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선교 수도회(Congregatio Missionis, 일명 라자로회[Lazaristae]) 회원. 중국 선교사. 중국명은 나광상(羅廣祥). 1754년 4월 14일 프랑스의 강브레(Cambrai) 교구의 트레롱(Trélon)에서 태어나 17세가 되던 1771년 7월 18일 파리의 '라자로회' 에 입회한 그는 1777년 3월 5일 사제로 서품되었고, 중국으로 파견되기 전까지 라자로회 신학교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로 신부는 천문학과 지리학에 대한 지식이 뛰어났으며 식물학과 박물학(博物學)에 대한 연구에도 힘썼다. 당시 이미 중국에 진출하여 선교를 담당하고 있던 예수회에, 1775년 중국에서의 해산령이 내려지자, 그는 위기에 처한 중국 선교를 담당하기 위한 중국 선교지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1783년 12월 17일 포교성성으로부터 교서를 통해 임명을 받은 로 신부는 수학자인 지슬랭(M. Ghislain) 신부와 파리(J.Paris) 수사와 함께 중국으로 파견되었다. 1784년 3월 20일 브레스트(Brest)를 출발하여 8월 29일 광동(廣東)에 도착한 이들 세 명의 선교사는, 이곳에서 잠시 머무른 후, 로 신부와 지슬랭 신부는 1785년 2월 7일 광동을 출발하여 4월 29일 북경에 도착하였다. 로 신부는 포교 성성에서 내린 교서를 당시 북경교구장인 구베아(A. de Gouvea, 湯士選) 주교에게 제출한 후 라자로회 북경 지구 책임자 겸 북당(北堂)의 프랑스 선교단 책임자로서, 해체된 예수회의 선교 사업을 계승하여 전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청(淸)의 건륭제(乾隆帝)와 친교를 맺고 흠천감 부감(欽天監副監)으로 역산서(曆算書)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만주어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만주어 문전(文典)과 사전 편찬 등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였다.
한편 라자로회의 중국 진출은 한국 천주교회와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1789년 말 동지사(冬至使)의 일행으로 북경에 도착한 조선 교회의 밀사(密使) 윤유일(尹有一)은 이듬해 1월 30일 당시 북당의 선교 책임자로 있던 로 신부를 만났는데, 로 신부는 그에게 바오로라는 본명으로 조건부 세례를 주었다. 대부는 전 예수회 회원으로 윤유일의 초상화를 그리고 로마에 보고했던 판지(J. Panzi) 수사였다. 당시 조선 교회의 상황을 전해 들은 구베아 주교는 조선 교회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790년 2월에는 윤유일에게 견진성사를 주었다.
선교회의 책임자로 균형 있는 덕과 다방면에 걸친 지식으로 선교회를 이끌었던 로 신부는, 1801년 11월 16일 뇌일혈로 쓰러져 북경에서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달레 교회사》 崔奭祐, <한국 교회의 창설과 초창기 李承薰의 교회 활동>, 《교회사 연구》 8집, 한국교회사연구소, 1992/ A. Thomas, Histoire de la Missione de Pékin, tom. 2, Paris, 1925. 〔李裕林〕
로, 니콜라 조제프 (1754~1801)
Raux, Nicolas 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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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