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경 비잔틴의 수사이며 논쟁 신학자.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레온시오는 오리제네스주의자인 팔레스티나의 수도자 레온시오와 동일한 인물인 반면, 성부 수난설 논쟁으로 유명한 스키티아 출신의 수도자 레온시오와는 동일 인물이 아님이 증명되었다. 하지만 그가 《네스토리우스파 반박》과 《단성설파 반박》의 저자인 예루살렘의 레온시오와 동일 인물인가에 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상이하다. 그의 생애에 관한 중요한 자료로는 스키토폴리스의 치릴로가 쓴 《사바스의 생애》가 있다. 레온시오는 비잔틴 출신으로 그 자신이 진술하듯이(CNE3, 서론) 청년 시절에 안티오키아 학파 지지자들, 아마도 네스토리우스파 사람들과 교류하였으나, 거의 확실히 오리제네스 주의자로 간주되는 "슬기롭고 경건한 사람들"에 의해 정통 신앙으로 돌아섰다.
레온시오는 520년 오리제네스주의자인 수도자 논누스(Nonnus)를 테코아(Tekoa) 근처에 위치한 수도원까지 동행하기 위하여 팔레스티나로 갔으며, 531년에는 팔레스티나 수도원 원장인 사바스(Sabas)를 동반하여 콘스탄티노플로 파견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단성설파와의 토론에서 오리제네스주의의 신념을 드러내어 사바스의 비난을 받았다. 이 일로 인하여 사바스와 함께 팔레스티나로 돌아가지 못하고 콘스탄티노플에 남게 되었지만, 단성설파들과의 논쟁으로 그는 칼체돈 공의회(451)의 새로운 옹호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같은 해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단성설파들과의 유화 정책을 바꾸어 532년 단성설파 주교들과 모달리즘(modalismus)파 주교들, 즉 반칼체돈주의자들과 칼체돈주의자들 간의 토론을 개최하였다. 레온시오는 이 토론에 에우세비오와 함께 참석하여 단성설파뿐만 아니라 신(新)갈체돈주의자와도 논쟁을 벌여 상당한 명성을 떨쳤으며, 에우세비오의 도움으로 콘스탄티노플에서 오리제네스-칼체돈주의자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536년 3월부터 6월까지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수도에서 단성설파를 추방하기 위하여 주교 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팔레스티나에 있던 오리제네스주의자 수도자들이 대거 주교 회의의 입회인으로 참석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레온시오와 에우세비오의 영향력으로 540년경 주교로 서품되어 오리제네스주의자의 이익과 논거를 활동적으로 대변한 아스키아의 테오도로(Theodorus Askiae)와 도메시아노(Dometianus)도 있었다. 레온시오는 537~540년 사이에 팔레스티나에 머물렀으며, 이곳에서 오리제네스주의의 주도권을 위한 노력에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오리제네스주의의 세력 확장은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 에프라임의 반발을 초래하여, 오리제네스주의는 543년 2월 유스티아누스의 반(反)오리제네스 칙령으로 단죄를 받기에 이르렀으며, 레온시오는 540년경 다시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간 것 같다. 팔레스티나에서 이 칙령이 공표된 후, 543년경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사망했다.
[저 서] 레온시오는 당시의 그리스도론 논쟁에 관한 주제와 관심사를 반영하는 서너 권의 논쟁서를 저술하였는데, 그 가운데 세 편의 논술을 레온시오 자신이 한 권으로 엮은 것이 그의 주저(主著)이다. 이 작품은 본래 표제가 없었으나, 일반적으로 첫 번째 논술의 표제, 즉 <네스토리우스파와 에우티케스파 논박>(Contra Nestorianos et Eutychianos) 또는 약어로 CNE라고 불린다. 그가 죽기 바로 전(540~543)에 출판되었음직한 이 작품에는 변증법적, 수사학적 기교를 통한 그의 통찰력과 교부들에 관한박학함을 드러내는 주옥 같은 증언이 실려 있다. 이 세편의 논술은 모두 상이한 주제와 동기로 쓰여졌다. 이 가운데 첫 번째 논술인 CNE 1이 가장 유명한 작품인데, 여기에서 그는 네스토리우스파와 에우티케스파가 그들의 상반된 견해에도 불구하고 두 견해 모두 그릇된 가정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제시하면서 칼체돈 공의회의 정식(定式)을 옹호하고 있다. 두 번째 논술 CNE 2는 〈아프타르토 가현설파와의 대화>(Dialogus contra Aphthartodocetas)로 그리스도의 육체가 육화의 순간부터 부패하지 않는다는 단성설자 할리카르나의 율리아누스(Julianus Halikarnae)의 주장을 논박하였으며, 세 번째 논술 CNE 3은 <네스토리우스파에 대한 비판과 승리>(Deprehencio et triumphus super Nestorianos)로, 레온시오는 안티오키아 학파의 대가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가 이단자 네스토리우스의 정신적 지주였음을 수많은 인용을 들어 증명하였다.
레온시오의 또 다른 작품은 CNE 1에 관한 단성설자의 비판에 대한 답변인 《세베루스가 제시한 주장에 대한 해명》(Solutio argumentorum a Severo abiectorum)과 쓰여진 연대를 추정할 수 없는 단편 《세베루스에 대한 30명제》(Capita triginta contra Severus)가 있다. 또 《아폴리나리우스의 오류에 대한 논박》(Adversus fraudes Apollinaristarum)도 필사본의 전승이 믿을 만하다면 그의 작품으로 간주될 수 있다.
