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아르날도. 한국 이름은 나형묵(羅亨默). 1860년 11월 4일 프랑스의 바스크(Basque) 지방과 랑드(Landes) 지방의 경계인 우르퀴(Urcuit)에서 태어났다. 1883년 2월 19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886년 9월 26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해 12월 1일 한국을 향해 출발하여 이듬해 1월 서울에 도착한 그는, 임시로 블랑(J. Blanc, 白圭三) 주교의 주교관에서 얼마 동안 지내다가 전라도 지방에 파견되었다.
1887년 5월 전라도 고산(高山) 지역에 부임한 라푸르카드 신부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동료인 두세(Doucet, 丁加爾) 신부를 도와 사목하다가 그 해 가을부터는 독자적으로 한 구역을 맡아 사목을 책임지게 되었다. 한 해 동안 34개의 공소를 방문하여 1,770명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성인 52명에게 세례성사를 베풀어 주는 등 매우 적극적인 전교 활동을 펴나갔다. 그러나 공소 순방 중에 험한 산길을 찾아 헤매거나 불편한 잠자리,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힘든 사정으로 본래 강인한 성격에 건장한 체구의 소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차츰 건강을 해치게 되었다. 결국 부임한 지 1년이 채 못 되어 병으로 눕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장티푸스까지 겹쳐 더욱 심한 고생을 하였다. 고산 빼재(秀峙)에서 혼자 임종을 준비하고 있던 중, 1888년 7월 10일 우연히 이곳을 방문한 베르모렐(Vermorel, 張若瑟) 신부로부터 병자성사를 받았다. 라푸르카드 신부는 한국에 온 지 겨우 1년 반 만인 7월 11일, 2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묘는 현재 고산 성당 사제관 뒷산에 있다.
(→ 전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부록, 가톨릭출판사, 1984/ 호남교회사연구소, 《전주교구사 연표》, 빅벨출판사, 1993. 〔李裕林〕
라푸르카드, 아르노 (1860~1888)
〔프〕RLafourcade, Arna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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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되재 본당 뒷산에 안장된 라푸르카드 신부의 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