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네스크 예술

藝術

[영]Romanesque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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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왼쪽)과 이탈리아의 피사의 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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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왼쪽)과 이탈리아의 피사의 사탑.

1000~1200년경 사이에 서유럽 전역에서 꽃피웠던 건축을 중심으로 한 회화, 조각상의 예술 양식.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한동안 혼란했던 유럽이 10세기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수도원 제도가 크게 발전한 결과로 생겨났다. '로마풍' 이라는 뜻을 지닌 이 로마네스크 양식은 로마의 양식을 기초로 하고 있으나 카롤링거 왕조, 오토 왕조 시대, 비잔틴 미술 및 원숙기에 이른 게르만 민족의 지역적 전통이 융합된 예술 양식이다. 지역에 따라 다양한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노르만 양식, 부르고뉴 양식, 시토 양식 등) 웅장하고 힘이 넘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건 축〕 이 시기의 교회 건축은 스페인 북부에서부터 프랑스, 라인강 계곡의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 중북부 지역까지 반원 아치, 종탑 그리고 장십자가형(Lain cross)의 사용이란 형식상의 공통점을 지니고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들 중 프랑스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가는 순례 여행길을 따라 세워진 순례식 성당(pilgrimage church)을 만들어 냄으로써 형식상 가장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9세기 들어 건축 활동이 놀랍게 증가되었는데, 대부분 수도원의 감독 아래 지어졌던 교회 건축은 지역과 후원한 수도원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꼽을 수 있는 특징은 이전보다 훨씬 큰 규모에다 창문과 문, 아케이드에 반원형 아치를 많이 사용하고, 반원통형 궁륭(半圓筒形穹窿 barrel vault, 반원통형 둥근 천장을 올린 볼트)과 교차 궁륭(交叉穹窿, groin vault, 2개의 원통형 볼트가 십자로 교차하여 생긴 볼트)을 쓴 점, 아치 때문에 생기는 바깥 방향으로 미는 추력(推力)에 견디기위해 굵은 기둥과 두꺼운 벽을 만든 점, 그리고 높은 탑의 등장 등이다. 탑은 교회 건축사에서 처음으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프랑스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정사각형의 탑을 서측 정면 입구에 좌우로 성당의 몸체에 붙여 올리는 쌍탑(twin towers) 형식을 띠고 있다. 반면에 이탈리아에서는 피사(Pisa)의 사탑처럼 성당 곁에 독립적으로 4각형이나 원형의 탑을 건설하였다. 이러한 탑들은 일반적으로 종탑의 기능을 지니지만 전망탑 내지는 계단탑의 역할을 하고 있는 동시에 중세 사회에서는 교회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로마네스크 성당의 특징은 동서의 종축을 가진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 동측 단부(端部)에 남북으로 익랑(翼廊, trancept)을 붙여 장십자가형 평면을 창출한 데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특징은 실용적 측면에서 볼 때 신랑(身廊, nave) 부분과 익랑 부분이 겹쳐 만나는 교차점에 팔각형의 광탑을 올려서 어두운 실내에 빛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상징적 측면에서는 예수가 매달려 죽은 십자가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는 점에 있다. 또한 로마네스크 성당의 건축학상 새로운 점은 목조 천장을 궁륭형의 석조로 개조한 점이다. 중세인들의 생각에는 목조 천장의 교회는 화재에 약해 영원히 존재해야 하는 성전으로 적합하지 못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순례식 성당은 엄청나게 늘어난 당시의 순례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건축적인 대안으로 세워진 성당이다. 이 성당의 동측 단부의 주 앱스(apse) 주위에 회랑(ambulator)을 두르고 여기에 소성당(chapel)들을 방사형으로 덧붙였다. 또한 성당의 출입문을 서쪽에 이어 익랑 부분의 좌우에 두 개를 더 만들어 세 개로 늘였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성당으로 대표적인 것은 프랑스 남서부 지방 툴루즈(Toulouse)에 있는 성 세르냉(St. Sernin) 성당과 콩크(Conques) 성당이다.
