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신비 사상가. 영성 저술가. 1293년 벨기에의 브뤼셀 근처 로이스브루크(Ruysbroeck)에서 태어나 11세 되던 해 당시 브뤼셀의 생트-귀뒬(Sanite-Gudule) 대성당 참사 위원으로 있던 친척 집으로 가 그곳에서 명상과 신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24세 되던 1317년에 사제로 서품되어, 생트-귀뒬 본당 신부로 임명되었다.
〔배경과 활동〕 사람들이 명상을 하고자 하는 경향이 조금씩 쇠퇴하고 있던 이 당시에는 또 하느님에 의한 직접적인 조명(照明)을 주장하는 천계설(天啓說, illumini-sme)이 등장하였고, 많은 이단적 종파들이 모든 지역에 확산되어 있었다. 로이스브루크 신부는 이러한 종파들의 범신론적 사고를 강력하게 공격하였는데, 사실상 이러한 신비론적 범신론 사상은 수차례 법에 의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벨기에에서는 여전히 뿌리깊게 존속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르침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그들의 정적주의(quietismus)적 경향, 부도덕한 학설의 결과, 특히 인간을 모든 법으로부터 해방시켜 완전 무결한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신비론은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따라서 그들에 대한 과감하고 지체 없는 논박이 필요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14세기 초 교회의 분위기는 열성적인 신자들로 하여금 하느님과 보다 친밀한 결합을 추구하도록 이끌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이스브루크는, 이러한 이단적 종파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였던 '자유로운 성령의 형제회' 를 공격하는 글을 썼다. 참된 교리와 거짓된 교리 사이에 명확한 한계를 지으려는 그의 노력과 학식, 그리고 호평을 받고 있던 그의 성덕에 이끌린 몇몇 제자들이 그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로이스브루크는 브뤼셀에서의 생활이 매우 소란스럽고 묵상하기에 적합하지 않음을 깨닫고, 1343년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 브뤼셀에서 멀지 않은 스와뉴(Soignes) 숲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공동체를 형성하여 1350년에 그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는데, 그는 이러한 은거 생활을 통하여 이탈리아의 신비주의자인 조악키노 다 피오레(Gioacchino Fiore, 1130/1145~1202)가 제시한 성직자 규율의 기본 토대를 구축하려 하였다. 그의 의도는 모든 성직자를 구성원으로 하는 공동체를 조직하도록 권유하여 청빈 · 정결 · 순명 속에서 살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수도원에서 묵상에 전념하면서 어떤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숲 속에 틀어박혀 묵상한 것을 글로 쓴 다음, 수도원으로 돌아와 다른 형제들에게 그 가르침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의 저서의 대부분은 이 은둔 생활을 통해 보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바로 이 시기에 집필되었다. 여러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이 수도원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이곳은 오랫동안 신비주의적 삶의 중심지 혹은 성덕의 수련장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다. 로이스브루크는 1381년 12월 2일 88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저 서〕 그의 중요한 저서 중의 하나인 《하느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왕국》(Le royaume des amants de Dieu)을 저술한 의도는 거짓 신비론, 특히 당시 그 지역의 신비주의적 이단 종파의 우두머리였던 어떤 여자를 논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로이스브루크는 그의 논설에 어떤 논쟁의 형태를 부여하려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이르는 여러 길들을 실제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려 한 것이다. 이 책에서 몇몇 문장은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는데, 이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저술한 것이 바로 《가장 고귀한 진리의 책》(Le livre de la plus haute vérité)이다. 그는 서문에서 "내가 설명하였던 가장 고도의 교의인 진리를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인 만큼, 보다 정확하고 보다 명확한 방식과 적은 단어로 최선을 다해서 나타내고 설명해 주기를 원하는 나의 몇몇 친구들의 소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 책을 저술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또 하나의 주요 저서로 《영성적 결혼》(Les noces spiri-tuellees)을 들 수 있는데, 이 책 역시 허위적인 종파들을 논박하고, 그리스도의 완전함에 이르는 진정한 길이 무엇인가를 밝힘으로써 그 종파들의 위선을 벗기려 하였다. 또 《영원한 구원의 거울》(Le miroir du salut éternel)은 이미 언급한 저서들처럼 일반적인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완전해지기를 원하며 영성적 방법을 시작하려는 독실한 신자에게 주는 영적 교육서이다. 그 밖에도 어떤 수녀에게 주는 권고인 《일곱 가지 수도원 생활의 책》(Le livre des sept clôtures)과 《영성적 사랑의 일곱 단계》(Lessept degrés de I'échelle d'amour spirituel)가 있는데, 후자는 전자처럼 직접적으로 한 수녀에게 주는 가르침은 아니지만 이 역시 특정한 한 개인을 위한 것이었다. 또한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여러 범주의 의인들을 구분한 《빛나는 돌》(La pierre brillante), 구약성서의 장막을 서술하면서 우리 영혼이 완전함에 이르기 위해 체계적으로 세워야만 하는 영성적 위치를 언급한 《장막》(Le tabernacle)이 있으며, 그 외에 《열두 베긴회 수녀들의 책》(Le livre des douze Béguines), 《진정한 신앙의 열두 가지》(Les douze points de la vraie foi), 《네 가지 유혹》(Les quatre tentations), 《열두 가지 미덕의 책》(Le livre des douze vertus) 등이 있다.
