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1575년 11월 4일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음악가인 아버지는 레니에게도 열성적으로 음악을 가르치려 하였으나 레니는 미술에 더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584년경 칼베르트(D. Calvaert)의 공방(工房)에 도제(徒弟)로 들어간 레니는, 20세 때 카라치(Carraccis)형제 밑에 들어가 그의 영향을 받으면서 라파엘로의 작품 중 <성 체칠리아의 황홀>(Ecstasy of St. Cecilia)의 부분과 전체를 모사하기도 했다. 레니가 볼로냐에 있는 성당들의 제단화를 의뢰 받아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1595~1598년 사이였다. 1598년 교황 글레멘스 8세가 볼로냐에 재위하고 있음을 기념하기 위한 비를 제작하였으며, 이듬해 12월에는 볼로냐에 있는 화가 조합에 선임되어 가입하였고, 그 이후로는 볼로냐와 로마를 왕래하면서 활동하였다.
1602년에 레니가 처음 로마에 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1600년경에 갔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1603년에 있었던 아고스티노 카라치(Agostino Carracci) 의 추도식을 위해 볼로냐로 돌아왔던 것 같고, 1607년에는 다시 로마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608년 보르게제(Scipione Borghese) 추기경을 통해 교황 바오로 5세에게 소개된 레니는, 교황의 의뢰를 받아 바티칸 궁전에 삼손의 생애를 담은 세 작품을 포함한 프레스코화를 제작하였으며, 1608~1609년에는 보르게제 추기경을 위해 성안드레아 성당 프레스코화를 제작하였다. 또한 1610년에는 바오로 5세 교황으로부터 다시 의뢰를 받아 퀴리날레 궁(Palazzo del Quirinale)의 성모 영보 경당(Cappella del' Annunciata)의 프레스코화를 제작하였으며, 1613~1614년에는 보르게제 추기경 별장 천장에 그 유명한 프레스코화 <오로라>(Aurora)를 제작하였다. 이 작품을 완성한 후 곧 볼로냐로 돌아온 레니가 만투아(Mantua)에 있는 곤자가(Gonzaga) 궁과 연계되어 일을 시작한 것은 1617년부터이며, 그 후부터 1621년까지 만투아 공작을 위해 헤르쿨레스(Hercules)를 주제로 한 연작을 제작하였다. 1620년에는 라벤나에 있는 대성당에서 작업을 하였고, 1627년과 1632년에는 잠시 로마에 체류하였지만, 레니는 수많은 의뢰를 받아 작업하면서 여생을 볼로냐에서 보내다가 1642년 8월 18일 사망하였다.
레니의 작품은 그의 생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매우 호평을 받았다. 19세기에 이르러 러스킨(Ruskin)의 비판적인 공격을 받기도 하였으나, 현대의 학자들이 그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것들 중에서 빈약한 모작이나 변형된 작품들을 제외시킴으로써 레니의 명성은 재확인되었으며, 특히 그의 후기 작품에서 보이는 엷은 색조의 작품들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레니는 예술과 예술가의 위치에 대해 고매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지고 고전적인 주제들을 시적으로 작업하는 데 몰두하였던 것은 그가 르네상스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이다.
※ 참고문헌 Encyclopedia ofWorldArt, pp. 161~162/ H.W. Janson,A Basic History ofArt, New York, Harry N. Abrams, 1971(이일 편역, 《서양미술사》, 미진사, 1987)/ 一, History ofArt, New York, Harry N.Abrams, 2nd ed., 1977(김윤수 외 역, 《미술의 역사》, 삼성출판사, 1987)/ 《세계 미술 대사전 : 서양 미술사》 Ⅰ, 한국미술연감사, 1985. 〔鄭泳沐〕
레니, 귀도 (1575~1642)
〔라〕Reni, Gu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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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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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00여 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왕실 보석 왕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