄신하기 위한 성직자의 규율과 권력 남용, 제재 조치 등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이 공의회의 최우선적인 과제는 '대립 교황' 이라는 종래의 분열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올바른 교황 선거를 치르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해결 방안으로서 평신도들의 영향력은 차단하며, 대신에 각국의 추기경단으로 선거인단을 구성하여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은 자가 교황으로 선출되도록 결정하였다. 그 밖에 7 · 10 · 15조는 이미 발표된 성직 매매 금지 규정에 대한 교령을 보완하고 갱신하는 것이었다. 주교와 수도원장의 선출, 사제나 성직자의 서품, 수도회 입회, 그리고 장례 및 혼인성사와 기타 다른 성사들과 관련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체의 금전 수수 행위를 금지하였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성직자 양성과 서품 : 모든 주교좌 성당에는 가난한 자를 위한 국민학교와 성직자 양성을 위한 학교를 설립해야 한다(18조). 주교로 선출되기 위한 연령, 출생, 학문적 조건을 규정하였다. 예를 들면 주교로 선출되려는 자는 30세 이상의 적출(摘出)로서, 품위 있는 생활과 학문 등이 인정되어 추천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부제 등 일반 성직자의 경우에도 25세 이상으로서 지적 능력이 인정되며, 도덕적인 면에서 결백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선발해야 한다(3조). 주교는 부제나 사제를 수품 명의 없이 서품하지 말아야 한다(5조).
② 성직자 생활의 쇄신 : 모든 성직자는 예전에 사도들이 자신이 직접 필요한 물자를 마련하였던 생활의 모범을 따라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하며, 고위 성직자의 경우에도 사목 방문 중에 과분한 선물을 받지 말아야 한다(4조). '교회의 몸' 안에서는 애덕이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한다. 따라서 자신이 아무 조건 없이 받았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무조건적으로 베풀어 주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주교나 수도원장, 일반 성직자의 착좌식이나 취임식, 또는 주임 사제의 임명이나 장례 예식, 혼인 축복 등 어떤 성사를 집행하는 데에 금전을 거래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7조). 교회의 직무에 있어서 그 자리가 공석이 아니면 절대 그것을 이중으로 수여할 수 없다는 교회록 수여에 관한 문제(8조). 정결한 생활을 해야 할 성직자가 축첩 등 무절제한 생활을 할 경우에는 교회록을 박탈한다(11조). 하느님을 섬기는 자는 세속 일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2디모 2, 4)는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 성직자는 그들에게 금지된 직종, 예를 들면 판사나 변호사 등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12조) 교회록의 축재 금지(13조).
③ 수도 생활 쇄신 : 수도원장의 성직 매매에 해당하는 부당한 세금 징수 금지(7조). 자선 수도회와 성전 기사 수도회에 대한 규정(9조). 수도원에 입회하려는 자에게 돈을 받아서는 안되며, 또 그들은 반드시 수도원의 본원에서 다른 수도원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게 해야 한다(10조).
④ 교회 재산 : 특정인이 2~3개의 교회를 혼자서 맡아 관리하거나 그 교회록을 이중 삼중으로 받는 것을 금지한다. 뿐만 아니라 교구장의 인가를 받지 않고서는 어떤 성직자도 평신도에게 교회 관리를 맡길 수 없다. 그리고 평신도에 대한 십일조 의무의 강요도 금지한다(14조). 교회록에 대한 성직자의 유언 집행이나 제3자에게 양도하는 것은 금지한다(15조). 성직자와 교회의 면세 문제에 대한 규정(19조).
⑤ 이교와 이단 : 대립 교황에 의한 서품은 무효로 한다(2조). 가타리파(Cathari) 등의 이단자들과 약탈자들에 대한 제재 규정(25조).
⑥ 일상 생활 : 영혼과 생명상의 위험이 있는 기마 시합을 금지한다(20조) . '신의 휴전' 준수(21조). 성직자, 수도자, 순례자, 상인, 농부를 위한 안전 보장(22조). 나환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봉사해 줄 수 있는 사제와 교회를 가질 수 있으며, 이들은 십일조 의무에서 면제된다(23조). 고리 대금업자들에 대한 제재 규정(17조).
⑦ 유대인과 사라센 : 사라센과 해적들에게 협조한 사람은 파문당한다(24조). 유대인과 사라센에 대한 제재 규정(26조).
