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호교론자. 250년경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수사학의 대가인 아르노비우스(Amobius) 의 제자였다는 주장이 강하다. 또한 뛰어난 수사학자로서 디오클레시아누스(Diocletianus, 284~305) 황제에 의해 니코메디아(Nicomediaia, 지금의 터키 Izmit)에 초청되었는데 황제는 이 도시를 제국의 수도로 삼고, 문학적인 면에서나 도시 장식에 있어서 로마보다 우월한 도시로 만들고자 하였다. 락탄시오가 니코메디아로 오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인이었는지, 아니면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초인간적 신앙을 보고 개종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303년의 박해 이후 305~306년경 니코메디아를 떠나 방황하면서 궁핍한 생활을 한 락탄시오는, 311년 갈레리우스(Galerius, 306~311)의 관용 조치가 내려지자 니코메디아로 돌아와 정착하였으며, 말년에는 콘스탄틴의 아들 크리스푸스(Cispus)의 궁정 교사로 317년경부터 트리어(Trier)에 머물렀다. 사망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의 작품을 통해 321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일설에는 크리스푸스가 살해되기 전, 즉 제1차 니체아 공의회가 열리던 325년에 사망하였다고도 한다.
〔작 품〕 '그리스도교의 치체로' (Cicero Christianus)로 불릴 만큼 수사학에서 뛰어났으며, 그리스도교가 명문장(名文章)으로 표현되어야 큰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신학 사상은 빈약하였지만 뛰어난 문장력으로 선대 학자들의 사상을 자유자재로 이용하여 그리스도교 교리를 설명하였다. 사상적으로 치체로(기원전 106~43), 베르질리우스(vergilius), , 《시빌라의 신탁》, 《헤르마스 전집》(Corpus Hermeticum)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다음과 같은 주요 논저들이 전해진다.
《신의 피조물》(De opificio Dei) : 그리스도교 인간학으로서 치체로의 《공화국》(De repulica)을 보충한 것으로도 생각된다. 박해 이후 쓰여졌으므로 그리스도교 사상은 거의 들어 있지 않다. 아르노비우스는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생각했지만, 락탄시오는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아름답고 조화로운 존재라면서 인간을 예찬하였다.
《신의 훈시》(Divinae institutiones) : 304~313년에 7권으로 저술되었으며 라틴어로 그리스도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기술한 첫 시도이다. 1권 《거짓 종교》(De falsa religione)와 2권 《오류의 기원》(De origine erroris)에서 다신(多神) 사상은 타락한 천사나 악마로부터 나온 것이며, 유일신 사상만이 참되다고 주장하였다. 3권 《철학자들의 거짓 지혜》(De falsa sapientia)에서 철학 사상이 오류의 두번째 원인임을 지적하고, 4권 《참된 지혜, 참된 종교》(De vera sapientia et religione)에서 지혜와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밝혔다. 5권 《정의》(De iustitia)에서는 이방 사회에서 정의가 사라졌음을 한탄하고 참된 하느님을 인식함으로써 정의를 다시 세울 수 있다고 하였다. 또 6권 《참된 종교》(De vera religione)에서는 같은 주제가 반복되면서 하느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방법에 대하여 말하고있는데, 5권과 6권은 이 작품의 핵심 부분으로 문장과 문체 내용에 있어 절정을 이룬다. 7권 《복된 삶》(De vita beata)은 천년 왕국설의 주장이 있는 종말론적 요소가 담긴 글로 그의 이원론 사상이 들어 있으며, 314년에 이 《신의 훈시》를 수정 · 보완하여 《요점》(Epitome)을 다시내놓았다.
《하느님의 분노》(De ira Dei) : 하느님은 사랑도, 분노도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르스 학파의 가르침을 반박하며, 하느님은 선을 사랑하는 동시에 악에 대해서는 분노한다고 말하였다.
《박해자들의 최후》(De mortibus persecutorum) : 디오클레시아누스 이후의 박해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하여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잘 전해 준다. 그리스도교를 반대하던 황제들의 비참한 죽음을 열거하고 있다. 이 밖에도 불사조에 관한 신화적 요소를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따라 우아한 이행시로 종합한 <불사조>(De ave Phoenice)가 있으며, 《영혼의 움직임에 대하여》(De motibus animi), 《향연》(Symposion), 《문법 학자》(Grammaticus) 등이 있다.
〔신학 사상〕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제시하기보다는 이교 사상을 반박하는 데 주력한 락탄시오는, 순교 ·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 겸손과 정열 등의 덕행을 찬양하며,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하느님 은총을 주장하지만, 종교보다는 윤리적 차원에 머물고 있다. 모든 문제를 하느님의 섭리에 귀결시키고, 하느님과 사탄 사이의 적대 관계가 창조 때부터 시작된다는 이원론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성부, 성자의 관계만을 언급하고 성령에 대한 언급은 일체 하지 않았다. 영혼 불멸성을 주장한 그는, 반그리스도교적 악의 세력이 멸망하면 하느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천년 왕국이 도래한다고 보았다. (→ 호교가 ; 교부)
※ 참고문헌 함세웅, <락탄시오>, 《사목》 99호(1985. 5), pp. 52~60/J. Martin, 《LTnK》 6, pp. 726~728. 〔姜永玉〕
락탄시오, 루치우스 체칠리우스 피르미아누스 (250? ~321?)
〔그〕Lactantius, Lucius Caecilius Firmianus
글자 크기
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