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소속 중국 선교사. 수학자. 중국력(中國曆)의개혁자. 세례명은 야고보. 중국명은 나아각(羅雅各). 자(字)는 미소(味韶). 1592년 1월 29일 이탈리아 밀라노(Milano)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614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후, 1617년 로마에서 벨라르미노(R. Bellarminus) 추기경으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듬해 트리고(N. Trigault, 金尼閣) 신부와 함께 중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1620년에 천문학자와 수학자들로 구성된 44명의 동료들과 함께 극동으로 출발하였다. 로 신부가 1622년 마카오에 도착해 중국으로 들어갈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 당시의 마카오는 네덜란드 함대와 영국 배들이 항구를 봉쇄하고 공격을 하고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때 로 신부는 포르투갈인과 인도인 등으로 구성된 군인들이 마카오를 수호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약 2년 동안 그곳에서 머무른 뒤 1624년 바뇨니(A. Vagnoni, 高一志)와 함께 중국 산서(山西) 지방에 입국하여 5~6년 동안 중국어를 열심히 익히고 복음을 전파하면서 수많은 질병에도 불구하고 열성을 지니고 중국의 복음화를 위해 많은 종교 서적을 저술하였다. 이곳에서 그가 저술한 단식, 애긍 행위, 기도 등에 관한 저술들은 중국인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628년 8월 28일에는 종신 허원을 하였다.
한편 1630년 명나라 의종(毅宗, 1628~1644)의 서양 역법 번역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역법 개정 계획에 따라 로 신부는 북경에서 샬(A. Shall, 湯若望), 롱고바르디(N.Longobardi, 龍華民), 테렌츠(J. Terrenz, 鄧玉函) 신부 등과 함께 중국력 개수(改修) 작업에 착수하여, 여러 어려움과 힘든 작업을 이겨내고 1634년에 천문학과 수학의 이론과 응용 분야가 담긴 《숭정력서》(崇禎曆書)를 완성하였다. 이에 의종은 유럽의 방법과 산술로 만든 달력을 사용하도록 법령을 공포하였다. 모두 137권으로 된 방대한 저술인 《숭정력서》는 동양 천문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는데, 그의 저술은 과학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천주교 신앙을 전파하려 한 마태오 리치(M. Ricci) 신부의 사상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또한 로 신부는 1625년 서안(西安)에서 발견된 대진 경교 유행 중국비(大秦景敎流 行中國碑)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비에 새겨진 시리아어를 번역함으로써 중국에 그리스도교 문화가 전래된 사실을 밝히는 데 일조하였다. 풍부한 지식과 고상한 정신과 관대한 마음을 지녔던 로 신부는 1638년 4월 26일 북경에서 갑자기 사망하여 리치 신부 옆에 묻혔다.
그는 《애긍행전》(哀矜行詮), 《재극》(齋克), 《성기백언》(聖記百言), 《천주경해》(天主經解), 《성모경해》(聖母經解), 《구설》(求說), 《주세경언》(週歲警言), 《성모행실》(聖母行實), 《측량전의》(測量全義), 《오위표》(五緯表), <오위력지>(五緯曆指), 《월리력지》(月離曆指), 《일전표》(日纏表), 《일전력지》(日纏曆指), 《주산》(籌算), 《황적정구》(黃赤正球), 《역인》(曆引), 《비례규해》(比例規解), 《일전고 주야각분》(日睡考晝夜刻分), 《천문 역법국사》(天文曆法國師) 등 천문과 역법에 관한 저서는 물론 교리에 관한 많은 저서들을 남겼다. 이 저서 중 《재극》과 《성기백언》은 정조 6년(1782) 이전에 조선에 전래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정조 15년 규장각에 보관 중인 서양 서적들을 소각할 때 함께 유실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의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정독한 것으로 생각된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Louis Pfister, Notices Biographiquues et Bibliographiques I, Chang-hai, 1932, pp. 188~191/ 《기독교 대백과 사전》 4, 기독교문사, 1981, p. 1257/ J.V. Mentag, 《NCE》 12, p. 459/ J. Meurers, 《LThK》 8, p. 1279. 〔李裕林〕
로, 자코모 (1592~1638)
Rho, Giacomo
글자 크기
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