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의식에 있어서의 죽은 이를 위한 미사(Missa pro defunctis) 또는 그 미사곡. 한국 천주교회의 옛 용어는 연미사, 공식 용어로는 '위령(慰靈) 미사' 이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부활에 대한 희망은 이미 구약 시대부터 있었으며, 그것은 곧 죽은 이들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2마카 12, 38-45).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의 신앙에서 비롯된 위령 미사의 전통은 매우 오래되었다. 전통적인 미사의 경우에 관습적으로 그 입당송의 라틴어 첫 단어를 미사의 별칭으로 불렀는데, 이 위령 미사 역시 입당송의 첫 단어가 '안식을' 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레퀴엠' 이었기 때문에 위령 미사를 레퀴엠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음악 용어로서의 '레퀴엠' 은 단지 위령 미사의 기도문에 곡을 붙인 것을 의미하는, 즉 '위령 미사곡' 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 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의 레퀴엠은 다음과 같이 9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① 입당송(Introitus) : 주여, 저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quiem aeternam), ②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Kyne), ③ 층계송(Graduale) : 주여, 저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④ 연송(Tractus) : 주여, 모든 신자들의 영혼을(Abosolve Domine), ⑤ 부속가(Sequentia) : 그 의노의 날이 오매(Dies irae), , ⑥ 봉헌송(Offertorium) : 영광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Domine Jesu Christe), ⑦ 거룩하시다(Sanctus), ⑧ 천주의 어린 양(Agnus Dei) , ⑨ 영성체송(Communio) : 주여 영원한 빛을(Lux aeterna) . 이러한 전례의 모든 양식들은 트리엔트 공의회와 교황 비오 5세가 인준한 1570년의 전례서의 규정에 따라 확정된 것이다.
기존 레퀴엠 가운데 대부분이 위와 같은 전례 양식에 따라 작곡되었다. 간혹 작곡자의 임의대로, 오늘날 고별식이라고 부르는 사도 예절(赦禱禮節, Absolutio super tumbam)의 시작 노래인 "주여, 나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하소서"(Libera me), 또는 마침 노래인 "천사들이여, 이 교우를 천상 낙원으로 인도하소서" (In Paradisum)를 덧붙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층계송은 응송으로, 연송은 알렐루야로 대치되었으며, 부속가와 봉헌송은 삭제되었다. 또 입당송과 영성체송은 그 내용이 다양해져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되었다.
〔변 천〕 일반적으로 레퀴엠은 세상을 떠난 모든 신자들의 영혼을 기억하는 위령의 날(11월 2일)과 장례 미사, 기일(忌日), 그리고 기타 위령 미사를 봉헌하는 경우에 성대하게 연주되었다. 본래 그레고리오 성가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다성부(多聲部)의 음악으로 변천 · 발달하였고, 다성부 음악 시대의 레퀴엠은 트리엔트 공의회와 더불어 1600년대를 기점으로 해서 각각 그 전 · 후의 음악으로 구분되었다.
1600년대 이전의 레퀴엠은 로마 전례의 전통을 따르는 곡들과 아닌 곡으로 구분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작곡가 대부분이 이탈리아 출신이었다. 그렇지 않고 작곡가가 외국인들인 경우에는 그 작품이 로마에서 발표된 것이었다. 이러한 곡들은 대체로 앞에서 말한 위령 미사의 9가지 전례 양식에 따라 작곡되었는데, 그중 어느 한두 양식의 곡이 빠지기도 하였다. 연송인 'Absolve Domine'가 있다는 것은 로마 전례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는 확실한 외적 표시인데, 보다 더 명백한 증거는 층계송과 부속가가 있다는 점이다. 이와 달리 비로마 전통의 곡들은 연송으로 'Sicut cervus' 를, 층계송으로 'Si ambulem' 을 대신 채택하였으며, 더욱이 부속가가 빠지고 봉헌송도 중간에 부분적으로 가사의 내용이 달라졌다. 이러한 비로마 전통의 위령 미사 형태는 사룸(Sarum) 전례(13세기부터 교회 분리기 사이에 영국에 퍼져 있던 전례 음악)와 관련이 있는것으로 보인다.
완벽한 다성부 음악의 형태를 띤 최초의 레퀴엠은 뒤페이(G. Dufay)의 작품이라고 인정되고 있다. 비록 오늘날 전해지지는 않지만, 이 곡이 자신의 장례식 때에 연주되기를 바란다는 뒤페이의 기록을 통해서 그의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작품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오케헴(J. Ockeghem)인데, 그 원본은 교황청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한편 드 라 뤼(Pierre de la Rue)의 작품을 비롯해서 그보다 조금 늦게 작곡된 많은 작품들은 모두 로마의 전통을 따르고 있지 않다.
1600년대 이후의 레퀴엠은 원칙적으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정된 전례 예식을 따라야만 했다. 음악적으로는 다른 미사곡들에서 그렇듯이 대규모의 합창단에 관현악단의 협주가 따르고, 대신 작곡의 기본 바탕이었던 그레고리오 선율과의 관계가 약해졌다. 대표적인 작품이 토스카나의 영주 코시모 2세(Cosimo Ⅱ )의 장례식을 위한 레퀴엠이다. 이 레퀴엠은 몬테베르디(C. Monteverdi),그릴로(Grillo), 우스퍼(Usper) 공동 작품으로서, 합창과 관현악의 합주 부분 및 관현악으로만 이루어진 간주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가운데 다시 오페라적인 기교를 한껏 구사한 새로운 양식의 작품들과 옛 전통적인 작곡기법의 작품들이 서로 확연하게 갈라지게 되었다.
