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의학자. 관념론적인 형이상학자. 1817년 5월 21일 독일 작센의 바우첸(Bau-tzen)에서 태어나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베버(E.H. Weber), 볼크만(W. Volckmann) 페흐너(G.T. Fechner)에게서 수학 · 생리학 · 정신 물리학을 배웠으며, 바이세(C.H. Weisse)에게서 철학과 미학을 배운 뒤 1838년에 의학과 철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41년 라이프치히 의과 대학 강사가 되어 철학도 함께 가르치다가 1844년에 헤르바르트(J.F. Herbart)의 후임으로 괴팅겐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881년 베를린 대학으로 초빙되었으나 베를린으로 온 지 얼마 안된 그 해 7월 1일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의학 · 물리학 · 수학을 공부한 만큼 그의 철학은 자연 과학의 기초 위에서 심정(心情)의 요구에 적합한 형이상학을 정초하려고 한 점이 특징이다. 전생애에 걸쳐 그의 관심은 의학 · 심리학 · 철학 · 수학 · 예술 · 문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였는데, 특히 엄밀한 탐구와 정확한 지식을 얻기 위한 강한 열정을 나타내면서도, 문학과 예술을 근간으로 하는 문화적인 삶 속에서 감정과 가치의 중심 역할에 관심을 기울였다.
주요 저서로 《기계적 자연 과학으로서의 일반 병리학과 치료 방법》(Allgemeine Pathologie und Therapie als mecha-nische Naturwissenschaften, 1842) , 《소우주》(Mirokosmos, 1856~1864), , 《독일 미학사》(Geschichte der Ästhetik in Deu-tschland, 1868), 《논리학》(Logik, 1874), 《철학 대계》(哲學大系, System der Philosophie, 1874~1879) , 《형이상학》(Meta-physik, 1879) 등이 있다.
〔사 상〕 새로운 형이상학 개념 : 로체는 과학과 그리스 도교, 이성과 감정, 지식과 가치 사이의 갈등이 합리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과학과 예술로 대변되는 인간의 문화적 가치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거부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인간의 삶과 세계 속에서 그들 나름의 위치를 지니고 있는데, 로체는 이들의 적절한 관계가 기존의 낡은 형이상학적 방법으로는 정립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형이상학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사실이 허용하는 만큼 과학을 적절한 하나의 체계로 만드는 개념과 이론을 분석하고 분명하게 하는 것이었다. 형이상학적이고자 하는 강한 욕구 혹은 충동은 형이상학 그 자체에서보다는 윤리학에서, 즉 궁극적인 선을 알고 그것에 도달하려는 욕망에서 찾아진다. 형이상학은 과학적으로 정당한 것을 넘어서 사변적인 것을 포함하고 궁극적인 선의 체험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기계론과 신(神) : 로체는 근본적으로 관념론자이지만, 그의 관념론에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적절하게 섞여 있으며 인간의 삶을 보장해 주는 주도적인 의미로서의 감정을 강조한다. 로체는 사유(思惟)를 심성(心性)의 한 측면으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사유는 실재에 대한 관념을 인지하도록 하지만, 사유는 실재를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식과 실재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실재나 대상과의 일치는 사유로서가 아니라 경험으로 이루어진다. 사유는 단지 재현적(再現的)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사유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유는 선과 악, 미와 추(醜), 가치와 무가치, 모순과 조화를 감정에서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까닭에 전체 감정의 경험과 융합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고통과 즐거움의 체험에 이르는 심성의 근원적인 능력이다. 로체에 의하면, 감정이란 일관성과 지적 조화 사이를 중재한다. 감정은 상상력의 궁극적인 창조자이며 가치의 최종적인 판단자이다. 더욱이 감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해와 행위의 전체적 통일성을 탐구하도록 한다. 지식, 선, 미에 대한 사랑은 감정으로부터 나온다. 감정의 본질적인 본성은 사랑이며, 그의 삶과 우주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를 하도록 한다. 또 감정의 세계란 심리적이며 인격적 신뿐 아니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확신시켜 준다. 그에게 있어서 영혼은 단순히 기억에 의해 연합된 인상의 흐름이 아니다. 오히려 영혼은 신체와 인과적으로 연관되어 상호 작용하는 실질적인 실체이다. 영혼과 실체는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신체의 법칙 그 자체는 순전히 물리적이다. 영혼의 법칙은 보다 높은 수준에 있으니, 그것은 합목적적(合目的的)이며 물리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결합한다. 또한 물리적 세계의 법칙에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제하고 재정리한다. 인격적 신은 영혼의 존재나 목적으로부터 나오며, 세계 만물은 신의 인격적 창조물이다. 로체에 의하면, 신은 자신의 목적을 과학이 발견한 기계론이나 인과관계를 통해 이룬다.
이 기계론은 생명체나 무생물체 모두에 타당한 특징이다. 목적적인 설명과 비목적적인 설명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생각을 로체는 거부한다. 그는 당시에 유명했던 생기론(生氣論) 혹은 활력설(活力說, vitalism)의 낡은 형태를 반대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기계론이란 신이 세상에서의 그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단순한 도구일 뿐이다. 비록 신이 다른 수단을 사용하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물리적 · 심리적 영역에서 보편 법칙을 정립하는 한 방식으로서 기계론을 더 선호하였다고 보았다. 나아가 기계론의 명제가 유물론과는 같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는 쉽사리 물질로서 심리적일 수 있고, 또한 심리적 해석이 합리적으로 더욱 선호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비를 만들지 않으며 감정의 현존에 모순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우주》에서 로체는 기계론을 다만 탐구의 방법으로 끌어들일 뿐, 그것으로 생명과 마음을 근본적으로 설명하려 들지는 않았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장 철저한 탐구만이 그러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으며 그의 생명을 우주와 신에게 관련 지운다고 한 로체에게 있어서, 기계론은 자유 의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자율성을 설명하기 위한 의지의 필연적 조건이다.
