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 장 루이 (1860~1902)

Rault, Jean Lou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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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신부의 묘비.

로 신부의 묘비.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요한. 한국명은 노약망(盧若望). 1860년 11월 25일 프랑스 에농(Hénon) 지방에서 열심한 신앙을 가진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부터 사제관에서 라틴어를 배웠다. 플루게르네벨(Plougernével) 소신학교와 성 브리외크(Saint Brieuc) 대신학교에서 공부한 뒤,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다. 1886년 12월 1일 사제 서품을 받았고, 나흘 뒤인 12월 5일 두 명의 동료와 함께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프랑스를 출발하였다. 그러나 입국 도중 많은 어려움을 겪어 이듬해 2월 1일에야 제물포(濟物浦)에 도착하였다.
로 신부는 입국 후 임시로 서울의 주교관에 머무르면서 한국어와 풍습을 배우던 중, 1887년 7월부터 그 동안 선교사수의 부족으로 1년에 한 번 방문하는 정도였던 황해도 지방에 파견되어 그곳 신자들을 돌보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장연(長淵)에 거처를 정하고 우선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신자들을 모으는 데 힘쓴 로 신부는, 구월산(九月山) 주위에 5개의 공소를 세우고 40여명의 예비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러던 중 1888년 가을 방광 카타르라는 병에 걸려 심한 고생을 하였다. 치료를 위해 잠시 사목 활동을 중단하고 홍콩으로 떠났다가 건강이 회복되자 1889년 재입국하였다. 이후에도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쿠데르(V. Couderc, 具) 신부가 혼자 맡고 있던 평안도 지역을 함께 맡게 되었다. 그런데 이 두 신부가 맡은 지역이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져 있었기에 서로 연락을 할 때에는 강을 건너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블랑(J.M.G. Blanc) 주교는 쿠데르 신부를 이천(伊川)으로 옮기게 하고, 그곳에서 가까운 수안(遂安)으로 로 신부를 옮기게 하였다. 1889년 한 해에만도 로 신부는 500여 회의 고해성사를 주었고, 100여 명의 어른에게 영세를 주었으며, 종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마을마다 작은 학교를 세워 한글을 가르치게 하였다. 이로 인해 1892년에는 신자수가 1천 명으로 증가하였고, 165명의 예비자들이 세례를 받았다.
로 신부는 1893년 4월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에 의해 원산(元山) 지역에 배치되었으나 임지로 가는 도중 누관(癭管)에 걸려 서울로 돌아와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하였다. 그 무렵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의 초대 교장 리우빌(Liouville, 柳達榮) 신부가 4월 26일 사망하자, 뮈텔 주교는 휴양 중이던 로 신부를 8월 19일에 후임 교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신학생들에게 진실성과 솔직한 신앙심과 착한 마음을 가지도록 가르쳤으며, 신학교에 성당을 세우고 땅을 넓히고, 과일 나무를 심는 등 신학교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1897년 5월 8일 뮈텔 주교는 샤르즈뵈프 신부를 신학교 교장으로 임명하면서 로 신부를 잠시 쉬게 하였으나 곧 부산 본당 주임 신부로 임명되었다.
1900년 7월 16일 부산에 도착한 로 신부는 드망즈(Demange, 安世華) 신부의 뒤를 이어 부산진(釜山鎮, 현범일동) 본당의 5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부임 당시에는 제대로 된 성당을 지을 수 없을 만큼 사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임시로 건물을 빌려 미사를 드리며 사목하였다. 재임 도중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이른바 '철도 부지 사건'이었는데, 로 신부가 뮈텔 주교에게 보낸 서한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이 사건은 교안(敎案)으로까지 발전하였다. 1895년에 우도(P. Oudot, 吳保祿) 신부가 성당의 발전을 위하여 사 놓은 땅에 일본인들이 함부로 철도 공사를 함으로써 비롯된 이 사건의 와중에서도 다른 대지들을 구입함으로써 부산 성당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02년 9월 10일 저녁에 콜레라에 걸린 10여 명의 신자들에게 병자성사를 준 후 자신도 감염되어 9월 13일, 4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附錄, 가톨릭출판사, 1984/《뮈텔 주교 일기》 I~III, 한국교회사연구소, 1986~1993/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教區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0.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