많은 작곡가들이 한두 곡 정도의 레퀴엠을 작곡하였는데, 그중에서 샤르팡티에(M.A. Charpentier)가 작곡한 두 곡과, 18세기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캉프라(A.Campra), 질(Gille)과 같은 음악가들의 작품이 특히 유명하였다. 그리고 모차르트(W.A. Mozart)의 레퀴엠은 후기 바로크 음악과 전기 비엔나 고전파로 연결되는 작풍(作風)을 보여 주고 있고, 그 밖에 고섹(Gossec)의 레퀴엠은 낭만파 음악에 속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19세기의 레퀴엠들은 작곡의 목적에 대한 예속성이 매우 컸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목적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되고 있다. 첫째는 전례에 사용하기 위해 음악적인 표현 수단을 가급적 자제해서 작곡된 곡들이며, 둘째는 교회 예식이나 음악회에서 연주하기 위해 특별히 작곡된것으로서 규모가 큰 합창단과 관현악단이 함께 연주하는 곡들이다. 셋째는 전례와는 상관없이 순수하게 연주를 목적으로 작곡된 곡들이며, 넷째는 구성으로 보면 전례를 위해 작곡된 것이 아니지만 내적인 특성상 레퀴엠이라고 할 수 있는 곡들을 말한다.
이 네 가지 분류 중에 첫 번째 그룹에 속하는 대표적인 것은 체칠리아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이는 브루크너(A. Bruckner, 1845), 리스트(F. Liszt, 1868), 그리고 생상스(C. Saint-Saëns, 1878) 등의 작품들이다. 이러한 곡들은 모두 남성 합창단과 오르간 정도만 갖춰져 있는 소규모의 성당에서도 연주할 수 있도록 작곡되었다. 최근에 작곡된 뒤뤼플레(M. Duruflé)의 레퀴엠(1947)도 이 그룹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그룹, 즉 위령 미사 전례와 음악회에서 동시에 연주될 수 있는 것들로는 케루비니(L. Cherubini, 제2판, 1836) , 베를리오즈(L.H. Berlioz, 1837) , 베르디(G.F.F. Verdi, 1874), , 파우르(Faure, 1887) 등 의 작품들이 있다. 이 중에서 파우르를 제외한 나머지 작곡가들의 작품은 대규모의 합창단과 관현악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 이와 같은 곡들은 1903년 교황 비오 10세가 발표한 교서 <모투 프로프리오>(Motuproprio)의 결정에 따라, 교회 안에서는 연주할 수 없고 오직 일반 연주 홀에서만 가능하게 되었다. 세 번째 그룹, 즉 순수하게 음악회에서 연주하기 위해서 작곡된 작품은 거의 없다. 드보르자크(A. Dvǒrák)의 레퀴엠(1890)정도가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그룹에 속하는 작품들은 가톨릭은 물론 프로테스탄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곡들은 자주 특정 인물을 기억하면서 헌정되었지만 실제로 전례에서 연주되지는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쓴 라벨(M.J.Ravel)의 <쿠프랭의 무덤>(Tombeau de Couperin, 1917)과, 베르크(A. Berg)의 <마농을 위한 레퀴엠>(Requiem fiir Manon, 1935) 제5번 협주곡, 독일어판 신구약 성서에서 발췌한 기사들로 작곡한 브람스(J. Brahms)의 <독일어 레퀴엠>(Ein deutsches Requiem, 1867) 등의 작품들을 비롯하여 호네거(Honegger)의 <전례를 위한 레퀴엠>(Symphonie Liturgique, 1940)의 세 악장인 'Dies irae' , 'De profundis', 'Dona nobis pacem' 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 밖에 순수 관현악곡으로서 위령 미사곡의 중요한 요소들을 기초로 하여 작곡된 브리튼(E.B. Britten)의 <레퀴엠 교향곡>(SynfoniadaRequiem, 1940) 같은 작품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개정된 미사 통상문을 기초로 한 레퀴엠 중에는 아직까지 두드러진 작품이 없다. 보다 성대한 전례를 위해 새로 제정된 다양한 텍스트들이 장애가 되고 있는 탓이다. 또한 기존의 작품들을 오늘날의 미사에서 연주하려면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우선 미사 중에 하는 층계송과 연송 및 부속가 대신에 응송과 알렐루야를 새로 첨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봉헌송의 경우에도 그것을 그대로 하면 문제가 된다. 전례가 변하게 되면 그에 따르는 전례 음악도 당연히 변화되어야 하는데,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가톨릭 음악)
※ 참고문헌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mwart, Deutscher Taschenbuch · Bärenreiter, 1989/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cans, Macmillan Publisher, 1980. 〔白南容〕
레퀴엠
〔라 · 영〕Requiem
글자 크기
4권

1 / 2
1380년 파리에서 사용된 위령 미사 입당송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