11세기에 건축된 수도원 성당에서 주로 발견되는 클로이스터(cloister) 공간은 성당 옆에 붙어 있으며 정사각형 모양에 사방은 아케이드로 둘러쳐져 있고 천장은 궁륭형의 석조로 덮여 있는 회랑이다. 이 공간은 사각형의 한가운데 부분이 하늘로 열려 있어 밝은 빛이 흘러 들어와 산책과 독서를 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이었다. 이러한 형태의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 남부의 므와사크(Moissac)와 프로방스(Provence) 지방에 있는 생 레미(St. Rémy)의 바오로 성당을 들 수 있다.
〔조 각〕 이 시대의 기념비적인 조각은 거의 600년 동안 잠자고 있다가 되살아난 것으로 로마네스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형상 예술이었다. 성당의 내부의 기둥인 주두(柱頭, capital)를 장식한 조각이나 육중한 출입문의 반원형 상단부인 팀파눔(tympanum)을 장식한 조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조각들의 내용은 대부분 성서에서 발췌한 것으로 주로 예수의 생애에 관한 것과 최후의 심판이 표현되었다. 성서를 읽을 수 없는 문맹인들을 위해 제작된 이 조각들은 단순한 형태와 극단적인 변형으로 의미를 전달하려는 강한 표현성을 지녔다.
로마네스크 조각은 게르만 민족으로부터 기하학적 도안을 이어받아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형상을 점차 벗어나는 한편, 종교적 영감이 어우러져 화려한 조각 양식으로 발전되었다. 자연의 사물 모양을 양식화하였고, 추상적이며 선 위주로 하는 표현 방법을 통해 환상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이러한 예술은 엄격하고 웅장하거나 또는 감동으로 가득 차 있거나 간에 모두 초월적인 가치를 매우 중시하였는데, 이것은 인본주의 고딕 시대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조각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회 화〕 로마네스크 회화는 건축이나 조각처럼 급속한 발전을 나타내고 있지는 않다. 로마네스크 조각의 기념비적 성격에 상응하는 회화 양식의 발생이 이루어진 것은 1000년경에 와서였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미술가들은 명암을 나타낼 때 모델링 기법을 완전히 버림으로써 추상적 명쾌성과 정확성을 부여하였다. 여기서 비로소 화면의 재현적 · 상징적 · 장식적 요소들이 하나의 통일된 구조로 통합되었다. 로마네스크 회화의 걸작은 대부분 교회 내부의 벽화인데, 현재 남아 있는 벽화들을 보면 조각 양식을 따른 것을 알 수 있다. 필사본에 대문자를 새기거나 책장 귀퉁이를 장식할 때는 선 묘사를 양식화한 조각을 본으로 삼았다. 외경심을 일으키는 표현에는 채색 장식보다 조각이 훨씬 뛰어나긴 하였지만, 채색 장식에서도 세련되고 인상적인 양식이 발전하였고 매우 우수한 작품이 나왔다. 대부분 수도원에서 제작한 필사본의 미니어처(minatue)는 선묘(線描) 중심의 데생으로 사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활자본이 나오기 전까지 모든 그리스도교 세계에 통용되어 벽화 양식과도 관련을 맺으면서 많은 양식을 산출하였는데 성직자용 성서, 전례서, 기도서의 삽화로 발달하였다. 고딕 성당의 가장 중요한 장식 예술인 스테인드 글라스도 이미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칠보는 성유물 용기, 십자가, 제단 등 성당의 중요한 공예품에 사용되었다. 조각이나 회화는 전반적인 학문의 부흥으로 반영하면서 그 시대의 신학 저서, 성서에 나오는 사건들, 성인들의 삶 등 폭 넓은 주제를 다루었다.
12세기 중엽에 이르러 고딕 예술에 의해 차츰 밀려나기 시작하였지만, 로마네스크 예술은 고딕 예술과 함께 서유럽 그리스도교 예술의 정수이며, 서양 미술사에서 인류 정신을 가장 차원 높게 표현한 예술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서로마 제국의 멸망(476) 이후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과 혼란 후에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벗어나 알프스 산맥 이북의 대서양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최초의 대규모적 미술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 가톨릭 건축 ; 가톨릭 미술)
※ 참고문헌  H.W. Janson, History ofArt, New York, 1977(김윤수 외 역,《미술의 역사》, 삼성출판사, 1978). [金正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