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소속 인도차이나 선교사. 프랑스인으로서는 최초로 베트남을 방문한 선교사이자 방인 사제의 양성과 선교지 관습에의 적응을 주장한 인물. 1591년 3월 15일 프랑스 아비뇽(Avignon)에서 태어나 1612년 4월 14일 로마에 있는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극동 선교를 원했던 그는 1619년에 리스본(Lisbonne)을 떠나 1623년까지 고아(Gôa)와 말라카(Malacca)를 여행한 후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로드 신부는 남베트남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1624년 성탄절에 베트남에 도착하였고, 6개월 가량 베트남어를 배운 후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18개월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개종을 하였고, 그중에는 선교에 있어 큰 후원자가 된 황태후도 있었다. 이후 마카오로 소환된 로드 신부는 1627년에 온후한 왕이 다스리는 북베트남 왕국에 파견되었다. 이곳에서 하루에 6번씩 설교를 한 로드 신부는 첫해에 1,200명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왕의 형제 · 친척들과 장군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체코(Checo, 현재의 하노이)에 성당을 신축하였고, 개종한 주민들 중 200명을 교리 교사로 선발하였다.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한편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모범적인 생활을 하면서 박해가 일어나면 순교할 용기를 지니게 되었다. 1630년에 북베트남 왕국에 정치적인 변화가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로드 신부는 7,000명의 신자들이 있던 자신이 세운 선교지를 떠나야만 했다. 마카오로 돌아온 그는 이후 10년 동안 중국의 남부 지방에서 전교를 하며 베트남에서 다시 전교할 기회를 기다렸다. 이 시기 동안 그는 1천여 명의 중국인에게 세례를 주었다. 1640년에 남베트남에서 박해가 일어나자 로드 신부는 처음의 선교 지역으로 돌아가 3년 동안 잠시 추방을 당하면서도 2,000명을 개종시켰는데, 베트남의 첫 순교자로 1644년에 16세로 순교한 교리 교사 안드레아가 이때 세례를 받았다.
1646년 베트남 선교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유럽으로 돌아가던 중 잠시 이스파한(Ispahan)에 들러 페르시아 선교의 가능성을 살펴본 그는, 1650년 로마에 도착하여 두 개의 선교 보고서를 작성하고, 보호권(padroado)의 특전이 아시아 선교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베트남에 있는 약 3만 명의 신자들을 위해 대목구 설정을 제안하였으며, 1652년에는 파리에서 빈천시오 아바오로(Vincentius a Paulo)를 만나 베트남 선교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유럽에서 5년 동안 머문 로드 신부는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예수회 총장은 포르투갈의 보호권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를 페르시아로 파견하였다. 1655년 페르시아에 도착하여 그곳의 언어를 배웠으며, 왕의 호의로 성당을 지을 수 있었으나, 1660년에 페르시아의 이스파한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그는 리치(M. Ricci), 발리냐노(A. Valignano), 노빌리(R.de Nobili)와 같은 예수회 선교사처럼 베트남과 페르시아에서 그리스도교 문화의 개척자였다.
〔저서와 업적〕 1650년에 31년 만에 돌아온 로마에서《통킹 왕국 선교사》(Relazione de felici successi della santa fede nel regno di Tunchino)를 펴낸 로드 신부는 다음해 베트남어 · 라틴어 · 포르투갈어로 된 《안남어 사전》(Dictionarium annamiticum)을 펴냈으며, 《세례자를 위한 교리서》(Catechismus pro iis qui volunt suscipere baptismum)를 로마에서 발간하였다. 또 1652년에는 파리에서 《남베트남 왕국의 신앙 전파사》(Relation des progrès de la foi au royaume de la Cochinchine)를 간행하였고, 1653년에는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로드 신부의 중국과 동방 왕국 여행기》(Sommaire des divers voyages et missions apostoliques du P.A. de Rhodes à la Chine et autres royaumes de I'Orient)를 저술 발간하였다. 특히 로드 신부는 베트남어의 로마자화에 공헌하였다. 일찍부터 중국 문화와 접촉한 베트남인들은 한자를 바탕으로 고안한 민족 문자 추놈(Chữ nôm)을 구어(口語)로 써 왔는데, 그는 로마 문자에 억양 표시를 덧붙임으로써 억양이 낱말의 뜻을 지시하도록 한 '쿼크규' (國語)를 완성하여 베트남인들이 쉽게 그리스도교 교리를 접할 수 있게 하였다. 초기 베트남 선교사인 가스파르 드 아마랄과 앵토뉴 드 바르보사에 의해 고안되어 로드 신부에 의해 완성된 이 문자가 급속히 보급되면서 민중들의 문맹률이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과 서방 사이의 교류가 증대되었다. 현재 베트남에서는 로마자 체계인 이 '쿼크규' 를 정식 문자로 삼고있다. (→ 베트남)
※ 참고문헌 J.A. Otto, 《LThK》 8, p. 1279/ B. Lahiff, 《NCE》 12, pp.461 ~4621 《기독교 대백과 사전》 4, 기독교문사, 1981, p. 1266/ P.Duclos, 《Cath》 12, pp. 1175~1176. 〔梁惠貞〕
로드, 알렉상드르 드 Rhodes, Alexandre de(1591~1660)
글자 크기
4권

로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