⑧ 기타 : 소송에 관한 규정(6조). 교회 공동체에서 다수결에 의한 결정 문제(16조). 각 교회에서 1인 장상 체제의 단일성을 유지하는 문제(17조). 위와 같은 규정들은 대체로 잘 실행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도 교황의 권위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전통적으로 인정되어 온 관습이나 개별 교회의 만성적인 관습 때문에 대부분의 이해 당사자들이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은 채 오히려 그것을 유지하려고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의회는 교회법사상 교황권이 점차 강화되면서 그와 함께 교회 안에서의 개혁도 추진되는 등 중요한 공의회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이 공의회는 교황이 직접 전세계에 공의회 개최 사실을 통보하였으며, 교황 주재하에 전세계의 교회를 위한 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에 세계 공의회로 인정하고 있다.
Ⅳ. 제4차 라테란 공의회
1215년 11월 11~30일에 열린 제12차 세계 공의회로, 트리엔트 공의회 이전에 개최된 중세의 공의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공의회이다. 중세 교황권의 절정기인 1213년 4월 19일에 교황 인노첸시오 3세(1198~1216)는 동 서방 교회의 모든 총대주교와 대주교, 성직자, 그리고 그리스도교 국가의 제왕들에게 공의회 개최 사실을 통보하였으며, 그 결과 412명의 주교들이 참석하겠다는 회신을 보냈다. 약 2년 동안의 준비 기간이 끝난 뒤, 전세계 800여 명의 자치 수도원장(abbas)과 수도회의 장상, 각국 대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중세 교회에서 가장 많은 고위 성직자가 참석한 이 공의회의 목적은 여러 그리스도교 왕국 사이에서 발생한 분쟁들을 해결한 뒤에 그 일치를 도모하고, 이스라엘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 운동을 더욱더 효과적으로 추진하여 교회 전체의 개혁을 시도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1204년의 제4차 십자군 원정이 실패하자 청빈 사상을 내세우면서 교회를 비난하던 알비파와 같은 교회 내의 이단에 대한 해결 방안도 모색하려고 하였다. 즉, 오랜 악습을 추방하고 덕행을 장려하며, 남용과 나쁜 관습을 시정 · 개혁하고, 이단을 제거하며, 신앙을 굳건히 하고, 불화를 진정시키며, 평화를 이루어 그리스도교 왕국의 제후들과 국민들이 이스라엘 성지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는 것이었다. 교황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를 막론하고 어떤 형태의 부도덕적인 요소라도 과감하게 개혁하려고 노력하였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개혁 방침이 기록된 문서는 분실되었지만, 그 내용의 일부가 수록된 필사본은 현재 약 64개 정도 보존되어 있다.
1215년 11월 3일 교황명으로 70조문의 교회법이 선포되었으며, 그 외에 십자군 원정에 대한 교령이 발표되었다. 그 후 이 공의회에서 결정된 개혁 규정들은 교회를 내적으로 쇄신하고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오랫동안 후대 관구 교회 회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성체에 관한 교리에 있어서 처음으로 '실체 변화' (實體變化, transsubstantiatio)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신자는 최소한 1년에 한 번, 즉 매년 부활 대축일에는 반드시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해야 하는 의무가 규정되었다. 이 공의회에서 결의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개혁 : 정결에 위배되는 생활을 하는 성직자의 교회록을 박탈하며, 술집을 출입하거나 향연장에서 밤을 넘기는 행위, 또는 사냥 등을 금지하였다. 또 성직자가 봉건 제도의 관습에 따라 평신도 권력자에게 했던 충성서약을 금지하고, 사제가 비윤리적인 관습에 젖어들지 않도록 권고하였다. 주교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설교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주교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자기 성직자들을 지혜롭고 열성적으로 돌볼 것과 그들의 잘못을 교정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을 권고하였다. 또 주교는 파문 선고를 신중하게 해야 하는데, 예를 들면 금전적인 문제로 파문 선고를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주교의 서품, 수도원장의 축복, 사제 서품 등에 있어서 일체의 금전 수수 행위를 해서는 안되는데, 그것은 곧 성직 매매 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교좌의 공석 기간을 길게 하지 말아야 한다. 주교 서품, 수도원장의 축복, 성직자 서품, 본당 신부 임명과 관련된 일체의 성직 매매 행위를 금지하며, 성직자는 세속적인 탐욕을 포기해야 한다(63 66조). 성직 매매 행위는 수도회의 입회 과정에서도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64조). 지나치게 많은 수도회가 설립되면 교회 안에서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새로운 수도회 창설을 금지한다. 이 원칙에 따라 도미니코 성인의 설교자 수도회는 기존의 수도 규칙을 회칙으로 채택하였다. 그리고 각 관구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정기 총회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에서는 각 수도원을 정기 방문할 자를 임명하고 수도회의 문제점들을 점검하여 개혁 조치를 취하며, 주교에게 무능한 장상의 면직을 요청하는 등 여러 가지 사항을 논의한다(12조). 수도자들이 새로 취득한 땅이 수도원 건립을 위한 것이 아니면 십일조를 납부해야 한다(55조). 수도원장은 결혼 소송 사건을 판결하거나 공적 참회를 부과할 수 없으며, 부여된 특권에 따르지 않으면 주교의 권한에 속하는 대사(大赦)를 베풀 수 없다. 각 수도원에서는 수도원의 장상이 정식으로 위임한 경우가 아니면, 수도자 개인이 동의한 보증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도 책임질 수 없다.