〔신학적 견해〕 칼체돈 공의회의 정식을 정당화하는 레온시오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그리스도론의 밑받침이 되는 용어에 대한 개념 파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에게 있어 '본성' (φύσις)은 첫 번째 의미로 본질 또는 실체의 구성적 요소를 뜻하며, 두 번째 의미로 '종' (種, εἶδος)의 의미를 지니며, 보편적인 실재의 특성을 나타낸다(PG 86, 1280A). 또한 '실체' (οὐσία)는 모든 실체에 보편적인 것, 즉 사물의 실존을 뜻하며(제1 실체), 각 존재자의 고유한 본성을 뜻한다(제2 실체). 따라서 레온시오에게 있어서 본성과 실체는 동의어로 사용된다(PG86, 1273A, 1280A, 1309AB),
반면 '위격' (位格, ὑπόστασις)은 사물들의 일치와 차이에 있어 개체를 나타내며(PG86 1280A), '종' 안에서 개체, 즉 이것 또는 저것을 명시하며, 보편적인 것과 구별되는 '개체의 존재' (Eigensein)를 강조한다. 따라서 본성과 위격은 레온시오에게 있어 동의어가 아니다(PG 86, 1280A). 즉 본성은 본질적으로 같은 사물들에 대해 언급되며, '위격' 은 여러 본성으로 구성되나 동시에 서로 상대방의 존재에 하나의 '공유 존재' (Seinsgemeinschaf)를 지니는 사물들에 대해 사용된다. 또 전자는 자립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것을 의미하며, 후자는 완전한 것이 아니라 자립 실존하는 것을 의미한다(PG 86, 1945D).
그 밖에 레온시오는 히포스타시스(ὑπόστασις, 位格)와 내자존(內自存)을 뜻하는 엔히포스타시스(ἐνυπόστασις)를 구분한다. 히포스타시스는 개체와 관련되는 반면, 엔히포스타시스는 본질과 관련된다. 또한 전자는 고유한 특징으로 인해 위격을 명시하는 반면, 후자는 그 존재를 다른 사물 안에 지니나 그 자체로서 인지되지 않는 사물을 뜻한다(PG 86, 1277D). 내자존화(內自存化)된 사물은 상이한 본성을 지닌 다른 사물과 위격적으로 결합된 사물이며, 그 경우 그 특유의 본질을 잃지 않는다. 레온시오에게 있어서 내자존화된 본성-인성을 취한 로고스의 위격 안에 위격적 실존을 지니는 본성-은 그리스도의 인성뿐이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레온시오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일치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는지 검토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두 본성의 일치가 '본질적 일치' (ἕνωσις κατ' οὐσίαν) 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일치에 관해 그는 CNE 1과 4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일치되나 변화되지 않는 사물들의 일치와 일치될 때 본성이 변화되는 사물들의 일치 사이의 차이는 명백해진다··· 일치로 인해 상이한 것이 혼합되지 않으며, 차이를 통해 일치된 것이 분리되지 않는다... 일치와 차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많은 사물은 종(種)에 의해 일치되나 위격에 의해 구별되며, 다른 사물은 종에 의해 구별되나 위격에 의해 일치된다" (PG 86, 1301C~1304A). 레온시오가 이 서술에서 의도하는 바는 본질적 일치에 의한 양성적 해석으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사이에 속성의 교환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간 안에서 영혼-육체의 일치를 그리스도론에 적용시키며 다음과 같이 추론하였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신성의 실체를 공유하기 때문에 우리와 본질적으로 일치한다. 즉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우리 사이에 부분들을 통하여 중재한다(PG 86, 1289A). 인간론적 범례에서 인간은 영혼과 육체가 본질과 위격으로 동시에 결합된 삼자(tertium quid)이듯이, 그리스도론적 문맥에서 그리스도는 실체와 위격으로 결합된 삼자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인간은 본질적 일치와 동시에 위격적 일치로 결합된다.
※ 참고문헌 《PG》 86, pp. 1268~1396/ B.E. Daley, The Orgenism of Leontius of Byzantium,《JThS》 NS 27, 1976, pp. 333~369/ 一, Leontius of Byzantium : A Critical Edition ofHis Works with Prolegomena, Oxford Univ. Press, 1978/ D.B. Evans, Leontius of Byzantium. An Orgenist Chistology, Washington, 1970/ 一, Leontius von Byzanz, 《TRE》 21, pp.5~10/ P. Gray, The Defence of Chalcedon in the East, Leiden, 1979, pp. 451~553/ A. Grillmeier, Jesus der Christus im Glauben der Kirche II -2,Freiburg-Basel-Wien, 1989, pp. 190~241/ V. Grumel, Léonce de Byzanz, 《DThC》 9, 1926, pp. 400~426/ H. Stikelberger, Substanz und Akzidens bei Leontius von Byzanz, 《Thz》 36, 1980, pp. 153~161. 〔河聖秀〕
레온시오, 비잔틴의 (?~543?)
Leontius, Byzant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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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