〔신학적 교의〕 그의 교의는 화려한 문체로 설명되어 있다. 이는 그의 책에 관심을 갖게 되는 첫 번째 이유일 뿐만 아니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Sanit Frangois de Sales)의 교의를 생각하게 한다. 로이스브루크는 그의 가르침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비교 방법을 선호하였으며, 다양한 상징들로 독자를 즐겁게 하기도 하였다. 또한 하느님이 어떤 경우 인간에게 주는 감각적인 위로에 인간이 내적으로 집착해서는 안됨을 이해시키려 하였다. 그의 책에 대한 또 다른 관심은 그가 심도 있는 신학자인 동시에 위대한 신비론자라는 데서 비롯된다. 그는 당대의 신비론자들 이상으로 신학서를 집필하였으며, 명상의 효과와 특성을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외적인 현상 이상으로 내적인 본질을 탐색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의 저서들은 아무런 연관성 없는 성찰의 결과가 아니며, 각각의 부분들이 잘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엄격한 종합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이스브루크는 완덕을 이루려는 신자들에게 진정한 영성적 교의를 제시하려고 하였다. 그는 완덕을 향한 도정을 세 단계로 구분하면서 이것을 세 가지 삶이라 불렀다. 첫 번째 단계는 활동적 혹은 외적인 삶으로, 이는 죄가 없어지고 덕이 증가한다는 특성이 있다. 두 번째 단계는 감정적 혹은 내적인 삶인데, 이는 특권을 지닌 사람에게만 유보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러한 삶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명상적인 삶인데, 여기에서는 오직 하느님만이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 인간을 보다 높은 곳으로, 즉 완전한 하느님의 빛 속에서 하느님의 의도에 따라 인간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저서의 많은 부분을 신자와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였다.
〔의 의〕 그가 죽은 후, 많은 찬사가 수많은 신학자와 신비주의적 저술가의 이름으로 그에게 바쳐졌었다. 로이스브루크가 신비 신학의 발전에 기여한 역할로 보자면, 결코 개별적인 존재로서보다는 14세기 독일 신학계 안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를 유의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그 시대 독일 신학계에 미친 영향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교 영성 운동의 기원을 이루었다고도 할 수 있다. 17세기부터 시작된 그의 시복을 위한 노력은 전쟁과 프랑스 대혁명 등 갖은 우여곡절 끝에 1908년 12월 9일 마침내 이루어질 수 있었다.
※ 참고문헌 L. Brigue, Le bienheureux Jan Ruysbroeck, 《DTC》 14, Paris, Librairie Letouzey, 1928/ M. de Gandillac, 《EU》 20/ J.M. Le Lannou, Dictiomaire des philosophes, Paris, P.U.F. 1991/ W.J. Courtenay, The McGraw-Hilll Encyclopedia of World Biography, vol. 9/ E. Colledge, 《NCE》 12, pp. 763~765. [邊琪燦]
로이스브루크, 얀 반 Ruysbroeck, Jan van(1293~1381)
글자 크기
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