② 성사 : 주교들은 사제직을 지망하는 자들에게 성사 집행에 최선을 다하도록 가르쳐야만 한다. 따라서 교구장은 '품행이 좋지 않은 여러 명의 사제보다는 비록 소수라도 훌륭한 목자가 될 수 있는 자' 를 양성해야 한다(27조). 성체는 성유와 함께 신성 모독죄를 방지하기 위해 안전한 곳에 보존해야 한다. 부활 대축일 미사의 영성체는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20조). 고해 신부는 고해자의 비밀을 지키고, 사려 깊게 행동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은 죄가 발병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의사는 먼저 영혼의 의사에게 가도록 권고해야 할 것이다(21-22조). 주교는 적합하고 능력 있는 인물이 아니면 규칙에 어긋나지 않게 서품하지 말아야 한다(26조). 혼인에 있어서 서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혈족간의 결혼은 금지하였다(50-52조).
③ 교회 재산 : 사목 직무와 관련된 교회록의 겸임을 금지하며(29조), 교회록의 상속을 금지하였다(31조). 교회의 평신도 소유주와 사제와의 재정 관계, 십일조의 관리 및 이용(32-34조). 교회 재산의 보호에 관한 규정(41 · 44 45 · 61조). 성인의 유해는 정해진 보관소에서만 현시되어야 하며, 새로운 유해 현시는 교황청의 승인을 받은 후에만 가능하다. 또 유해를 매매의 대상으로 삼아서도 안되며 대사의 남용도 엄금하였다(62조). 교황이나 주교의 위임장에 따라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자선 모금을 할 수 있으며, 자선 모금이라 하더라도 절제 있게해야 한다(62조).
④ 수도회 : 모든 나라와 관구에 있는 각 수도회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정기 총회를 개최하여 장상을 선출하고, 수도회를 보다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개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12조). 수도원 원장은 금전 거래를 통해 주교직을 받을 수 없다(60조) .
⑤ 소송 : 공평무사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처리하여 범법 행위를 근절시키도록 하며, 이단 심문의 경우에는 신중하게처리하도록 규정하였다(40 · 42 ·48조).
⑥ 형법 : 그리스도교에서는 원칙적으로 일체의 고리대금 행위를 배척한다. 특히 유대인들과는 더욱더 고리대금 거래를 하지 말아야 한다(68조). 유대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인들과 구별되는 복장을 하도록 하고, 성주간 동안에는 외출을 삼가도록 해야 한다(69조). 그리고 유대인은 그리스도인 위에 군림하는 공직을 맡을 수 없고(69조),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유대인은 그들의 관례를 포기해야 한다(70조).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은 이미 파리 교회 회의(1213)와 루앙(Rouen) 교회 회의(1214) 등 여러 지역에서 열린 교회 회의에서 논의되었던 것들이다. 그러나 그 내용들이 기존 교회 회의에서 결의된 사항들의 반복이라고 하더라도 트리엔트 공의회 이전에 교회 회의 규정들을 성문화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교의, 윤리, 규정, 교회 조직 등 전통적인 원리가 균형 있게 당시의 상황에 적응한 것이다.
