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 수도회 신부. 원산교구 선교사. 세례명은 곤라도. 한국 성은 박(朴). 1896년 1월 7일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 대교구의 엘자흐에서 태어나 1920년 10월 7일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서원한 후, 1925년 7월 19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곧바로 선교사로 임명되어 한국에 입국한 랍 신부는 같은 해 9월 27일, 서울의 베네딕도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이미 1909년에 교육을 목적으로 한국에 진출한 베네딕도 수도회는 서울의 백동(柏洞, 현 혜화동)에 수도원을 설립하고, 초기부터 매우 활발하게 포교 사업을 전개하였다. 1910년에는 수도원 부근에 숭공(崇工)학교를 세워 건전한 직업인의 양성을 위한 실업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1911년에는 숭신(崇信)학교를 세워 사범 교육을 실시했다. 또한 1921년에 원산교구를 맡게 되자, 1927년 말경 수도원을 덕원(德源)으로 이전하고 신학교도 설립하였다.
랍 신부 역시 베네딕도 수도회의 포교 원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매우 적극적으로 전교하였다. 처음에 그는 연길(延吉) 본당의 보좌 신부로 부임하였으며, 1927년 5월부터는 당시 팔도구(八道溝) 본당의 관할 공소였던 대령동(大嶺洞) 공소를 임시로 맡아 사목하였다. 이듬해에 대령동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자 정식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10여 개의 공소를 관할하였다. 부임 초기부터 매우 의욕적으로 활동한 랍 신부는 재임 중에 신자들과 함께 성당 · 사제관 · 사무실 등을 건립하였으며, 청년회와 소년회 같은 단체를 조직하였다. 뿐만 아니라 교육 사업에도 적극적이어서 해성(海星)학교를 계속 발전시켜 나갔음은 물론, 야학도 활발하게 운영하였다. 또 회장 및 청년층의 심신 함양을 위한 묵상회를 자주 개최하였다.
1930년에 대령동 본당 관할의 명월구(明月溝)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는 데에 많은 공헌을 한 랍 신부는, 이듬해 용정 상시(龍井上市) 본당으로 전임되었으나, 한국에 입국한 지 7년이 채 못 된 1932년 6월 5일에 만주의 두도구(頭道溝) 근방에서 피살되어 연길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 연길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死亡者 名簿(1910~1989년)》, 성 베네딕도회 왜관성 마오로 플라치도 수도원, 1990/ 한국교회사연구소편, 《함경도 천주교회사》,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5. 〔李裕林〕
랍, 콘라트 (1896~1932)
〔독〕Rapp, Kon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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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