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르나움

〔라 · 영〕Capharnaum · 〔그〕Kαφαρναού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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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르나움의 회당과 벽을 따라 길게 놓인 돌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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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르나움의 회당과 벽을 따라 길게 놓인 돌의자.

신약성서 복음에서 나오는 지명. 요르단 강 입구에서 서쪽 4km쯤 떨어진, 갈릴래아 호수 북서쪽 해안에 위치한 포구. 가파르나움은 다마스커스에서 갈릴래아로, 또 남쪽 예루살렘으로 가는 큰길 가에 있었으므로 로마 군대의 요충지였고, 세관이 있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갈릴래아 활동에 대해 보도할 때 이곳을 자주 언급한다. 그러나 구약성서나 그리스도교 이전 문헌에서는 이곳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가파르나움이라는 명칭은 '경계 지역' '제한 구역' 이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케파르 테쿠민' 에서 나왔다는 설과 '나훔의 마을' 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케파르 나훔'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는데, 대체로 후자가 신빙성이 있다. 후자의 경우 대체로 예언자 나훔의 고향이었던 '엘코스 가 이곳의 원래 지명이었으나 존경받던 그로 인해 '케파르 나훔' (나훔의 마을)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한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경우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베다니아가 예수로부터 사랑 받았던 라자로(요한 11장)로 인해 '엘 아자리에' (아랍어) 또는 '라자리움' (라틴어)이라고 지명이 바뀌었듯이 엘코스도 케파르 나훔으로 바뀌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서의 예언자 나훔과 이 지역이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5~16세기경 이곳은 '탄훔' (Tanhum)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유대인들로부터 존경받던 랍비 탄훔의 묘가 있었기 때문이다. 탄훔이 아랍 유목민들 사이에서 탈홈(Talhum)으로 변음된 것 같다.
〔복음서 안에서의 가파르나움〕 마태오 복음에 의하면 가파르나움은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 호수가" (4, 13)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관에서 일하던 알패오의 아들 레위(또는 마태오)가 이곳에서 예수를 만나 제자가 되었다(마르 2, 13-14 ; 마태 9, 9 : 루가 5, 27-28) 당시 여기에는 세관이 있었다. 또한 가파르나움에는 어느 백인대장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마태 8, 5 : 루가 7, 1-2).
가파르나움은 활동 초기부터 많은 기적을 행한 곳이기 때문에 '예수의 도시' (마태 9, 1) 또는 '예수의 집이 있는 곳 (마르 2, 1)이라고도 불리었다. 나자렛을 예수의 고향이라고 한다면 가파르나움은 예수의 활동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마태오는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이사 8, 23-9, 1)이 가파르나움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4, 12-16). 예수가 첫 제자들인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을 택한 것도 가파르나움이다. 또한 이곳은 예수께서 기적을 많이 행하신 곳이다. 열병을 앓던 베드로의 장모(마태 8, 14-17 ; 마르 1, 29-34 ; 루가 4, 38-41), 마귀 들린 자(마르 1, 21-28 : 루가 4, 31-37), 네 사람에게 들려 온 중풍 병자(마태 9, 1-8 : 마르 2, 1-12 : 루가 5, 17-26), 백인대장의 종(마태 8, 5-13 ; 루가 7, 1- 10 ; 요한 4, 43-54) 등을 여기서 고쳐 주셨고, 죽었던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키셨다(마태 9, 23-26 ; 마르 5, 35-43 ; 루가 8, 49-56). 율법학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권위 있는 가르침을 행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마르 1, 21-22. 27 ; 루가 4, 31-31. 36),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한 후 설교를 한 곳도 가파르나움 회당이다(요한 6, 24-71). 그러나 예수의 놀라운 기적과 설교에도 불구하고 당시 가파르나움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파르나움을 향해 예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 가파르나움아, 하늘에라도 오를 성싶으냐?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사실 네 가운데서 행한 기적들을 소돔에서 행했더라면 그는 오늘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다"(마태 11, 23).
〔고고학적인 발견〕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예수 시대의 가파르나움은 갈릴래아 호수에 인접한 중요한 상업 도시로서 그 길이가 약 1km에 달했고, 규모도 매우 컸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 : 117~138) 치세 때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부터 가파르나움으로 이주해 옴으로써 더욱 번창하였다. 몇 차례의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베드로의 집터와 예수 시대의 회당이 위치했던 곳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오늘날도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있는 회당은 예수 시대부터 있던 회당을 증축했다가 4세기경 그것을 부수고 흰 석회석으로 웅장하게 새로 지은 것이다. 그 이전의 건물은 현무암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조각 나서 흩어져 있던 건축 자재들을 모아 원래 형태로 복구해 놓았는데, 원래는 대단히 웅장했으리라 추측된다. 이 회당에서 30m 가량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중요한 유적지가 있는데, 바로 예수가 자주 묵었던 베드로의 집터이다(마르 1, 29-30 ; 2, 1 ; 3, 20-21 ; 요한 2, 12). 1921~1926년과 1968~1984년 발굴 결과 5세기에 지은 팔각정 성당 한가운데서 가정집과 흡사한 2세기 경당의 흔적을 찾아냈다. 이 경당에서 그리스어로 쓰여진 '베드로' 라는 팻말과 어선의 그림을 발견함으로써 본래 베드로의 집터였다는 확신이 굳어졌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의 집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배웠을 것이다. 5세기에 베드로의 집을 팔각형으로 된 거대한 경당으로 개축하였으며, 그곳은 갈릴래아 지방 그리스도인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614년 페르시아군의 침입으로 경당은 폐허가 되었다. 그 후 1,200여 년 동안 인적이 끊긴 폐허로 방치되었다가 1894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이곳에 관심을 갖고 지금의 부지를 매입하였다.
※ 참고문헌  정양모 . 이영헌, 《이스라엘 성지, 어제와 오늘》 생활성서사, 1989, pp. 149~152/ V. Corbo, The House of Saint Peter at Capharnaum, Jerusalem, Custodia Terra Sancta, 1969/ S. Loffreda, Capharnaum. The Town ofJesus, Jerusalem, Custodia Terra Sancta, 1984/ S. Loffreda, Recovering Caphamaum, Jerusalem, Custodia Terra Sancta, 1985/ S. Loffreda, The Synagogue of Capharnaum. Archeological evidence for its late Chronology, 《IEJ》23, 1973, pp. 37~42. 〔朴炅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