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로마 대화재 사건 이후 발생한 대박해 때 순교한 성인들. 축일은 6월 30일.
새 전례력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고대 성인들의 축일을 이 축일에 모아 기념하도록 하였다. 동시에 로마 교회의 굳건한 터전을 마련하였던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축일(6월 29일) 다음날에 기념함으로써 로마 교회의 초기 순교자들에 대한 순교의 영광을 함께 기념하도록 하였다.
당시 로마 황제였던 네로(Nero)는, 온화하고 현명하게 통치하도록 조언하던 철학자 세네카(Seneca)를 스승으로 섬기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네로를 유혈을 즐겼던 미치광이로 평가하고 있다.
로마 교회의 초기 순교 사건에 관한 네로의 책임성 여부는 이교도 역사가였던 타치투스(Tacitus)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모든 문제는 네로의 극단성 혹은 무모한 예술가적 기호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네로는 로마의 몇몇 지역이 잘못 건축되었으며, 혐오감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던 중 64년에 로마에서 대규모의 화재가 발생하여 그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비록 증거는 제시할 수 없지만 네로가 그 화재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소문이 난무하였다. 이를 두려워한 네로는 당시 그리스도교라 불리던 새로운 종교의 신자들에게 화재의 책임을 전가하였다. 타치투스는 초기 로마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관해서는 동시대 이교도들과 의견을 같이하지만 네로의 잔혹함을 인정하는 데는 다소 인색하였다. 그렇지만 그 역시 사형당하는 신자들의 숫자가 아주 많았으며, 그 방법이 잔인하였음을 인정하였다. 그에 의하면, 어떤 경우 짐승 가죽 안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집어 넣어 개에게 먹이로 던져졌으며, 어떤 신자들은 십자가형으로 죽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어떤 신자들은 온몸에 송진이 발라져 바티칸 언덕 위에 있는 로마 황제의 정원을 밝히기 위한 불씨가 되었다고 증언하였다. 이 순교자들 중에는 많은 수의 여자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고대 작가들은 베드로 사도 역시 이 시기에순교하였다고 하였다.
로마 교회의 초기 순교자들은 사도 바오로의 편지에 크게 고무 · 격려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편지를 통하여 순교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사도 바오로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57년에 쓰여졌으므로, 네로 황제 시대의 많은 순교자들은 그 편지를 읽고 묵상하였을 것이다. 특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궁핍입니까? 핍박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아니면 칼입니까? (그것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습니다. '당신 때문에 우리는 온종일 죽임을 당하며 도살되는 양들같이 다루어졌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에 힘입어 이기고도 남습니다" (로마 8, 35-37)라는 말씀은 로마 교회의 초기 순교자들이 끝까지 그들의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던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데 충분하였다.
※ 참고문헌 M. Driot, Le Saint du Jour, Paris, Mediaspaul, 1995/ O.Englebert, La Fleur des Saints, Paris, Albin Michel, 1984/ M. Dubost et al., Théo, Paris, 1992. [편찬실]
로마 교회의 초기 순교자
敎會 - 初期殉教者
[라]SS. Protomartyrum S. Romanae Ecclesiae
글자 크기
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