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 피에르 귀스타브 Roze, Pierre Gustave(?~?)

글자 크기
4
프랑스 극동 함대 사령관. 해군 소장. 중국명은 노세(魯勢). 중국 천진(天津)에서 프랑스 극동 함대 사령관으로 근무하던 로즈 제독은, 1866년 7월 7일 체푸(芝罘)에 도착하여 병인박해(丙寅迫害)를 알리려 천진에 온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리델(F.C. Ridel, 李福明) 신부를 만났다. 이때 그는 조선에서의 천주교 탄압 및 박해 상황, 그리고 베르뇌(S.F. Berneux, 張敬一) 주교를 포함한 9명의 프랑스 선교사가 대원군의 지시로 남종삼(南鍾三), 정의배(丁義培) 등 8,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이에 이 사실을 프랑스 해군성(海軍省) 장관에게 리델 신부가 제출한 순교자에 대한 보고서를 동봉하여 보고하고, 프랑스 선교사들의 처형과 천주교 탄압에 항의하는 뜻으로 보복을 가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때마침 북부 베트남에서 안남인(安南人)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사이공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 후 1886년 9월 8일부로 프랑스 해군성의 조건부 허락을 얻은 로즈 제독은, 조선 해안을 정찰하기 위해 리델 신부를 통역으로 조선인 신자 3명(崔善-, 崔仁瑞, 沈順汝)을 뱃길 안내원으로 동승시켜 9월 18일 체푸를 출발하였다. 프리모게(Primauguet)호를 비롯한 2척의 전함을 이끌고 물유도(勿溜島, 현 작약도)앞바다에 정박한 그는 다시 양화진(楊花津)을 거쳐 서강(西江)에까지 이르렀으나 해안 측량과 답사만 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1차 원정에서 돌아온 로즈 제독은 그 해 10월 11일 전함 게리에르(Guérrière)호를 비롯한 7척의 군함과 600여 명의 해병대를 이끌고 강화도(江華島)에 상륙한 뒤 10월 16일에 강화부성(江華府城)을 점령한 후 조선 정부에 대해 선교사를 살해한 책임을 물으면서 책임자 처벌과 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 등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문수산성(文殊山城)과 정족산성(鼎足山城)의 전투에서 잇달아 패하자 철수를 결정하고 강화성에 불을 지르고, 많은 서적과 지도, 갑옷과 투구, 보물 등을 빼앗은 후 퇴각하였다.
그 결과 프랑스가 의도했던 포함 외교(砲艦外交)는 완전히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로즈 제독의 강화도 점령으로 발생한 병인양요는 대원군의 쇄국양이(鎖國攘夷) 정책과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를 더욱 가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 병인양요 ; 한불 관계)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번역위원회 역주, 《리델 문서》 Ⅰ, 한국교회사연구소, 1994/ <韓佛關係資料一丙寅洋擾(1866~1867)>, 《교회사 연구》 2집, 한국교회사연구소, 1979.[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