관념론적 단자론 : 로체에게는 사실의 영역, 보편적 법칙의 영역, 가치의 영역이란 관찰의 세 가지 영역이 있다. 그에게 있어서, 이 세 영역은 논리적으로 떨어질 수 있을 뿐 실재에 있어서는 분리될 수 없다. 사실과 법칙은 수단이며 기제(機制)이고, 그것으로 이 세계에서 가치가 실현된다. 즉 어떤 가치를 통해 어리석으며 모순투성이이며, 실현 가능성이 없거나 잘못이라는 점을 알려 주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또한 사실과 보편적 법칙은 가치로부터 떨어질 수 없다. 로체는, 신은 모든 것의 창조자이며 자신의 존재를 위해 기여하는 모든 것의 정수(精髓)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에게는 감정이 근본적인 까닭에 살아 있는 영혼과 신이 상호 작용한다는 일종의 이원론적 관념론은 정당화된다. 그 밖의 모든 실재는 다만 이차적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그는 경험의 정확한 해석으로서 라이프니츠적인 단자론의 변형을 꾀하고 있다. 거기에는 존재할 단 하나의 통일체나 일자(一者)가 없다. 직접적인 경험은 사물의 환원할 수 없을 정도의 복잡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실재는 늘 유동 중이며, 끊임없는 행함과 겪음과 관련된다. 유동, 행함과 겪음은 고정된 질서, 즉 신과 다수 영혼 간의 예정된 조화 안에서 일어난다. 로체에 의하면 이런 형이상학적 이론은 경험으로부터의 논리적 연역도 아니요, 완전히 지적인 것도 아니다. 그는 이것이 우리의 사유에서 얻어지는 타당한 실험 개념, 사실의 유동, 가치의 질서 등이 우리의 경험 안에서 서로 연결되는 방식에서 오는 합리적 추론일 수 있다고 믿는다. 즉 과학이 이해하는 바대로 우리 자신을 제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게 감정이나 가치 영역을 배제하는 것이다. 특히 감정과 가치를 배제하는 일은 우리의 경험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평가와 영향〕 로체는 풍부한 자연 과학의 배경을 갖고 그의 귀납적이고 실험적인 방법들에 대한 지식을 철학의 현대화에 이용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형이상학에 적대적이던 시대에 그는 정밀 과학의 귀납적인 방법을, 특히 전통적인 독일 관념론에서 제시하는 형이상학적 통찰과 결합시키려 시도하였다. 그는 자연 안에 존재하는 기계적인 기능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들을 신성(神性)이 전 우주의 최종 목적을 실현시킬 때 사용하는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또한 인간 영혼의 실체성과 행위의 자유를 가르쳤다. 그는 감정의 지각에 있어서 육체와 영혼이 끊임없는 상호적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가르쳤는데, 이는 19세기 결정론과 반대된다. 그는 궁극적으로 자유 없는 윤리는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로체가 당시 철학에 끼친 영향은 아마도 존재, 사실, 가치라는 그의 세 가지 개념 안에서 가장 잘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의하면 외적인 세계를 특정 짓는 것은 존재(새로운 형이상학)이며 인간 지각을 특정 짓는 것은 사실인데, 후자는 밖으로부터 안으로 방향 이동(영혼의 심리학)을 하고 있으며, 내부 세계를 특정 짓는 것은 사유 · 진리 · 가치(가치론)이다. 로체에게 있어 자연과 사회 생활은 종교적 이념의 두 원천이다. 자연으로부터 신 개념을 끌어들이고, 사회 생활로부터는 윤리적 삶의 개념을 끌어낸다. 그에 의하면, 이교(異敎)는 우주론적인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그리스도교는 양자를 완전한 신학적 도식으로 융합한다. 우주론에 대한 강조가 결국 신의 개념을 이끈다고 하더라도 종교에서 윤리적 요소는 우주론적인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종교적 인간의 진실한 징표는 우주론이 아니라 최고의 가능한 이념에 대한 열정과 성실이다. 경건은 내면적인 삶에서 찾아지며 논리와 추론이 작용하지 않는 최고의 직관적 파악의 상태에 이른 성스러운 것에 대한 감정에 존재한다.
로체는 생전에 독일, 프랑스, 영국에서 상당한 정도의 영향력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그의 제자는 극히 적어 로체 학파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1870~1880년대에 미국 보스턴의 성직자인 쿡(Joseph Cook)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철학에 있어서 특히 영향을 받은 사람들로 스텀프(C. Stumpf), 빈델반트(W. Windelband), 벤츨(A. Wenzl), 브렌타노(F. Brentano) 등이 있다. 그리고 훗날 브렌타노를 통해 후설(E. Husserl)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 형이상학 ; 자연 과학)
※ 참고문헌 Ed. v. Hartmann, Lotzes Philosophie, 1888/ Henry Jones, A Critical Account of the Philosphy of Lotze, 1895/ J.W. Schnidt-Japing, Lotzes Religionsphilosophie in ihrer Entwickung⋯, 1925/ E.E. Thomas, Lotze's Theory of Reality, 1921/ Max Wentcher, H. Lotze. Lotzes Leben und Werke, vol. 1, 1913/H. Johannsen, H. Lotze, 1927/ Rubin Gotesky, 《EP》 5. [金光明]
로체, 루돌프 헤르만 Lotze, Rudolf Hermann(1817~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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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루돌프 헤르만 로체.