V 제5차 라테란 공의회
교황 율리오 2세(1503~1513)가 1512년 5월 10일에 소집하여 1517년 3월 16일까지 두 교황에 걸쳐 개최된 제18차 세계 공의회. 최초 회기에는 70여 명의 주교 및 대주교, 몇몇 대수도원장과 제후의 사절들이 참석하였다. 비록 율리오 2세 대신에 다른 추기경이 개회사를 낭독하였지만 공의회는 무사히 진행되어 나갔다. 첫 번째 공의회는 교황 율리오 2세의 재임기 중 다섯 회기(1512.5. 10~1513. 2. 16) 동안 진행되었으며, 두 번째 회기는 프랑스의 루이 12세에 의해 소집되어 공의회 우위설이 우세했던 피사(Pisa) 교회 회의의 결정들을 무효화하였다. 기타 다른 회기 동안에는 주로 이교적인 추기경들의 모의와 성직 매매의 혐의가 있는 교황 선거등을 단죄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다.
교황 율리오 2세가 서거하자 공의회는 그 후임 교황 레오 10세(1513~1521)에 의해 속개되어 총 일곱 회기에 걸쳐 진행되었다(1513. 4. 27~1517. 3. 16). 이 회기 동안에는 구체적인 개혁 방안이 모색되었으며, 그와 함께 피사 교회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들의처리와 교리 문제, 교황권과 프랑크 왕국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공의회의 결정에 주목하면서 개혁에 관한 교령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교황청에서 발표된 교령의 내용은 매우 축소된 것으로서 주교의 임명, 추기경회의 역할과 임명 절차, 추기경들의 사치스럽고 무절제한 생활을 제재하는 등에 관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저주, 마법, 미신 등을 억제하면서 그리스도교적인 정신에 따라 생활해야 하는 신자로서의 의무를 새롭게 부과하며,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을 개혁하려고 하였지만 제대로이행되지 않았다.
또한 이 공의회에서는 성대 서원을 한 수도자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 즉 주교들은 수도자들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자유를 제한하였던 것이다. 많은 주교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멸시하고 주교에게만 유보되어 있는 중죄(重罪)를 사면하고 주교의 뜻을 거스려 성사를 집행하려는 성대 서원 수도자들을 비난하였다. 따라서 이 공의회의 11회기에서는 주교 및고위 성직자, 장상들에 대해 비판하며 '불행한 미래나 적 그리스도의 도래, 또는 심판의 날' 에 대해 설교하던 많은 설교 수도자들을 제재하였다. 그리고 어떤 성직자나 수도자도 일정한 자격 없이, 그리고 장상으로부터 심사받지 않았거나 심사자의 정식 서한과 함께 주교에게 추천되지 않았으면 설교할 수 없도록 결정하였다. 그 밖에 교회 안에서 발간되는 모든 인쇄물의 경우에도 교회로부터인가를 받은 것만 인정하였다. 왜냐하면 교회의 인쇄물들이 가르침을 정확하고 널리 전파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매체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지만, 그 반대로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례력의 개혁을 시도하였지만 의견이 너무 다양하고 또 상반되는 의견이 많아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프랑스와 맺은 정교 조약의 승인은 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이교의 문제를 적절한 시기에 종결시킬 수 있었다. 그 밖에 또 다른 중요한 사실로서, 교회록의 축재와 일시적으로 교회록을 제약하는 문제 등 교황청과 교회의 개혁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개혁을 열망하는 일부 교구를 제외하고는 이해 당사자들의 이기적인 반발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만일 그러한 개혁이 제대로 실행되었다면 교회 쇄신에 많은 결실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며,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도 다른 방향으로 종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공의회의 개최는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에 앞서 이루어진, 교회 안에서의 개혁에 대한 교황측의 마지막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이 공의회에서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개혁을 추구하였으며, 교황청의 추기경 위원회에서도 당시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시정하려는 논의를 하였다. 그러나 비록 개혁의 취지가 훌륭하였다고 하더라도 실제적으로는 개인적인 이해 관계 때문에 실행되지못하였다. 또한 교황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시정하려는 교서를 발표하였지만 명백하게 드러난 사건의 경우에만 시정되었을 뿐이다.
결국 제5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교회법이나 교령이 선포되지 않았지만 교황의 권위로 교황 헌법이 공포되었다. 그러나 개혁의 중요한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하였으며, 그 때문에 교회는 곧 이어서 프로테스탄티즘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 공의회 ;교황 선거 ; 성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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