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대수도원장. 축일은 4월 29일. 1027년경 프랑스 중부 트루아(Troyes)에서 태어나 15세 때 디종(Dijon) 근처 무티에 라 셀(Moutierla-Clelle)에 있는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로베르토의 생애는 11~12세기 서양 수도원 제도의 동요와 부흥을 아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데, 그는 물질적 부유함으로 인해 수도 정신이 해이해진 이 수도원을 클뤼니(CIuny) 수도원의 이념으로 새롭게 재건하려고 시도하였던 것이다. 1053년 수련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무티에 수도원 원장에 임명되었다가 1070년경 온(Yonne) 지방의 토네르(Tonnere)에 있던 베네딕도회 수사들이 그를 수도원장으로 추대하자 이를 수락하였다. 그러나 그는 수사들의 생활이 아주 해이해졌을 뿐만 아니라 쉽사리 그 생활 자세를 개선할 수 없음을 깨닫고 수도원장직을 사임한 뒤 무티에로 돌아왔다.
1072년 무티에 라 셀에 부속되어 있던 생타율(St.Ayoul)의 수도원장으로 재직하던 중, 그를 지도자로 추대한 은둔 수도자들과 함께 몰렘(Molesme)에 있는 콜랑(Collan) 숲으로 거처를 옮긴 로베르토는, 숲 속의 한 작은 성당 주변에 나뭇가지로 오두막집을 짓고 초기 수도자들의 생활 방식을 부흥시켰다. 이로써 몰렘 수도원은 클뤼니 수도원에 직접 소속되지 않고, 성 베네딕도의 규율을 충실히 따르는 전통 수도원으로 여겨졌다. 그 후 이러한 규율을 기초로 여러 곳에 분원을 설치할 수 있을 만큼 번창하였는데, 수도회 내부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하나는 성 베네딕도의 규율을 아주 충실하게 준수함으로써 수도 생활의 부흥을 추구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은둔 수도자의 생활을 이상으로 삼고 극도의 청빈과 보다 철저한 은둔 생활을 갈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차츰 각처에서 지원자들과 기부금이 쇄도하면서 오두막집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크고 훌륭한 수도원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에 따라 수사들은 노동을 포기하고 편안함과 안일만을 추구하였는데, 그 나태함이 점점 심해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로베르토는 그들을 떠나 홀로 은둔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가 떠나자 후원자들의 도움이 사라졌고, 수사들은 로베르토를 찾아와 다시 돌아와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 수도자들이 자신들의 행실을 고칠 것을 맹세하였기 때문에 다시 그 직책을 맡기는 하였으나, 수사들의 생활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결국 이 수도회는 상호 다른 두 경향으로 인해 서로 분리될 수밖에 없었다. 한 부류는 후에 시토(Citeaux) 수도회의 창설자가 되는 성 알베리히(St. Albe-rich)와 성 하르딩(St. Etienne Harding)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게랭(Guerin)의 지도하에 있던 다른 부류는 1097년 사브와(Savoie) 지방에 수도원을 창설하고 반은둔, 반수도 생활을 하였다.
이와 같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로베르토는 자신을 열렬히 추종하는 20여 명의 수도자들을 데리고 1098년에 몰렘을 떠나 코트 도르(Cote-d'Or) 지방의 시토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그는 '시토 수도회' 를 창설하고 '새로운 수도원' (Novum monasterium)을 세워, 평소 이상적인 수도 생활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실천에 옮겼다. '새로운 수도원' 이란 은둔 · 청빈 · 검소함 속에서 생활하는 형제들의 공동체 내에서 성 베네딕도의 규율을 충실히 준수하는 단체를 표현한 말이다. 로베르토는 1년 이상을 시토에 머물러 있었는데, 1099년 교황 우르바노 2세가 교서를 통해 몰렘 수도원을 정상화시키라는 명령을 내리자 몰렘으로 되돌아가 다시 수도원 지도를 맡았다. 수도원 정상화에 힘쓰면서 수사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주었고,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인 로베르토는 1111년 4월 17일 이곳 몰렘에서 사망하였다. 그리고 사망한 지 1세기가 지난 1222년에 시성되었다.
로베르토는 평생 동안 여러 번 이동을 하였는데, 실상 왜 그가 그렇게 많은 이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모든 역사적 상황을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더욱 순수하고, 시대적 요청에 보다 효과적으로 부응할 수 있는 수도 생활을 끊임없이 추구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가 자신의 인생과 인격을 통해 10세기 무렵에 일어난 수도원 제도의 개혁을 두 가지 방향에서 추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은둔 수도자들의 규율을 충실히 준수하는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엄격하고, 청빈하며, 검소한 은둔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 시토회)
※ 참고문헌 Acta Sanctorum, Apr. Ⅲ, 1675, pp. 676~6831/ 0.Englebert, La Fleur des Saints, Paris, Albin Michel, 1984/ M. Dubost et al., Théo, Paris, Droguet-Ardant · Fayard, 1992/ Saint Robert de Molesmes, 13, Paris, Beauchesne, 1980. [편찬실]
로베르토, 몰렘의(1027?~1111)
Robertus Moesme(1027?~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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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