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랭스의 주교. '프랑크 민족의 사도' . 축일은 10월 1일. 437년에 프랑스의 세르네(Cernay) 또는 라옹(Laon)에서 영향력 있는 갈리아-로마 가문 출신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성녀 칠리니아(Cilinia)이며, 동생은 성 프린치피오(Principius)이고, 아버지는 라옹의 에밀리오(Aemilius) 백작이었다. 랭스에서 교육을 받은 레미지오는 학식이 뛰어나고 성덕이 높았기에 22세에 랭스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100세 가까이 살았던 그의 생애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이교도인 프랑크 국왕 클로비스(Clovis)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킨 것이다. 클로비스 왕은 갈리아 지방으로 영토를 확대하던 중 알라마니(Alamanni)족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는데, 그의 아내 클로틸다(Clotide)가 믿는 하느님이 그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다면 자기도 그 하느님을 믿겠다고 서약하였다. 마침내 그는 496년 톨비악(Tolbiac)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498/499년 성탄절에 레미지오 주교로부터 세례성사를 받았다. 이후 서방 교회 역사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되었다.
레미지오는 탁월한 행정가이며 선교사였다. 교황의 허가를 받아서 투르내(Tournai), 캉브래(Cambrai) , 테루안느(Therouanne), 아라스(Arras) 라옹(Laon)에 교구를 세웠고 클로비스 왕에게 탄원하여 스와쏭(Soisson) 교회에서 탈취한 성작(聖爵)을 돌려주게 하였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잘 보여 준다. 그는 네 통의 <서한들>(Letters, PL 65 : 963~970)과 <서약>(Testament, PL 65 : 970~976)의 저자로 알려져 있으며, 533년 1월 13일 랭스에서 사망하기 바로 전에 쓰여진 〈전기〉(Vita)는 현존하지 않고 있다. 4통의 서한들 중에서 2통은 클로비스에게 보낸 것이며, 세 번째는 클라우디오(Claudius)라는 사제의 공격에 대해서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고, 네 번째는 통그르(Tongre)의 주교에게 보낸 것이다. 클로비스의 개종에 대한 이야기는 투르의 그레고리오가 쓴 《프랑크 역사》(Historia Francorum)에 나와 있고, 랭스의 힌크마르(Hincmar)와 베난시우스 포르투나투스(Venantius Fortunatus)가 레미지오 성인의 전기를 기록하였다. 교황 레오 9세는 1049년 성인의 유품들을 생 르미(Saint-Remi) 대수도원으로 옮겼다. 탁월한 행정가이며 선교사인 레미지오 성인은 바오로 사도가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를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2고린 4, 5)라고 고백한 것처럼 복음을 선포하는 데 자신을 온전히 헌신한 그리스도의 착실한 종의 삶을 보여 주었다.
※ 참고문헌 김정진 역, 《가톨릭 성인전》 상, 가톨릭출판사, 1987/최정오 편,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출판사, 1987/ W.C. Korfmacher, 《NCE》 12, pp. 341~342. 〔宋炯萬〕
레미지오, 랭스의 (437?~533?)
Remigius, Rei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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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프랑크 국왕 클로비스에게 세례를 베푸는 레미지오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