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교부

敎父

〔라〕Patres Latini · 〔영〕Latin Fa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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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을 분류할 때, 해당 교부가 저술에 사용한 언어에 따라 그리스어를 사용하였으면 그리그리스 교부' (patres graeci), 라틴어를 사용했으면 '라틴 교부' (patres latini)라 부른다. 이런 언어적인 구분은 해당 지역과 꼭 일치하지 않는데, 2세기까지 교회 안에서 저술된 문헌은 지역에 관계없이 모두 그리스어였다. 1세기 말에 《고린토 서간》을 쓴 글레멘스 1세 교황도 그리스 교부로 분류된다. 그러나 3세기 중엽부터는 서방 교회 교부들이 주로 라틴어로 저술하고, 동방 교회 교부들은 그리스어로 저술했기 때문에 지역과 언어 사용 사이에 일치를 이루게 되었다.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한 아프리카 교회에서는 2세기 말의 테르툴리아노로부터 시작되는 반면, 로마 교회에서는 이보다 훨씬 늦은 250년경에 가서야 노바시아누스로부터 시작되었다. 라틴어의 사용과 함께 라틴 신학이 싹트기 시작하였으며, 4세기에는 로마 제국 자체가 정치적으로 둘로 나뉘어져 서로마 제국 안에서는 라틴어가 사용되고 동로마 제국 안에서는 그리스어가 사용되었다. 라틴어는 어휘나 의미에 있어 그리스어에 비해 빈약하였으며, 그리스어는 교회 안에서 이미 200여 년에 걸쳐 교회 전례와 신학의 용어로 다듬어져 있었기 때문에 라틴 교부들은 그리스 용어들을 표기만 바꾸어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예를 들면 angelos를 angelus로, baptismos를baptisma로). 그렇지만 라틴 교부들은 라틴어에 맞는 새로운 교회 용어들을 개발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테르툴리아노는 이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로써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의 구별이 점차 생기게 되었는데, 이 구별에는 이미 지리적 · 문화적 · 신학적 차이가 내포되어 있다. 서방 교회에서는 교회론과 성사론과 은총론이 발전되었던 반면, 동방 교회에서는 성삼론과 그리스도론이 크게 발전하였다. 서방 교회는 유일한 로마 총대주교좌의 영향 아래 모두 통합되어 있었던 반면, 동방 교회는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좌를 중심으로 한 시리아, 팔레스티나 지역,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좌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프리카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 후 4세기 후반부터는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교회가 총대주교좌로 승격됨으로써 과거에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좌의 영향권에 있던 인근 지역에 새로운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동방 교회 안의 이러한 구별은 당시 교회들이 서로 분리되어 교회 체제상 분열되어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 교부 ; 교부학)
〔李瀅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